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냐 그건."
나는 비교적 예의 바른 편이었다. 눈치도 어느 정도 있고, 사회생활도 요령 있게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수진의 옆에 껌딱지마냥 붙어서 이쪽을 노려보는 한 꼬맹이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
내 말투와 그것을 내뱉었을 때의 여파를 정확히 인지한 상태였다. 매너나 사회생활의 요령 따위를 운운하기에 부적절한 말이었고 그 말에 그녀는 난감하게 웃었으며 꼬맹이는 나에 대한 경계 강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보였다.
변명을 하자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할 의도는 없었다. 모처럼 주말에 일찍 일어났다. 집 앞 근처의 천변을 한 시간 정도 달리고 와 샤워를 하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데 수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실한 그녀는 문자의 제목에 안부 인사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치 편지를 쓰듯 장문의 글로 자신의 용건을 전달했다. 아니, 전달 중인 듯 했다. 긴 문자로 잘린 내용이 역력히 보이는데 중간까지 이것저것 보태어 붙인 말들뿐이어서, 마지막에 쓰인 '이런 주말에 연락을 드린 건 다름이 아'에서 끊겨 있었다.
나는 '아'라는 글자를 3초 정도 바라보다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정확히 3번이 울렸을 때 수진의 목소리가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여보세요."
여, 와 보, 자 사이에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의 떨림이 감지되었다. 문자를 쓰던 도중이라면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도 '여보세요'라는 말로 전화를 받는 그녀. 내가 말했다.
"그냥 전화로 하지 뭐하러 그렇게 구구절절 써요. 그리고 수진씨 문자는 너무 딱,"
말을 잠시 멈췄다. 딱딱하다는 말은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수진은 딱딱하고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최훈과 같이 있는 모습. 맑게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존대와 반말을 재치있게 섞여 쓰는 말투. 무척 격식 있고 친절하고 어찌 보면 사무적인 모습을 보자면, 그렇게 만드는 건 왠지 나인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
"평소처럼 편하게 해요."
'평소'라는 말은 어패가 없었지만 '편하게'는 모순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녀가 곡해듣지 않기를 바라며, 기왕이면 나를 편히 느끼길 바라며 그렇게 말했다.
같이 일하며 느낀 의외의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수진은 업무능력이 뛰어났고, 대화를 주고받는데 맞장구도 잘 쳤다. 보여지는 부분은 그랬다. 그러나 수진은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친함에 일정 간격의 등급을 매기는 정도라고 해야 될까?
계산해서 재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여러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녀가 마찬가지로 그 여러 사람을 다 좋아하지 않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내가 수진과 좀 더 가까워지길 바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그녀를 더 면밀히 관찰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나는 우리가 좀 더 친해진다면, 그녀에게 지금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이 있을 거라고 멋대로 상상하는 중이었다. 이따금씩 편할 때 나오는 헤실거리는 웃음이나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데 아직은 너와 내가 조금 멀다는 듯한 시선이나. 그런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수진은 최훈과 친했다. 나랑은 친하지 않았다. 우리 셋은 항상 같은 시간을, 아니 어쩌면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더 길었는데. 그런 경계가 생겨버렸는데 그게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는 자료 하나를 내게 부탁했다. 어제저녁에 하다만 내용이 있어서 내가 집으로 들고 온 자료였다. 봐야겠다고 생각해 책상 위에 펼쳐놓은 터라 그녀가 말하는 순간 바로 알았다.
"저..아무래도 불편하시죠? 죄송,"
나도 아직 볼 게 남은 터라 잠깐 고민하는 침묵이 거절로 여겨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 말을 끊어내며 말했다.
"아니요 지금 갈게요. 어디예요?"
수진은 시내의 한 카페 구석에 앉아있었다. 서둘러 머리를 말리는 동시에 옷을 입고, 바로 나가려다 다시 거울 한번 보고. 아직은 조금 어설픈 운전 실력을 가지고서 나는 시내로 나갔다. 그녀는 분홍색 블라우스에 남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매번 하얀 가운을 입은 모습만 보다가 밖에서 마주한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 낯설고, 회사에서 볼 때보다 어려 보였다. 얼핏 보인 옷들은 매번 청바지에 티나 면바지에 셔츠였던 것 같다.
수진의 눈에도 내가 낯설게 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목이 탔다. 나는 괜스레 앞머리 끝을 매만졌다.
이변을 알아챈 건 수진의 자리에 갔을 때였다. 골격이 작은 성인여성의 체구로 가려지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카페의 구석자리로 가는 길목엔 직각의 벽을 제외하고는 방해물이 없었다. 사선에서 걸어와 자리에 앉으려던 내 눈에 어떤 물체가 하나 들어왔다. 머릿속에 순간적인 반응으로 응? 을 외치는 동시에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그것은 물체가 아니라 생명체였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었다. 남자아이였다.
까맣고 하얀 눈동자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이도 낯선 방문객을 보고 놀란 듯 싶었다. 그 눈이 조그마한 머리로 열심히 생각중이란 걸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곧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도전적인 눈빛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건 묘한 승부욕을 자극했다. 아이에게 묻는 대신에 물음을 구하는 시선으로 수진을 바라보았다.
"아..이 아이는,"
"알아서 뭐하게."
가늘고 고음의 톤을 가진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반허리로 툭 잘라내었다. 누구의 말인지 깨닫는 순간, 생각이 두뇌에서 곱게 걸러지기 전에 나는 이미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냐 그건."
그때의 감정으로 말하자면 나는 꽤 불쾌했다. 어딘지 모르게 제 엄마를 지키는 아들이 아저씨는 절대 아냐 라고 소리치는 듯한 뉘앙스에, 본의 아니게 나쁜 사람 취급받는다는 느낌이 썩 석연치 않았다. 얘야 난 무해한 사람이야. 그리고 넌 무척 건방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