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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Nov 29. 2018

미래 도시에서 거슬러 사는 일상

무인 지하철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자동화, 기계화가 만연하다.

긴 밤이면 기이한 구조의 초 현대식 건물들이 색색의 조명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보는 이에 따라서 고풍스럽거나, 혹은 낡은 이태리의 도시에 살다 온 나는 어릴 적에 만화에서 봤던 미래 도시로 이사를 온 것 같다.

코펜하겐에도  물론 오래된 건물이 있고, 맨들 맨들 낡은 돌길도 있다. 그래도 코펜하겐은 미래 도시 같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미 살아서 조금 낡은 그런 미래 도시. 어두운 오후에 코펜하겐을 걷고 있으면 철이랑 메텔이 코트 깃을 세우고 나타날 것만 같다.


그렇게 미래를 표방하는 코펜하겐엔 살면서 이미 40년전쯤의 내 유년 시절이 자꾸 선명해지는 경험을 한다.


 시아가 학교 다니기 시작하고 3주 정도 지났을 때.

책상에 앉아 종이를 접는 시아가 자꾸만 머리를 긁는다.

"머리가 간지러워? 건조해서 그런가?" 하고 들여다 봤는데.

살아있는 생물체!!!!! 이!!!!! 이 나라말로는 LUS 라고 한다는 그 곤충!!

나는 다소 크게 비명을 지르고 호들갑을 떨었고, 시아는 난생처음 겪는 생물과의 공생에 조금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엄마, 나도 보여줘. 나도 볼래. 안 무섭게 생겼네. 진짜 작다. 너무 그러지 마. 얘네들도 어디서 살아야지. 내 머릿속이 좋은가 봐 하하."

이 와중에 웃는 시아와 당장 약국으로 달려갔다.

LUS!! 했더니 뭐, 두통약 주듯 아무렇지도 않게 샴푸 두 가지를 꺼내준다.

성분도 효과도 비슷한데 하나는 세일 중이니 세일 상품을 구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여유 있게 권했다. 샴푸를 사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약국을 못 나오고 진열장을 기웃거렸다. 뭔가 박멸에 효험 있는 명약이 있지 않을까?..


참빗! 그게 필요할 것 같았다. 우리 어릴 적에 엄마 옆에 고개 숙이고 엎드려 있으면 엄마가 박박 빗어 이를 빼주던 참빗.

다시 창구로 돌아가 이를 잡는 빗을 달라고 했더니 참빗이랑은 조금 다르게 생긴 무척 세련되고 현대적인 모양의 빗을 찾아 주었다.

샴푸를 하면 꼭 빗 사용을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구입했다.


이태리에서부터 자르기 싫다고 해서 많이 길어진 머리를 잘랐다.

절대 안 자르겠다고 하던 시아도 시아 머리에 이가 있으면 엄마 아빠 방에서 같이 못 자고, 엄마 아빠랑 안아주지도 못한다는 얘기에 순순히 머리를 내밀었다.

가위를 잡고 싹둑.

약사의 설명대로 샴푸를 골고루 바르고 10분 기다렸다가 머리를 감고, 세련된 참빗으로 빗고.

그 사이 불이 나게 달려 퇴근한 황가수는 시아의 침구와 옷 가지를 세탁했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이. 그 녀석을 잡으려고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싸웠다.


샴푸가 좋기는 한가보다. 머리 감고 나니 더 이상 살아있는 이는 없다.

다음날 아침에도 없다. 학교 다녀오자마자 다시 샴푸.

이는 정말 없었지만 그 다음날도 샴푸.


시아는 짧아진 머리도, 그렇게 쉽게 자신을 떠나버린 이도 아쉬워하는 눈치다.

"이가 아직 내 머리를 한 번도 안 물었는데, 그냥 다 없어졌네. 난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가 물면 어떤지 알고 싶은데... 이가 또 와? 그런데 이제 머리가 짧아져서 많이 안 오겠다. 그치?"

그리고

"아, 우리 반 친구 A. 랑 V가 이 있다고 선생님이 그랬어."

"그래? 그래서 그 친구들은 학교 올 수 있어?"

"응, 그럼. 학교는 오지. 그런데 다른 친구들이랑 머리 붙이고 놀지 말래. 그래서 나도 이 있었는데 다 없앴다고 얘기해줬어. 샴푸 사고 머리 자르면 된다고."

이태리 학교에서도 한 번쯤 반에 이가 나타났다는 공고가 났었다. 그때는 이가 있는 아이를 학교에 못 나오게 했었는데, 덴마크는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이를 대하는 태도마저 침착하고 냉정하며. 무심하다.


한 3일 나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고, 시아의 눈 보다 시아의 머릿속을 더 많이 들여다보았고, 밤에 누우면 내 머리가 간지러운 것 같았다.

효과가 좋은 샴푸와 세련된 참 빗이 있어 이가 나도 하루면 박멸이 가능한 걸 알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시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갈 길을 가던 이가 떠올라 시아 머릿속을 들여다본다.


 신문지를 깔아 놓고 그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워 엄마의 억센 빗질에 '아야'를 내뱉었던 기억. 톡톡, 엄마가 손으로 이를 눌려 죽이는 소리.

