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다섯 살 아이와 놀이동산에 가는 일을 얕봤습니다

by 은자루

“부업 중 하나로 헤드헌터를 하고 있어. DM에 신창준이라는 사람을 꽂아 넣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내가 쳐다보니 치호가 말을 이었다.

“이미 리스트에 있더라고.”

채용공고 뒤에 스카웃 명단이 있었다. 대략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 중 내 이름이 있었다.





“아무래도 대니스 최가 당신을 이용해먹으려고 해.”


치호는 커피 한모금을 마셨다. 대니스 최. 그건 최훈의 지금 이름이었다.


“‘기록출입부’는 DM과 일하고 있었어. 모든 자료는 수기로 전달하고 있는데다 소속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피해갈 수 있게 판을 짜놨던데?”


별다른 감흥없이 그는 말했다. 모두 예상한대로라는 듯.


“그러니 이용당해줘봐. 자소서랑 이력서는 내가 완벽하게 써놨으니 걱정말고.”


이제 치호는 한손으로 턱을 괴고, 나른한 고양이마냥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다음 나올 말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를 쳐다봤다. 너는 누구냐고 묻고 싶었으나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한 가지는 궁금했다.


“이것도 ‘중심’을 꿰뚫는 네 능력인거야?”

“비슷해.”

“항상 그렇게 말하네 넌.”

“자주 들어.”


치호는 또 잔뜩 나이든 얼굴을 했다. 건방짐 너머에 숨겨진 얼굴이 내 눈엔 보였다. 그저 싸가지 없는 인간은 저렇게 쓸쓸해보이지 않는다. 나보다 한참 어린 주제에 세상을 다 산 저 표정이 자꾸만 눈에 걸린다.

이미 잊은 것 같았던 수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최훈의 얼굴도. 심지어 그 시절 나의 얼굴마저 눈앞에 있는 치호의 얼굴에 자꾸만 겹쳐서, 그를 보기 어려운 느낌마저 들었다.

최훈이 DM에 있다. 그것만으로도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또 도망칠거야?’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번엔 절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끝내지 않을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치호라는 열아홉 살 소년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다닐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 문자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9시까지 와.’

혜경이었다.

까마득히 있고 있던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 윤주와 놀이공원을 가는 일정도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어, 어. 무슨 일이야..?”


최대한 평이하게 받았다. 이게 근래 가장 길게 말한 축에 속했다. 요컨대 어눌했다는 소리다.


“무슨 일이냐니. 문자 안봤어?”

“어, 어. 봤지.”

“설마 당신.. 잊은건 아니지?”


혜경의 감이 날카로웠다. 수화기 너머에서도 나를 쩔쩔매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아니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오직 그것 뿐이었기에.


"아빠아! 놀이공원!“


전화 너머 윤주가 노래를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에 따스한 기운이 차올랐다.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놀이공원에 가자고 했을 때 몇 번이고 정말이냐고 묻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제가 좋아하는 분홍색 색연필로 달력에 그린 동그라미를 하루하루 바라보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 위험한 거 태우지 말고. 윤주 너도 아빠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혜경은 수화기에 귀를 댄채 말했다. 무미건조한 첫마디와 애정어린 뒷마디. 어울리지 않는 조화였다. 한달에 한번 보는 딸이었다. 아내는 아직도 자신과 내가 같이 살고있던 그 때처럼 내게도 설교를 한다. 처음에는 그게 희망처럼 들렸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우린 가족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어느정도 내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걸로 보였고 그건 아직 희망이 있는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어설픈 희망에 차있던 것이다. 나를 보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모습을 마주하고 나서야 현실을 알 수 있었다.


혜경의 마음 속에 나는 이미 타인이었다. 어린 아이를 혼자 키울 다짐을 했지만 무너질 것 같던 그녀의 얼굴. 되려 나를 책망하는 그 고집스런 얼굴. 하지만 절대로 내게 오지 않을 심지굳은 그녀의 얼굴.

내가 한때 반했던 그 강인함이 나를 향해 칼을 들고 덤볐다.


“아빠!!”

“윤주야.”


차에서 내리자마자 윤주가 내게로 달려왔다. 저러다 넘어질라. 나도 엉거주춤 달려가서 아이를 품에 안아 들어올렸다. 한 달 새 아이는 더 자란 것 같았다. 항상 바르는 베이비로션 향기와 약간의 땀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연노란색 꽃무늬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자그마한 발에는 베이지색 샌들을 신고 있다. 분명 더 작았던 것 같은데. 아이들은 빨리 자란다고 하지만 볼때마다 생경했다.


