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나는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던걸까, 짧은 기록들.
메일함을 확인하다 오래 전, 스스로에게 보낸 메일들을 발견했다. 이 때의 나는 스무 살, 스물 한 살 즈음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살았다. 혹은 버텼다.
나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할 장소에 있는 것 같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불러도 언제나 오지 않았다. 글은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 지, 아무리 불러도 그들이 왜 오지 않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다만 글은 내가 부르는 사람이 과연 내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는지 되묻게 하고 내가 갈 수 있는 곳보다 더 멀리 갔다. 멀리, 더 멀리 가서, 나중에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을 지나쳐 버린다. 그 사람이 오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네가 하루에 세 번 내 생각 하기를 바라지 않아. 대신에 네가 멘솔을 피우고 쥬크박스의 최근 재생 목록이 온통 내가 들었던 노래였으면 좋겠어. 네가 하루에 세 번 내 이름을 부르기를 원하지 않아. 대신에 네가 요즘 읽는 책들이 내가 읽어왔던 책들이면 좋겠어. 너의 사소한 말버릇이 내가 쓰는 단어라면 좋겠어. 아무도 볼 수 없는 너의 일기장에 마치 네 생각인 것 처럼 적는 문장이 언젠가 내가 너에게 스치듯 한 말이면 좋겠어. 너는 그걸 기억하지 못 했으면 좋겠어.
집착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과거로부터의 모든 것을 절단하고 발 밑을 배신하고 디딜 곳 없이 방황하는 건 어찌보면 '집착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집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쉽게 버리듯이 두고 온 것들이 종종 생각날 때, 이제는 그것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을 때 나는 조금 무섭다.
한 곳에 계속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단 한 번 반짝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나를 통과하지 않고 관통하기를 바랐다.
모든 것들이 나를 거쳐서 지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내 몸 안에 있었던 적 없는, 그러나 나한테는 아주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은 제 7, 제 8의 장기가 갑자기 떨어져 나가서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은 날들이다.
구멍으로 바람이 새는 게, 전부 다 여름바람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 근데, 벌써 여름인가.
여름 좋지. 내 지난 여름은 누군가의 티셔츠 색.
가끔 뜻 없이 누군가의 이름 중얼거리는데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걸까, 불리면 대답하라고 있는걸까.
누군가랑 헤어져보고 싶다. 헤어진 후에야 그 사람을 다 만난 기분이 들 것 같다.
내가 쓰는 문장이 한 사람 얘기라는 걸 뒤늦게 안다.
나의 쓰임새나 작동원리를 궁금해하고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를 이리저리 만지고 뜯어보다가 사소하게 실수해서 나사 하나가 빠지거나 선 하나가 끊긴다고 해도, 그런 것 쯤은 이해할 수 있었는데.
나는 명료하고 확고한 금속의 언어를 다룰 수는 없지만 물처럼 풀어지고 흐르는 말로 좁고 깊은 틈에 천천히 스며들고 싶습니다.
당신의 손바닥 위에 굳고 단단한 황금을 쥐여줄 수는 없지만 대신에 내 깊은 강바닥 밑에 깔린 수많은 사금들의 빛을 모아 주고 싶습니다.
나와 애인은 이제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것, 해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해줄 수 없는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가늠하는데 더 익숙하다. 편지를 몇 장 쓰느냐보다 편지 봉투에 그동안 쓴 편지들 중에서 무엇이 들어가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쓰다만 몇 장의 편지를 구겨서, 구기진 못하고 접어서 서랍 안 쪽에 쳐박아둔다. 마음이 어려서 그렇다. 내가, 마음이 어려서. 이상한 신앙고백을 할까봐.
스무 살 12월 31일 마지막 밤 골목에서 담배 피우다 불씨가 너무 예쁘길래, 뜨거운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만질 뻔 했다고, 내 스무 살은 내내 그랬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스물 한 살이 되면 그런 불씨쯤은 밟아서 간단히 꺼트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늩 여전히 사람의 물렁한 살을 가진 주제에, 불꽃을 맨손으로 만지려드는 머저리다. 그런 스물 한 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