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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Nov 19. 2024

갖지 못한 것을 상실한 자의 고통

천희란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출구는 ‘말끔한 회복’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감각하면서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데서 감지된다. -288p, 이지은의 해설_상속자의 프롤로그


소설을 쓰는 일은 제 개인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지만, 제 개인을 구하려는 하찮은 정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천희란),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천희란은 소설의 처음부터 전체적 앎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의도적으로 차단한 채, 부분적 앎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비극이 어떻게 허구의 가능성을 낳아 기어코 삶을 이어가게 만들고 진실을 보존하는지, 물러서지 않고 말한다.

-양경언의 해설_사랑의 영(靈),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왜 소설인가. 왜 소설(문학)을 읽고 써야 하는가를 명료하게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지만 수학적인 명제로 읽히거나 관념에 빠질 수도 있다. 명쾌함에는 의도치 않은 오해와 생략이 포함된다. 한편 천희란 작가의 소설은 몸으로 읽어내야 한다. 인풋을 위해 눈 또는 귀 또는 손으로 읽는/듣는 텍스트가 아니다.


텍스트의 바다에서 우연히 만날지라도 의미나 언어를 탐구하는 형식적인 시도로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초대한다. 장렬(壯烈)하게 고통을 겪고 직면함으로써 계속해서 살아나갈 기력을 충전할 자신이 있는 사람만 이 초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떤 시련의 반복을 차마 (아직은) 마주하지 못함을 원망하지는 않겠다. 그 또한 우리-나와 그녀, 나와 다른 나, 나와 당신-의 다른 버전이 아니겠는가. 나 또한 전체 읽기를 서두르지 않았다면 중간 휴식이 무한하게 길어졌을 수 있는 작품집이었다.


그러나 그러려고 고통서사를 수집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통해 애초에 예상한 것보다 더 큰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같은 시즌에 만난 <말하기 위한 말>, <단순한 열정>, <둘도 없는 사이>를 비롯해 작정하고 읽었던 여러 텍스트와 비교하자면 오히려 이 책은 빙팟*이었다.




그녀의 욕망은 지나치게 단순했다.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어머니의 불행의 일부가 되지 않는 것. 어떻게든 저택을 떠나지 않는 것.

-23p,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일순간의 분노가 무너뜨린 것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그녀 자신의 품위와 존엄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자신의 목소리로 명명함으로써 스스로의 경험을 훼손한 것이다. -75p, 기울어진 마음


한 인간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란 그저 누적된 기억에 불과하며,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를 구성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그 소실된 기억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았으리라는 가느다란 믿음만으로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다. -140p, 피아노 룸


그 말로는 부족했다. 사무치게 이해하게 되어도, 차마 그에 대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세상에는 너무 많다. -225p, 숨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를 대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씨앗이었다. 정작 엄마에게는 만약이라고 묻지 못했지만, 아이는 자신의 신체가 성장하는 것을 중단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이 생각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또한 멈출 수 없었다.

-262p, 지속과 유예


앞서 우리는 규범에 의해 가져보지도 못하고 상실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과 상상력을 제한하는지 확인했다. 그러니 지하 문서고에 남아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서사화하는 일은 존재를 분할하고 억압하는 규범의 구획선을 문제삼는 데서 시작해야 할 수밖에 없다.

-296p, 이지은의 해설_상속자의 프롤로그


​표제작을 읽고 한참을 쉬었다. ‘피아노 룸’,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가 궁금했는데 소설집을 읽다 보니 ‘살인자의 관’을 지나있었고, 이 책이 어떤 루틴을 형성하며 <젊은작가상> 수상작을 잊을 뻔했다. 리뷰를 앞두고 서둘러 읽어보니 ‘프렐류드’가 추구한 절묘함이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속에서 잃어버린 것을 살짝 보완해주는 느낌이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치부된 상실을 발견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사무치게 이해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위로가 되는 밤**이다.




*빙고(Bingo)와 잭팟(Jackpot)의 합성어, 미국드라마 <브루클린 나인-나인>에서 인용함

**초고를 밤에 게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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