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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Sep 23. 2024

13. 건물 지을 때 설계도 없어도 되나요?

구조분석 쓰기

'구조분석' 이라는 말이 생소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쓰기에 대해 말한다면,
특히나 소설 쓰기에서는 이것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
처음 소설을 쓸 때는 막막했다.
솔직히 그냥 막막하다는 말이 전부였다.
내가 재밌게 읽어 내린 소설들은 모두 작가가 세밀하게 직조해 낸 결과물이었다.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리고 후루룩 읽으며 '아 재밌다'라는 감상 정도가 남지만
사실 읽는 이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사 하나, 문장 하나를 쓸 때마다 이것이 맞는지 고민했다.
내가 읽었던 무수한 문장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길을 걷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하다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고,
다음 행선지로 향하거나 향하지 않는
인물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삐걱거렸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는 나는,
소설을 좋아하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만 가지고 한 줄 한 줄 소설을 써 내려갔다.
다음에 나올 내용을 알 때도 있고 모를 때도 있었다.
전날 한참을 써 내린 글을 다음날 삭제해 버리는 경우도 수두룩 했다. (하루면 차라리 다행이지, 며칠 지나서 깨달으면 정말로 멘붕이 온다.)

심지어는 다 써놓은 소설에 대해 문득 '아 그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생각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아예 쌩으로 다시 쓴 적도 있었다.
결국 그걸로 나는 성장했다고 생각하니 지금 와서는 감사하지만, 그때는 하늘이 노랬다. 들인 시간이 아깝고 안타까워서. 내 꿈에서 한 열 발자국쯤 다시 멀어진 것 같아서.
어찌 되었든 결론적으로 보자면 나는 '주먹구구'식으로 소설을 썼다.
온전한 내 감에 의지해서 썼다는 말이다.

*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들쑥날쑥했다.
어느 날은 정말 좋은 글이 나왔지만
어느 날은 정말 별로인 글이 나왔다.
한 작품을 가지고 시간이 누적되면 될수록,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희미해졌다.
더 나은 이야기는 어디서 올까. 나는 생각했다. 뾰족한 답은 찾기 어려웠다.
이게 맞나?
작법서를 보면 이런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사실 이런 걸 따지고 있을 시간에 한자라도 쓰는 것이 낫다'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나처럼 열심히 쓰고 모두 갈아엎는 것을 몇 번 경험한다면, 글을 쓰고 싶은 에너지마저도 갉아먹을지 모른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 책을 대하는 여러 사람의 시선. 글쓰기를 바라보는 관점...
이런 책은 원래도 좋아해서 많이 읽었다.
하지만 뭔가가 달라져야 했다.

그 유명하다는 <유혹하는 글쓰기>를 필두로 나는 작법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이것저것 보면서 그 개념에 대해 알게 된다.
칭하는 말은 책마다 다르지만
가장 쉽게 '구조분석' 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이다.


*
이야기 뼈대. 구조분석. 플롯설계 등등 이해하는 용어는 다를 것이다.
약간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해가 될 텐데,
쉽게 비유하자면 이야기가 하나의 건축물이라면 그 건축물의 설계도이다.

내가 쓰려는 작품뿐 아니라 내가 보고 듣고 읽는 모든 작품.
여러 사람이 개입되어 있을수록 (드라마. 영화 등) 작품에는 구조가 있다.
우리는 그저 '재밌다' 고 보는 그 영화 그 드라마는 이미 구조를 짜고 시작한 스토리인 경우가 99.99999%라는 의미다.
지난 독서감상문편 에서 말했듯 인상 깊고 재미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역으로 설계할 수도 있다는 거다.

사실 처음 이런 내용을 접했을 때는 무척 삭막하게 느껴졌다.
세상 모든 작가가 그런 식으로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 관련 서적을 5권 이상 읽어본 사람들은 공감할 텐데 서로 다른 책에서 완전히 반대의 의견을 펼치고 있다.
등장인물이 자유롭게 떠들고 움직이면 그걸 따라 쓰는 게 소설창작이라 말하는 내용도 있었고,
모든 세계관과 인물 줄거리까지 잡혀야만 멋진 이야기가 나온다는 내용도 있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답은 없다'라는 것.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명의 창작기법이 있는 셈이다.
비슷한 공통점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어떤 사람에게 어떤 작업이 편한지는 그 사람 나름이다.
꽤 시시한 결론이었다.
그 결론을 좀 더 들여다보자면,
닭이 먼저냐 VS 달걀이 먼저냐
의식 VS 무의식
대충 이런 구도처럼 느껴졌다.

나는 하나의 이미지나 단상이 떠오르면,
특히나 그게 결말과 관련된 어떤 이미지라면
소설을 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쓰다 보면 결말에 다다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처음-중간-끝 의 세밀한 구조를 잡는데 약했다.
어떤 부분은 날개 달린 듯 술술 써졌고
어떤 부분은 꽉 막힌 8차선 도로처럼 더뎠다.
소설을 쓰는 속도로 보자면 구조는 짜두는 게 좋다. 대략적인 줄거리나 플롯만 있어도 글을 쓰는 게 수월해진다.
그래도 막막하다면?

시중에 나와있는, 사랑해 마지않는 작품의 '구조분석'을 해보는 거다.

*
그래서--!
그 '구조분석'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라는거냐, 라는 예상질문이 나온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으니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해보려 한다.

1. 주인공
2. 외적목표
3. 적대자 (또는 결핍)
4. 내적목표
5. 처음->끝 / 인물변화


메인 주인공을 기준으로 각 항목을 채운다.
구조분석엔 요령이 없다. 사실 인생에 여러 가지 일이 대부분 그렇다.
정석대로 가려면 너무 지치고 힘들 것 같으니 요령을 찾지만, 결국엔 가장 정석이 빠른 길이었다는 걸 찾아가는 과정이랄까.
길게 쓰는 것도 있고 짧게 쓰는 것도 있을 것이다. 쓰다 보면 더 추가하고 싶은 항목이 생길 거다. 그러면 추가하면 된다.

이렇게만 마무리 지으면 감이 안 오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예시도 하나 들어보겠다. (감이 오신 분들은 넘겨도 좋다)


예시) 해리포터

1. 주인공 - 해리포터
2. 외적목표 - 마법학교를 무사히 졸업한다
3. 적대자 (또는 결핍) - 어릴 적 부모님을 죽인 볼드모트. ( 주변 환경 때문에 소심하고 호기심 많는 성격. 성향 )
4. 내적목표 - 볼드모트를 무찌르고 최고의 마법사가 되겠다.
5. 처음->끝 / 인물변화
이모네 집에서 핍박받으며 살아와서 영웅처럼 대우해 주는 주변 시선에 어색하고 이상하다. 급작스런 환경 변화로 낯설다. -> 친구들을 사귀고 마법사로서 성장해 나가며 영웅적 면모를 보인다. 물러서지 않고 앞장서서 동료들을 이끈다.



나 역시 구조분석을 많이 해봤다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든 예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구조분석은 즐겁기도 하다.
구조분석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어떤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았다. 주인공의 욕망과 사건이 어떻게 얽혀있기에, 내용을 예측하면서도 과정까지 즐길 수 있는지 알았다.

가끔 소설을 쓴다는 건 방법이 아니아 언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체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체화해서 내 눈에 귀에 소리에 마음에 담아내는 것. 내가 느낀 걸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부단히 애쓰는 것.
힘들어도, 막혀도,
소설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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