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음식
남편이 내가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사준다며 부산에 있는 생선구이 식당에 데리고 갔다. 가자미, 조기, 열어, 서대 등 여러 종류의 생선이 맛나게 구워져 나왔다. 맛있게 먹다가 문득, 내가 좋아하게 된 음식에는 맛과 함께 따뜻한 기억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쯤 부뚜막이 있던 옛 부엌을 개조해 싱크대를 들여놓고 가스레인지를 샀다. 가스레인지 중앙에는 오븐이 달려 있었다. 엄마는 열어를 포일로 감싸 그 오븐에 구워 주곤 하셨다. 오븐에서 구워지는 생선은 먹기 전부터 맛있는 냄새를 집 안 가득 퍼뜨렸다. 큼지막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열어의 하얀 속살은 밥도둑이 따로 없었고,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때 먹었던 노릇한 열어 구이의 맛과 고소한 냄새를 잊지 못해 나는 생선구이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고3 봄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88번 막차 버스를 타고 왔다. 버스 뒷문이 열리자 환한 엄마의 미소가 나를 반겼다. 엄마도 종일 일을 하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딸을 마중 나와 주셨다. 그런데 엄마는 청아목욕탕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가자고 하셨다. 매일 그 앞을 지나가기는 했지만 들어가 본 적은 없었고, 혹시 취객을 만나기라도 할까 봐 늘 멀찍이 떨어져 걸어가던 곳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색색의 불빛 사이 비닐을 걷고 들어섰다. 엄마가 주문해 둔 주홍빛의 탱글탱글한 멍게가 우리 앞에 놓였다. 사실 그전까지 내가 멍게를 먹어 본 적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기운을 내라며 그 주홍빛 멍게를 입에 넣어 주셨다. 그 순간 입 안에 퍼지던 향을 나는 지금도 ‘봄의 맛’으로 기억한다. 야심한 밤, 아빠와 남동생 둘을 두고 엄마와 단둘이 포장마차에 앉아 있다는 것도 좋았다. 입맛을 돋워 주려고 싱싱한 멍게를 먹여 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져서 더욱 좋았다. 그래서인지 멍게를 볼 때마다 나는 그날 밤 포장마차에 다시 앉아 있는 기분이 된다. 그날 밤, 입 안 가득 퍼지던 향 덕분에 고단했던 하루가 모두 사라진 듯 깊이 잠들었다.
생일이 다가오면 빨간 자두가 떠오른다. 중3 1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 생일파티를 했다. 중학교에 올라온 뒤로는 늘 시험 기간과 겹쳐 생일파티는 고사하고 좋아하는 미역국도 괜히 먹지 않으려고 했다. 그날은 마침 장맛비도 멈췄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도 시험을 끝낸 홀가분함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집에 들어서니 맛있는 자장 냄새가 마당 가득 퍼져 있었고, 소쿠리에는 빨갛고 주먹만 한 자두가 가득 담겨 있었다. 친구들과 편하게 놀라고 식구들은 모두 나가 주셨다. 우리는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엄마가 해 주신 자장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후식으로 빨간 자두를 베어 무는 순간, 달콤하고 새콤한 과즙이 흘러나왔다. 너무 맛있어서 한순간 이야기도 멈췄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그날 생일파티에서 먹었던 자두를 잊지 못해 나는 지금도 생일이 되면 자두를 산다.
우리는 음식의 맛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겨 있던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아빠의 군만두와 남편의 홍시 이야기를 이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