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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슬기 Aug 09. 2022

폭우야 아빠를 괴롭히지 마

  가을이 한 걸음 내딛자 여름이 뒷걸음질 치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다. 내가 사는 남양주는 어제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가도 밤에는 조금 살만한 날씨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얄짤 없다.

  서울도 역시 얄짤 없다. 그곳은 어제도 오늘도 무자비할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다.


  어제저녁에 스터디 카페에 가 있었는데 동생 하정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위험하니까 빨리 집으로 오라는 문자였다. 집에서 스터디 카페까지는 5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도 빨리 오라고 하는 걸 보니 바깥 날씨가 참으로 엉망진창인 건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쓰던 글을 마무리하고 우산을 들고 주섬주섬 밖으로 나왔다. 문 앞 우산 꽂이에는 미처 흘러내리지 못한 물방울들이 우산 표면에 영롱하게 맺혀있었다.


  아빠의 퇴근시간은 7시인데 거실엔 아빠가 없었고 TV는 꺼져있었다. 하정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회사의 안전관리 담당이시며 내년이면 정년퇴직을 맞이하는 아빠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회사로 뛰어갔다고 말했다.

  “아빠 지금쯤 열심히 물 퍼내고 있을걸. 오늘 숙직하신대.”

  하정은 시크하게 말했다. 급하게 숨기려다가 다 닦아내지 못한 걱정들이 묻어있는 말투였다.

  


  어릴 때 아빠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숙직을 하셨다. 아빠가 회사에서 웅크리고 자는 동안 나와 하정 둘이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때론 근처에 살고 계셨던 외할머니가 오셔서 함께 주무시기도 했다. 엄마가 병원에 있지 않은 날에는 엄마가 저녁으로 맛있는 주먹밥을 해 주셨다. 그리고 셋이서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잠에 들었다.

  아빠가 다른 부서로 옮기고 나서부터 더 이상의 숙직은 없었다. 저녁 7시에 집에 오면 당연히 아빠가 소파에 누워있고 TV가 틀어져 있었고 개숫물에는 양푼 냄비와 은수저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어제도 그럴 줄 알았다.


  숙직은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늘 해왔던 것이지만 오랜만에 겪어보는 아빠의 숙직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만 했다. 뉴스에는 계속 물이 넘치는 강남의 풍경이 나오고 어떤 남자가 물벼락을 맞으며 배수구를 지키고 있는 사진이 등장한다. 이렇게 폭우가 재난이 되기도 하는 날이면 생각하게 된다. 내가 탔던 버스의 운전기사와 미끄러운 도로 위를 질주하는 라이더와 어린아이의 손을 꽉 잡고 집을 향해 뛰어가는 어른들. 더불어 우로 죽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과 폭우가 아니었다면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 아빠도 있다. 가끔은 원망스럽기만 한 아빠가 제시간에 집에 계시지 않으면 나 역시 당신을 걱정하고 마는 것이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는 비가 오는 날마다 스트리밍 앱 인기 검색어에 오른다. 적당한 비라면 몰라도 폭우가 오는 날에도 듣기 좋은 노래가 있을까? 나는 그저께 밤부터 오늘 밤까지도 아빠와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다. 나는 그저 별일 없기를 바라며 기다릴 뿐이다. 몇 년 전의 여름에도, 작년 여름에도 늘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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