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원자는 내가 책임진다.
기억에 남는 후보자 (1)
이번 챕터와 다음 목차에는 헤드헌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와 후보자에 대해 공유하고 싶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회사 B에 지원하는 지원자 분이 아마 앞으로 이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거 같다. 이 지원자 같은 경우에는 맨 처음부터 내가 관리하는 후보자는 아니었다. 친한 동료가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며 퇴사하게 되어 나에게 맡기고 간 지원자였다. 이 분은 미국에서 오래 사셨다가 최근에 아버님이 아프셔서 미국 박사학위 도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어쩔 수 없이 귀국해야만 했다. 많이 위독하셨는지 종종 이 분과 통화를 할 때면 아버님의 편찮으심을 짐작할 수 있는 거친 기침소리를 들을 수 있어 개인적으로 정말로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싶었고 내 나름대로 노력했다.
다행히 여러 차례 면접을 통과하여 마지막 면접이 남은 순간, 최종 면접관이 갑자기 출장을 가게 되어 면접일이 한 달씩이나 뒤로 밀려 죄송하고 당황스러웠다. 나도 많이 놀라고 초조했는데 지원자분은 어떠셨을지 지금 생각해도 회사가 조금 무례한 태도였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 회사만을 위해 준비한 시간도 있고 많이 가고 싶은 회사이기 때문에 함께 기다려드렸다. 한 달이 지나 드디어 2차 면접을 봤고 긴장하며 결과를 함께 기다렸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탈락 소식을 듣게 되었다.
'띠링-' "안녕하세요, 헤드헌터님. 혹시 저 결과 나왔을까요?
"안녕하세요! 아니요. 아직 저희는 전달받은 내용이 없습니다."
"아.. 저한테 탈락 이메일이 왔는데, 헤드헌터님께는 아직 공유가 안 되었나 보네요."
정말이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서류에서 탈락하거나 1차 면접 탈락도 아닌 2차 면접을 한 달이나 기다린 지원자에게 헤드헌팅사에게 연락과 공유도 없이 심지어 지원자에게 자동 이메일로 탈락되었다는 형식적인 이메일만 보내온 회사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해당 소식을 나에게 전달해 준 지원자분의 통화소리 너머로는 지원자 아버님의 기침소리가 더 크게만 들렸고, 많이 좋지 않으신 상황에 지원자분의 가족분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에 이 업을 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이를 꽉 깨물고 자리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 손까지 떨렸다. 내가 PM인 회사도 아니었던지라 한 사람의 소중한 고객사에게 무례하게 깽판 혹은 컴플레인을 걸 수도 없는 노릇으로 답답해 지원자분께 다시 전화로 대신 사과말씀을 드렸다.
이 지원자 분은 한 번은 어머님이 아프셔서 한국에 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귀국하여 드디어 꽃이 피나 했더니 이번엔 아버님이 아프셔서 다시 한국으로 와서 여러 상황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 정말 가고 싶던 회사에서 최소한의 예의도 받지 못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좌절되었다.
더군다나 이 분께서는 최종면접을 보며 이미 내정자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자신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하자 그때 처음으로 면접관이 자신의 이력서를 들쳐보았던 사실을 공유 주셨다. 정말이지 최악 중의 최악인 회사. 이 회사에 입사를 하고 싶어서 최종면접을 기다리는 한 달 동안 합격한 회사의 오퍼를 거절하고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도 포기하신 분에게 할 말이 없았다. 사실 여기서 대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이 분과 인연은 정리해도 되었지만, 눈물을 참으며 이 분께 제가 책임지고 더 좋은 회사와 채용건을 소개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난 웬만하면 누군가와 약속이라는 것을 잘하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에서만 자신 있게 말하는 편이라 이 약속은 개인 매출을 떠나 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내 신념이자 최소한의 예의였다.
통화를 끊고 우리 회사가 갖고 있는 채용건을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최근 3개월 히스토리를 싹 다 뒤졌다. 그중에서 다행히 딱 1개를 발견했고 이 분의 원래 커리어와 마침맞아서 추천드렸다. 이와 동시에 사실 이 얘기를 하면 나에게 좋지 않은 컨디션임에도 어떻게 하면 헤드헌터에게 더 많이 그리고 더 좋은 회사를 제안받을 수 있을지 팁을 줬다. 이 얘기를 하지 않으면 내 채용건만 진행을 해서 나에게 유익하지만 이번 상황에서만큼은 이기적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난 내가 해낼 거라는 자신과 분노에 기반한 간절함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새롭게 추천드린 채용건은 내가 PM이 아닌 평소에 성품이 좋기로 소문이 난 상무님의 출신 회사의 채용건으로 그날 새벽에 염치도 없이 긴 장문의 메시지로 이 분의 이력서와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진솔한 내용을 담아 추천드렸다. 구두로도 말씀드리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과 함께 폴더폰 인사를 뵐 때마다 했다.
상무님이 내 정성을 알아주셨는지 혹은 내 후보자분의 이력이 좋았는지 감사하게도 1차 면접 그리고 최종면접까지 합격하여 신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려 좋은 소식을 공유드릴 수 있었다. 심지어 원하셨던 연봉보다 실제로 1천만 원 정도 인상되어 전무후무한 케이스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상무님도 힘을 써 주셔서 입사 예정인 회사의 대표님이 이 분께 전화를 주셔서 어필까지 한 너무 감사한 상황도 발생했었다.
최종합격 소식을 듣고 이 정도면 내가 이 분을 이 회사로 안내하기 위한 운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다가오는 겨울, 그동안 아버님을 간병하느라 심적으로도 많이 지치시고 힘드셨을 어머님과 미안한 마음이 늘 있으실 아버님을 위해 다가오는 가을 예쁜 스카프와, 꽃다발, 그리고 입사 축하 케이크를 개인 사비로 선물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