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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Jun 26. 2023

나의 입사 동기에게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나의 입사 동기에게

Y씨는 내 입사 동기였고, 이제는 전 직장 동료가 되었다.


Y씨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 그러나 나는 종종 Y씨의 나이를 잊었다. 그만큼 그를 친구처럼 대했다. 아니, 어쩌면 Y씨를 언니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Y씨의 송별회를 겸한 마지막 회식에서조차 Y씨는 고기 굽는 집게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팔고 있으면 Y씨는 내 앞접시에 어김없이 고기 한 점을 올려 두었다. 고기를 묵묵히 씹으며 나는 Y씨가 내 앞접시에 지금까지 남모르게 올려 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Y씨와 나는 2020년에 같은 출판사에 입사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책을 만드는 일도, 정규직으로 회사에 다니는 일도, 사회생활도. 우리는 새끼오리가 처음 본 사람을 어미로 따르듯이 서로를 따랐다. Y씨는 일이 힘들어서 자주 울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더 많이 울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매번 조금씩 내 안의 무언가가 훼손된다고 느꼈고 내가 일을 제대로 하는 게 맞는 건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어김없이 점심시간마다 카페에 갔다. 카페에서 키우는 늙은 고양이는 온종일 낮잠을 잤다. 우리는 그 고양이를 보며 많은 것을 잊었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고 생각도 참 많은 20대였다. 우리는 말없이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 안에서 날뛰던 ‘생각’이라는 것조차도 늙고 울지 않는 순한 짐승처럼 꼬리를 말고 우리 사이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나는 자주 아프고,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Y씨가 제법 연차가 차고, 여성 우울증에 관련된 책을 만들던 해, 나는 Y씨가 만드는 책의 주제가 되는 그 병명 때문에 매일 아팠다. 자주 죽음을 생각했다. 그해에는 Y씨와 회사 근처 공원에서 이끼 낀 물과 연초록 나무들을 자주 봤다. 그때 나는 함부로 절실하게 죽음을 입에 올렸고 Y씨는 아주 절박하게 나를 만류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기적이라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Y씨는 늘 그렇게 힘주어 말했다.


나는 한 달 병가를 썼다. 2021년 3월부터 4월까지. 회사에 다시 돌아갔을 때, 무언가 먹먹하고 막막한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예감과는 달리 Y씨는 직접 만든 딸기 케이크를 내게 내밀었다. 회사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으면서 그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나는 그렇게 순조롭게 회사 안으로 다시 섞여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회사 식구들이 나눠 먹은 케이크는 단순한 케이크가 아니었다. 다감한 마음, 사려 깊음, 사람이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깊은 애정과 연민.


Y씨는 삭막한 사무실을 꽃 한 송이로 밝힐 줄 아는 사람이었다. Y씨의 책상에는 귀여운 마우스 패드와 키보드, 정갈한 글씨로 포스트잇에 쓰인 메모가 가득. 입사 초 내가 Y씨에게 오늘 하루도 힘내요! 라는 쪽지를 붙여 과자를 전해준 적이 있었다. 3년이 지난 후, 잠깐 Y씨의 책상 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Y씨의 모니터에는 그 민트색 포스트잇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나는 Y씨가 만든 여성 우울증에 관련된 책을 나의 경전처럼 읽는다. 나를 조금이라도, 1초라도 더 살게 한 책이 있다면 바로 그 책이다. 그리고 그 책을 한 줄 한 줄 다듬고 정련한 Y씨는 나를 살린 사람이다. 내가 죽고 싶다고 처음으로 말한 사람, 그리고 내게 꼭 살아야 한다고 처음으로 말한 사람. 그 책을 Y씨가 만들어서 정말 다행이다. Y씨가 그 책의 책임편집자였기 때문에 그 책은 사람을 살리는 책이 될 수 있었다. Y씨의 손에서 나오는 책은 언제나 적당한 체온을 품고 있다. 아마 여기가 아닌 어디에서라도, Y씨는 체온을 품은 책을 만들 것이다.


Y씨와 나는 입사 동기로 만나서, 이제는 전 직장 동료 사이가 된다.

그렇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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