"잘 지냈어?"

"응!"


윤주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말했다. 작은 진동이 느껴져서 어쩐지 조금 행복해졌다. 고개를 들었다. 혜경이 윤주의 물건 몇 가지를 들고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내 앞까지 왔을 때 윤주를 내려놓고서 소지품을 받았다. 간식거리와 그 외 몇가지 필요한 것들. 뭔가가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치 못할만한 크기의 어린이용 가방도 하나 있었다. 누군가 보면 나들이를 가는 가족으로 보이려나. 씁쓸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아내가 입을 열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줘. 내일 데리러 올게."

"아냐 내가 데리고.."

"데리러 올게."


선을 긋는 분명한 말투.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분위기를 감지한 윤주가 나와 아내를 번갈아 쳐다보며 커다란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린다.


"..알았어. 다시 연락해."


원하는 말을 들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뭔가 더 할 말 없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살이 좀 빠졌네.”

“아..”


그 말에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제대로 먹은 것이 없으니 재보진 않았지만 살이 내렸을거다. 그래도 말끔하게 면도도 하고, 옷도 가장 깨끗한 걸로 입었다.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나지만 오늘만큼은 내 모습 그대로 혜경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혜경은 그대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내가 실직한게 들켰나? 나는 극도로 조심스러웠다. 불면으로 인한 예민함도 한몫했다. 다만 너무 티가 나지 않기를 바랐다. 가만히 있기 멋쩍어 왜그러냐는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가볼게. 아내의 뒷모습에서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놀이공원에 와본 지 한참이나 되었다는 이론적 개념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새로 개장했다는 그곳에 발을 디뎠을 때 내앞에 펼쳐진 건 현실이었다. 채도가 높은 색으로 칠해놓은 입구의 기둥들부터 평소에 보아온 것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형형색색, 주로 원색으로 이루어진 그 공간은 입구를 기점으로 자신의 존재를 피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 사람. 또 사람. 들려오는 소리.


"자아 한 줄로 서서. 하나 둘 하나 둘. 아, 옆사람 손 놓지말고..그렇지!"

"나 저거 저거!"

"롤러코스터 어딨어?"

"잠깐...아 저깄네."

"야 이제 뭐 타냐. 회전목마?"

"미친놈..너 혼자 타라."

"밥부터~"


배경음으로 깔린 듯한 밝은 음율에 덧대어진 여러 사람들의 소리가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아빠 어디부터 가?"

"어..그러네. 저기요, 여기 안내도 같은 건 어디에 있나요?"

"아, 네. 저곳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유니폼을 말끔하게 맞춰입은 직원에게 물어봤을 때 환한 미소와 함께 곧 내 손에는 제법 두툼한 안내장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 후 펼쳤다. 옆에서 윤주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어림짐작으로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놀이공원이었다. 산 하나를 거의 밀어내다시피 지어진 곳으로 원성을 많이 샀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있지만 이만한 인파가 오고가는 것을 보면 의도는 짐작할만 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밝고 환한 표정이 신이 나있었다. 우리의 윤주의 동선을 대략 머릿속으로 그렸다. 이 다음은 뭐, 알아서 되겠지.


내가 한가지 간과했던 문제는 바로 딸 아이였다. 이 작고 어린 여자아이는 그새 쑥쑥 자란만큼 체력도 발군이었다. 나름 돌아다닐 걸 예상해서 가장 편한 운동화를 신었지만 다리는 금세 뻐근해졌다. 따뜻한 정도라 짐작했던 날씨는 어느새 찌는듯한 더위로 바뀌어 있었다.


주말의 놀이공원이란 실로 무시무시했다. 가만히 줄을 서서 보내는 시간동안 나는 더위란 게 눈에 보일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져가고 있었다. 계절이 주는 감각 따위 몇십 해나 겪었으니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막 신나서 기운넘치는 딸아이와 둘이서 놀러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윤주는 매번 도리질을 쳤다.


땀을 흘려 헥헥거리고 있는데도 얼굴엔 기대감이 가득했다. 채 한시간도 지나기 전에 풀 죽은 잡초같은 상태가 된 나와는 달리 윤주는 방방뛰었다.


“아빠 여기.”

“여기 여기!”


조막만한 손가락으로 뭘 가리키는 건지 신나서 내게 하나하나 알리는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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