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자루 Sep 24. 2024

14. 아윌비백

언제나 소설

나는 소설을 쓴다.
머릿속엔 이야기가 가득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소소하다.
쓰고 싶은 이야기의 형태는 모호하다. 둥그런 찰흙 같다.
이걸 잘 다듬으면 귀여운 고양이도, 용맹한 호랑이도, 멋진 조각상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까진 아직 닿지 않는 상태로 있달까.
뭉개진 반죽이 되느냐 멋진 작품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처음으로 떠올린 소설은 중학생 때이다.
생애주기에 맞춰 주인공은 학생이었다. 나는 대학 졸업 전까지 학생이 나오는 소설을 참 좋아했다. 소년, 소녀. 어감도 마음에 들었다.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싱그러움도, 가능성도, 어떠한 희망도 좋았다.
그래서 주인공이 항상 행복하길 바랐다. 왜 주인공에겐 시련이 있어야 하는 건지 몰랐다. 무난하게 살아온 어떤 사람이 어떤 사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면 안 되는 것인가? 중학생인 나는 그랬다.
큰 시련 없이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아마도 그런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시간이 많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주인공이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열심히 노력해서 따낸 메달이 진 것처럼. 운동하고 나서 먹는 밥이 맛있는 것처럼. 뭔가를 해낸 결과 전에 우리는 과정에서 힘듦을 겪어내야만 한다. 그럴 때야말로 내가 해낸 모든 것들이 더 값진 의미를 지닌다.
소설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요즘 쓰는 소설 속 주인공은 고생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면서 성장한다. 주인공의 희로애락을 보며 나도 성장한다. 한 권의 소설을 써내면, 나 역시 한 권만큼 성장하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겠지만 내 안은 달라져 있다.


*
평생 몇 편의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또 어떤 이야기가 솟아날까.
나는 궁금하다.
때로는 시시하기도 하겠지. 때로는 내가 쓴 게 맞나 싶게 잘 쓰기도 하겠지. 어쨌든 계속해서 쓴다면.. 그때서야 보이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소설을 쓰기 이전에, 소설을 읽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인생의 주인공이다.
시련이 오면 주인공은 다 그렇다라고 생각하자.
뜻밖에 행운이 주어진다면 이 역시 내가 주인공이라서 그런 거라고 자축하자.
뭐 어때. 원래 주인공은 맘대로 하는 거다.

그래서 행복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자. 결국 돌아봤을 때 그 모든 것이 '행복'이었음을 깨닫자.

당신의 소설을 응원합니다.


세벽

이전 13화 13. 건물 지을 때 설계도 없어도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