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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Nov 12. 2024

To. 나 어릴 적 엄마에게

나보다 어린 엄마. 안녕?

엄마 안녕.

나는 지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일 거야.
나는 과거의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보살펴줘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작은 아이에게서 편지가 온다면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엄마라면 그저 놀라워하고 기뻐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

자라나면서 나는 항상 엄마한테 주인공이었어.
내게 포커싱을 맞추고, 네가 최고고 멋지다고. 세상의 어떤 것에도 기죽을 것 없다고.
그런 단단한 심지 같은 것을 받아왔다고 생각해.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야 엄마는 내게, 엄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어땠는지. 단지 어릴 적 나와 동생과의 일화 하나를 얘기하면서도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려주기 시작했어.
더 시간이 지나자 엄마는 속얘기도 해줬지.
때로 인생의 힘들었던 어떤 시점에 대한 이야기들.
곤히 자고 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라나기 바빴던 어린 우리들을 보면서 어른의 속사정을 감추고 언제나 밝았던 엄마.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해주는 이야기에 괜스레 기분이 좋았어. 천진한 아이에서 엄마와 동등한 어떤 존재가 된 것 같았거든.
이제 엄마는 나한테 의지도 하는구나.
나는 그것이 기껍구나, 하고 말이야.




엄마는 언제나 엄마였고, 아빠는 언제나 아빠였어.
당연한 사실이 다 크고 나서야 다시 보이더라.
30대에 들어서니 사진 속 엄마는 나보다 어렸어. 나는 여전히 엄마한테 한껏 의지하는, 혼자서 어른이라기엔 정말 많이 부족한 사람인데.
엄마는 이미 나와 동생의 엄마였다니.
그때의 엄마를 만나보고 싶다.

*
내가 얘기해 준 적이 있던가?
언젠가 한 번, 내 또래의 엄마를 만나는 꿈을 꿨어.
나는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친해지려고 노력했어. 엄마가 날 바라보는 얼굴이, 표정이, 눈동자가 어찌나 경이로운지
그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몰두해서 쳐다봤던 기억이 나.
많이 어린 엄마는 내가 왜 자신을 그다지도 그윽하게 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ㅎㅎ
그마저도 놓치기 싫었던 것 같아.
그때 내 안에서 피어나던 감각은 뭐였을까.
꿈에서 깨서도 생생했던 감각. 정말로 겪은 것만 같은 신기한 감각.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았어.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만일 내가 정말 엄마와 친구가 된다면,
평생 옆에 있어줄 텐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발 벗고 도와줄 거고
기쁜 일이 있을 때면 누구보다 축하해 줄 텐데.
(그런 상상을 해보는 건 꽤 재밌는 일이야. 엄마가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ㅎ)
그래도 나는 엄마의 딸이라서 좋아.
그건 내가 태어나서 겪는 가장 처음의 행운이었으니까.

*
어린 엄마에게 쓰는 편지가 쓰다 보니 결국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고백이 되었네.
받아들여. 나라는 껌딱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쩔 수가 없었으니.

수학자가 되고 싶었다던.
건축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던.
큰오빠의 회유에 원예학과를 나왔다던.
그것도 제법 잘해서 교수님이 대학원을 오라고 했다던.
아빠가 떨어지기 싫다고 말려서 결국 진학하지 않았다던(아빠..!ㅠㅠ)
그리고 우리 자매의 엄마로서 살아간.
집이 힘들 때, 엄마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나가서 결국 학습지 선생님이 되었던.
진심 어린 수업이 좋다고, 그만둔다고 해도  학부모들 부탁으로 과외를 이어가던.
중학교 수학이 제법 어려워졌다고 밤에 식탁에 앉아 열심히 공부를 하던.
가끔은 '그때 그랬어야 해' '느이 아빠를 만나서 내가..!'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결국 나와 동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도 결론지으며 웃어버리는.

나의 생애 첫 행운은 엄마였으니,
엄마의 마지막 행운은 꼭 내가 될게.
사랑합니다.

겨울의 초입, 큰딸이.





여러분도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아주 짧더라도 편지 한 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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