덴마크제 샴푸 같은 건 없었던 시절이라 일주일이고 계속 없어지지 않는 이 때문에 매일 저녁 동생이랑 줄을 서서 엄마의 빗질을 당했고, 그게 아프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다.

덴마크는 도시락을 싼다...

덴마크에도 급식을 시작하는 학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도시락을 가지고 가게 되어있다.

놀라운 것은 매년 급식 시설을 짓거나, 외부 업체를 통해 급식을 시행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는데, 거의 모든 학교에서 반대 표가 많이 나와 무산된다는 것이다.

도시락을 선호하는 나라다.

여성 노동 비율도 높고, 이태리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맡아 돌봐주는 경우도 많지 않다는데, 엄마들은 왜 힘든 도시락을 고집하는 걸까?....

그건.

많이 힘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아이들은 간식으로 당근이나 오이, 토마토를 먹고, 점심으로 검은 빵에 햄을 주로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따뜻한 밥에 반찬에 국까지 담겨있는 우리 도시락이랑은 아주 다른 도시락이다.

심지어, 지퍼팩에 당근을 가득 담아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그러니까 도시락이 할만하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 도시락마저도 냉담하고 무심하게....

시아도 처음에는 분위기를 살피느라 샌드위치와 과일을 가지고 갔다.

그런데 외국인 아이들 반이니 만큼 음식이 다양한 모양이다. 누구는 카레도 가지고 오고, 누구는 이름 모를 무슨 무슨 볶음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고 했다.

"엄마, 나도 밥 싸줘. 맨날 빵은 좀 그런 것 같아..."

"응? 밥?"

아침에 밥?!!!

나는 아침에 밥을 해 본 적이 없는 여자다. ㅎ

아침에는 빵이나 쿠키를 먹는다. 내가 아침에 하는 부엌 노동은 커피 끓이기 정도이다.

그런데 밥.

매일 아침 조금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오이를 자르고, 과일을 씻고, 동그랑땡을 데우거나, 너깃을 데우거나, 계란말이를 하거나...

그러다,

"엄마, 김밥 싸 주면 어때? 어제 도시락 먹을 때 김밥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났어."

김밥을 싸기도 한다.

극장 구내 식당 점심 가격이 만만치 않고, 맛도 별로 없다는 황가수도 슬쩍 도시락 통을 하나 사 왔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두 개의 도시락을 싸는 여자가 되었다.

황가수는 샌드위치와 과일. 시아는 밥에 반찬 하나와 과일, 야채.

대단한 도시락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정말 대단하고, 엄청난 일이다.


주말 저녁에 장조림, 멸치볶음, 감자조림 같은 반찬을 만들던 엄마. 같이 메추리알을 까던 기억. 계란 입은 분홍 소시지의 맛, 약간의 온기가 남은 보온 도시락. 좋아하는 친구랑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떠들던 기억. 제 도시락을 들고 시아도 학교에 가고 황가수도 출근을 하면 그런 기억들이 부르지 않아도 찾아온다.


덴마크의 인건비는 날카롭고 거세다.

함부로 도전해서는 안된다.

미용실도 그렇다.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가격이다.

나랑 시아는 어떻게든 괜찮겠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이발을 해야 하는 황가수는 문제다.

바리캉. 그걸 다시 샀다.

이태리 생활 초기에 사용하다 실력 있고 저렴한 중국 미용사들의 출연으로 더 이상 필요 없어졌던 바리캉을 오랜만에 잡았다.

머리 자를 줄 모른다. 그저 미용 비용이 무섭고, 황가수는 예민하지 않을 뿐이다.

앞머리를 자리고 옆 머리를 자르고, 길이를 조정하는 커버를 두어 번 바꾸어 가며, 조심스럽게 머리를 자르고, 목덜미에 붙은 머리카락을 툭툭 털어준다. 결과는 늘 맘에 안 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황가수는 가까이서 보면 몹시 삐뚤 빼뚤한 머리를 하고, 이 세련된 도시를 자전거로 가르고 다닌다.


엄마는 미용사를 하셨다. 미용실 가운데 난로가 있었고, 엄마가 손님들 머리를 만져 주시는 동안 동생이랑 난로 위에 무언가를 구워 먹었었다. 미용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삭삭 빗질하던 마음씨 좋은 이모가 있었다. 미장원에 오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었다. 어른 손님들과 오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코를 찌르는 파마약 냄새와 후끈한 드라이기의 더운 내를 싫어 하지 않았다.


실제가 아닌 것 같은, 어제인 것도 같고 내일인 것도 같은 일상이다.

이것도 익숙해지면 오늘이 되겠지.


무심하게 이를 잡고, 큼직하게 당근을 썰어 도시락을 싸고, 머리쯤은 금방 잘라버리는 날도 오겠지.

이곳의 모든 것은 아직 기묘하다. 내 일상마저도 기묘하다.

이 모든 기묘함이 익숙해진다면 나는 내가 모르는 다른 형태의 조화를 보는 눈을 가지게 될까?

이 사람들의 무심하고 낡은 미래의 조화. 그 기묘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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