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요새는 구직을 위해 면접을 하루에 세개씩 보러다닌다. 그러다보면 늘 공통된 질문을 받는다. '아직도 글을 쓰시나요?' 나는 매번 똑같이 대답한다. '취미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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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중학생 때··· 이 문장 앞에는 의도적으로 삭제된 문장이 있다. 중학생 때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혼자 밥 먹는 게 죽을만큼 싫어서 점심시간마다 학교 도서관으로 도망쳤습니다······. 공적인 문서에서는 영원히 쓰이지 않겠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죽을만큼 싫어서 죽고 싶어서 죽이고 싶어서 죽이지 못해서 도망친 곳에 책이 있었고, 책을 읽으니까 왜 죽고 싶거나 죽이고 싶은지 조금 느꼈다. 책 날개의 저자소개에서 내가 읽은 몇몇 책들의 저자들이 모두 같은 학교 출신이거나 그 학교의 선생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어쩌면 나도 저 집단에 소속되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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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스승께 연락하지 않았다. 내 스승은 소설가다. 나는 그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소설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고로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는 단언할 수 있다. 스승께 연락하면 안부 대신 물을 것이다. '잘 쓰고 있니?' 스승은 언젠가 내게 소설이 너를 지켜줄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 한 나는 언제나 안녕할 것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분에게만큼은 '취미로 쓰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스승은 선량하기 때문에 내가 취미로 쓴다 해도, 취미로라도 쓰지 않는다 해도 나의 안녕을 빌어줄 것이다. 언젠가 내가 다시 쓰게 될 것을 믿으면서. 너무 선량하고 단단한 믿음 앞에선 존재 자체가 죄 같을 때가 있다.
누구나 사정상 노동하고 살아.
그러니까 힘들어도 소설 꼭 써.
작년 스승의 날에 이런 말을 주고받은 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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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병원에 상담 받으러 갔다. '자아실현은 돈 받는 곳에서 하는 게 아니라 돈 내는 곳에서 하는거래요.' 의사가 내 말을 듣고 완전 명언이라고 짤깍짤깍 박수까지 쳤다. 선생님은 원하는 일을 하고 계시는 거죠? 대체로 그렇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었고, 남 얘기를 듣는 것도 좋아하고, 이걸 하기 위해서 공부도 했으니까요. 최근엔 학회 같은델 가지 못해서 좀 도태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이 일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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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 사람의 여유를 동경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이 아무리 고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여유를 바탕으로 노동하는 자신에 대한 존중과 그만큼 스스로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 내가 스승을 존경하는 이유는 스승이 스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다 못해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가장이기 때문이다. 스승은 매일 공무원처럼 쓰고 가르치고 생계를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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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잘 우는 사람들을 만났다. 잘 울어도 싫지 않고 오히려 잘 울어서 더 좋았다. 같은 문장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밤새 얘기하고 친구가 된다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라 지금도 그 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법을 알아서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 역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진심이라는 갑주로 무장했지만 진심이라는 창에 찔리면 단번에 무너진다. 그런 사람들은 질 때도 별처럼 졌다. 그것으로 된 거 아닐까. 나보다 더 좋은 것들을 보고 좋은 것들을 쓰는 사람을 곁에 몇 둔 것만으로도 그 시간들에 대한 보상은 차고 넘치는 게 아닐까? 세상에는 좋은 글이 많고, 글을 한참 쓸땐 그게 경이로우면서도 화가 났는데 지금은 그게 진심으로 기쁘고······. 조금도 화가 난다거나 질투로 눈이 돌아가지 않아서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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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미는 자전거 타기, 다이어리 꾸미기, 문구점이나 잡화점에서 예쁘고 쓸모 없는 물건들 하염없이 구경하기, 노래 듣기, 책 읽기, 최근에 생긴 취미로는 식물 애호,
···그리고 글쓰기.
