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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 Jan 13. 2021

[에세이] 모교 기행

폐교된 초등학교와 소진된 이야기들


얼마 전인가 그리 좋아하지도 않던 초등학교 모교에 올라가 보았다. 학교의 낡고 때가 낀 벽면을 바라보면, 너희는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커서 이런 일 하지 말라던 학교도서관 정비 인부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 학교의 온갖 좋지 않은 기억들을 뚫고 가장 먼저 머릿속을 맴돈다. 상아색 벽면에 오롯이 새겨진 것 같다. 


 너희들이 가난하고 부족하게 태어났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들, 너희들도 열심히 공부하면 이 못난 동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만화 속 이야기처럼 희망찰 뿐이었다. 성공해서 이런 곳 돌아오지 말고 멀리멀리 떠나거라. 누구도 원치도 않는데 자라나서, 누구나 떠나고 싶어 했던 그 동네 아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그렇게 시작된다. 가난한 동네 태생이라는 조건에서 아이들의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몇 안되는 서사란 그런 식이었다.


 책 페이지가 다 넘어가면 학교가 망한다는 책읽는 소녀상 전설이 기억이 난다. 그런 이야기가 으스스하게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나이가 된 이제야 그런 유치한 전설이 거짓이라는 걸 두 눈으로 분명하게 확인한다. 


 이제는 인부 아저씨들도 찾아오지 않고, 더는 갓 여덟살 난 아이들을 받아줄 수 없어 차갑게 닫힌 정문처럼, 그 곳의 서사는 완전히 끝이 났다. 누구도 원치 않고 모두가 떠나고 싶었던 그 지긋하고 보잘 것 없는 동네의 태어나고 가난하고, 낳고 가난하던 영원회귀 같던 무언가가 마침내 끝이 나서인지.


  내가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언제나 떠나고만 싶었던 곳인데, 가난한 아이들이 나와서 보잘 것 없는 동네를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만화같은 이야기들이 마침내 모조리 소진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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