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다시 만난 치호. 창준은 누군가한테 맞은 그의 얼굴을 보고,
아는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일단 상황설명 좀 해봐. 그 꼴로 여기 왔으면 그럴 의사는 있겠지?"
의외로 그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전에 병원 좀 가야겠다."
병원은 아이보리색 건물로 1층은 약국, 2층부터는 정형외과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환한 불이 아직 켜진 채였다. 야간진료를 하는 건 목요일 금요일로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들어가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유진이 나왔다. 개원 시부터 일하고 있던 간호사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 년..아니 이 년 반 정도 되었으려나? 그새 유진은 더 말랐고 머리는 좀 더 짧아졌으며 웨이브가 들어간 밝은 염색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이 묘하게 그녀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원장인 그녀가 직접 치료를 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녀가 치호의 얼굴에 난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거즈까지 붙여주는 것을 바라보았다. 거즈를 붙인 눈가가 불편한지 치호는 자꾸 손을 갖다 대었지만 유진이 빤히 쳐다보자 슬쩍 손을 내렸다.
"그러면 치료는 끝났고...둘이 무슨 사이인지 물어봐도 될까?"
"어...“
"숨겨놓은 아들?"
나는 대놓고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얘는 그냥..잠깐, 너 몇 살이지?“
"열아홉."
"아. 그래."
"..."
물어보면서 내가 이제껏 그의 나이조차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맨처음봤을 때는 열 살이었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에도 나는 그의 나이를 몰랐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학교도. 어디에 사는 지도.
건조한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뭔가 아주 복잡해보이네. 신창준씨."
"아하하. 그런 건 아닌데..“
”됐다. 네가 언제 제대로 말해준 적 있었니.“
푸념하는 그녀의 말투에 나는 어설프게 웃었다. 나도 이 녀석과 내 관계를 아직 정의하지 못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말을 흐리는 나를 보며 그녀의 눈동자에 호기심 내지 불안감 같은 것이 서리는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모른 척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넘어갔다. 그런 점이 아내와 꼭 닮았다.
"엊그제 윤주 왔다갔어."
"어, 어..?!"
무심코 대답하다 화들짝 놀라 물었다.
"혜경이가 항상 여기로 오는 거 알고 있잖아."
"그렇긴 한데.."
"유치원 체육대회 하다가 넘어졌나봐. 조금 붓기는 했는데 별건 아니었어."
"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모르는 윤주의 소식이, 유진과 혜경이 알고 있는 그 말이 단단한 경계를 만든 것 같아서. 아빠로써 부족하다고 질책하는 것 같아서 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저기요."
"응?"
한쪽 구석에 멍하니 상황만 바라보던 치호가 말했다. 마치 구원의 손길인 듯 내가 쳐다보았지만 그는 날 보고 있지 않았다. 살짝 비켜간 시선은 유진을 향해있었고 그녀가 나? 라고 되묻자 고개를 주옥거렸다.
저기요 라니. 그런 식으로 불린 게 유진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도 인지하기 조금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럽다기보단 건방지고 낮은 울림이 있었다.
단 세 사람 뿐이었지만 시선은 이치호에게 고정됐다. 두 어른의 시선을 받은 그가 잠시 침묵했다. 뭐지..? 싶은 찰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치료 다 끝난 거 맞죠?”
이치호가 유진을 향해 물었다. 막혀 있던 무거운 공기가 흐트러졌다.
“응? 으응.”
“그럼 가죠.”
이치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덩달아 어정쩡하게 일어서고 말았다.
설마 내가 불편해하는걸 알고 일부러 말을 돌린 건가?
간단한 계산치레를 끝내고 병원 밖을 나가는 길목에서 유진이 따라 나왔다. 나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그가 먼저 가있겠다며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나와 유진이 멀뚱하게 서있는 계단 복도에 정적이 찾아왔다.
“저 애 어디서 만난거야?”
“글쎄.”
왠지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고 하면 안될 것 같았다. 유진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의심스럽네..”
“그냥 애잖아.”
“내가 사람을 막 편견어린 시선으로 보는건 아니거든? 근데 뭔가.. 쎄한 기운이 있다고 해야하나.”
“...”
“나를 꿰뚫어보려고 하는 듯 해서, 난 좀 별로였어.”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다.