무엇이든 취미가 되면 힘들지 않고 좋다. 글쓰기는 좋은 취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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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글을 잘 썼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지금까지 H처럼 쓰는 사람은 본 적 없다. 학교에서도, 책 속에서도. H의 연인은 H의 글을 읽고 사랑에 빠졌고 H가 더는 글을 쓰지 않아서 헤어졌다. H는 6개월 간 부모님 가게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6개월간은 그 돈으로 물처럼 조용히 고여 있는 생활을 했다. 나는 H에게 사정했다. 막판에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제발 같이 쓰자고. 나는 당신이 쓴다고만 한다면 당신에게 글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고, 내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제공할 수도 있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검증된 선생으로부터 당신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올 수 있다고. 제발 나랑 같이 써달라고. 그건 H의 글을 더 읽고 싶은 내 사적인 욕심이기도 했지만 뭐랄까··· H같은 사람이 글을 안 쓰는 건 부당하고 그래서는 안될 일처럼 느껴졌고 억울했다. H는 문장이 자신의 존재감을 훨씬 압도하는 사람이라서 희미하게 웃었다. 저는 괜찮아요. 소윤 씨가 많이 써요. 많이. 나는 좀 분해서 울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H에게 다정한 폭력을 행사했고 따뜻한 린치를 가했다. H는 취미로 쓸 수 없어서 글을 안 쓰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취미로 글을 쓸 수 있는 내가 그래선 안됐다.
H와는 연락이 끊겼다. 그런 이별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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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네가 다닌 학교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애인이 말했다. 합평이라는 건 합평 그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얼마나 잃지 않느냐가 더 의미있는 것 같아. 첫 합평을 할 때, 20여명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내 글에 대해 일방적으로 말할 때 나는 두시간동안 몸을 덜덜 떨었다. 옆에 있던 언니가 내 등을 위 아래로 계속 쓸어주었다. 우주는 넓어졌지만 그만큼 아팠다. 누군가는 수업 도중 잠시 나갔다가 젖은 눈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씨발 취미로 쓰는 게 뭐 어때서. 취미로 쓰니까 너무 좋고 즐거운데. 아무도 내 우주를 넓히려 들지 않고 내 세계는 진통하지 않는다. 자신을 얼마나 잃지 않느냐가 더 의미 있는······. 나는 우주에게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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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서점에 갔다.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 눈치를 봤다. 재빠르게 심사평을 읽고 아는 이름을 확인하고 내 이름이 없고, 조용히 잡지를 덮고 나왔다. 그런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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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실현은 돈 받는 곳이 아니라 돈 내는 곳에서 하라는 말을 한 사람도 애인이다. 애인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했다. 어려운 마음들을 궁금해했다. 그래서 어려운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를 하기 위해 많은 즐거움과 취미를 버렸지만 애인을 둘러싼 환경이 애인의 공부를 좌절시켰다. 애인 스스로 어려운 마음이 되었다. 커피 우유를 샀을 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껍데기를 벗겨 꽂아준 빨대 덕분에 자살하지 않았다고 네가 말했던 그 밤에, 너는 일가족의 자살을 다룬 신문 기사를 읽고 오열했다.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너랑 7년을 만나면서 네가 우는 걸 처음 봤다. 너는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궁금할까, 어려운 마음들을 돕고 싶을까. 그러기 위해 사람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을 두세개씩 하는 너는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궁금하니.
그래도 나는 네가 소설 쓸 때 참 좋았어.
그럼 다시 시작할까, 소설을? 그때 우리 그랬잖아. 하루에 여덟시간씩 일주일 넘게, 나 못쓰겠어. 난 쓰레기야. 나 자살할래. 그러면 아니야 너는 쓸 수 있어. 이미 지금도 쓰고 있어. 아니야 나 한줄도 못썼어. 난 진짜 폐기물이고 쓰레기고 쓸모없는 하등생물이야. 아메바만도 못해. 야 그러면 때려쳐. 그렇게 죽고 싶고 힘든 걸 왜 쓰고 앉아있어. 야 진짜 너 어떻게 나한테 때려치라는 말을 할 수 있어? 네가 어떻게 그래? 아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열심히 쓰던가. 아니야 나 못 써 나 쓰레기야······. 넌 이 짓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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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때보다 훨씬 더 잘 들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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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미는 글쓰기다. 글을 쓸때마다 즐겁다. 전혀 힘들거나 괴롭지 않다. 취미는 즐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