유진이 눈썹을 모으며 인상을 썼다. 무척 불쾌할 때 나오는 그녀의 진짜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보았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니, 마치 그 표정이 나를 향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냥 그렇다고. 조심해서 나쁠 것 없잖아.”
머쓱한지 그녀가 자신의 귓불을 잡고서 문질렀다. 대학 때부터 이어온 그녀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래. 고맙다.”
“하여간 신창준. 평소에 연락 좀 하고.”
“하하.”
“또 대답 안하지.”
“알았어. 가볼게.”
“그래.”
등을 돌려 계단을 내려오자 출입문 옆에 서있는 그가 보였다.
계단 위쪽과 출입문 옆은 거리가 꽤 벌어져있고, 나직이 얘기한 유진과 나의 대화가 들릴리 없는데도 나는 그가 모든 것을 듣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설령 들었을지언정 저렇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할 거라는 것도.
“너 괜찮은 거 맞아?”
눈옆에 찢어지듯 난 상처 때문에 안대를 붙여놓은 치호가 나를 쳐다봤다.
“응. 괜찮아.”
“부모님은, 아셔?”
“....”
그는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아마도 싸가지없는 말투로 굳이? 글쎄. 별로. 뭐 이런 소리나 하려던게 아니었을까, 했는데.
“..괜찮아.”
잠시 생각을 고른 그는 다만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오래 기다렸어?”
나는 보자마자 했어야할 말을 이제야 건넸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꼴 되느라고, 나도 시간이 좀 걸렸어.”
이번엔 내 말문이 콱 막혔다.
“너 혹시..”
지극히 예상할 수 있는 말을 하려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경고창. 나는 말을 멈췄다. 왕따라는건 어른이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적문제이다. 섣불리 말했다가 치호가 회피해버리면 더 이상 알아볼 방도가 없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한다.
“....뭔가 기분 나쁜데.”
치호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한쪽 눈인데도 위압감이 있다.
“어,어? 뭐가.”
나는 딴청을 피웠다.
“됐어.”
그가 금세 흥미를 잃어 다행이었다.
눈이 뻑뻑했다. 병원 앞 거리는 고요했고, 스산한 바람이 불때마다 뼛속까지 시린 것처럼 몸이 차가워졌다. 아직 여름 초입인데 말이다.
“너는 왜 복수를 하려는거야?”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아이가 복수하려는 이유는 뭘까. 단지 수진이 떠난 것에 대한 억울함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걸까..?
‘복수’라는 단어를 일상에 꺼내온 적은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엔 단순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 중 하나로, 9년 전 그 날 이후에는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없는 일로써 복수는 존재했다.
단 한 사람이 독기를 품는다고해서 세상이 바뀌는건 없다. 현실에 너무나도 찌든 아저씨가 하는 말을 이제 막 성인이 되어가는 애한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괜한 소리라고 치부하기엔 그의 눈은 진중하고 깊었다.
복수라.. 복수보다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있었다. 9년 전 나의 사수. 부럽고, 한참 높아보였던 그 사람. 수진과 내가 선망하던 사람.
“진실을 알고 싶으니까.”
치호의 대답이 나를 다시 현실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더 이상의 희생은 원치 않으니까. 이제는 내가 그걸 막을만한 힘이 생겼으니까.”
그의 말은 대다수가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더 물어보려는 찰나 그가 내게 말했다. 그 말은 다른 궁금증을 모두 날려버렸다.
“또 도망칠 거야?”
그가 궁금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
“그 이후로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한 적은 있었나? 피해자는 당신 혼자가 아니야. 선생님도.. 그건 원치 않을거야. 당신이..할 수 있는 일을 해.”
말 하나하나가 비수를 꽂는다는게 이런 기분일까. 화가 날만한, 정말로 모욕적인 말을 들었지만 한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 다만 담담하게 타이르듯 읊조리는 그의 말투가 귓가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내가... 뭘 하면 되는데?“
가볍게 묻고자 했다. 하지만 고개를 홱 돌려 날 쳐다보는 치호가 내앞으로 한발 내딛자, 나는 긴장하고 말았다.
“잘 안들렸어.”
이미 가까운 거리였는데도, 더 가까이 온 그가 날 보고 물었다. 이번엔 잘 듣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내가 뭘 하면 되냐고.”
어쩐지 소리를 듣는 게 아닌, 말하는 내 입술 끝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