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yaMya Dec 23. 2018

그리움 이브

아직 하나도 식지 않는 그리움을 마주하러 간다.



이태리에 간다.

덴마크에 오기 전부터 크리스마스에는 이태리에 가겠노라고 시아와 약속을 했다.

시아는 매일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일찌감치 표를 사고, 그리운 사람들에게 만나러 가겠노라고 연락을 해두었다.


시아는 계속 웃는다. 이태리 갈 생각에 잠이 안 올 만큼 기분이 좋다.

나도 좋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그리운 거리를 다시 걸을 생각에.

조금, 걱정도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돌아올까 봐.

나는 이태리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 여행 온 사람이다 라는 뿌옇던 생각이 선명해질까 봐.

그리움을 이기는 건, 시간뿐이고, 아직 그 시간이 다 익지 않았을 때는 그리운 것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이를테면 나의 생존 본능이다. 머리도 가슴도 다 식어서 이만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을 때쯤, 그때쯤 가야 다소 사뿐히 돌아올 수 있다.

나는 그렇지만, 시아는 안 그렇다. 시아에게 40년을 넘게 살며 4번째 나라에 정착한 사연 많은 나의 나이 든 본능을 강요할 수도 없다.

나는 그렇지만, 황가수도 안 그렇다. 40년을 넘게 살며 4번째 나라에 정착했으나 늘 오늘 좋으면 좋은 사람이다. 그리운 사람들 만날 생각에, 친구들을 만나 행복해할 시아 생각에 시아처럼 들떴다.

기분 좋은 황 씨들과 가방을 챙기며 오만가지 잔소리를 다 했다.

돌아올 날을 생각해 급히 머리와 마음을 식히려는데 싱글벙글 두 황 씨의 얼굴이 방해가 된다.


"엄마, 그림을 그려야겠어. 친구들한테 그림을 선물할래. 너무너무 좋아. 내일이 오늘이면 좋겠다. 벌써 다들 만나서 같이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탈리아 말을 잊어버렸는지, 아직도 잘하는지 친구들한테 물어봐야겠다. 친구들이 나를 만나면 깜짝 놀라겠지? 엄마, 내가 키가 좀 컸잖아. 그걸 보고 이모들도 놀랄 것 같아. 그렇지? 친구들도 다 커졌겠지? 내가 막 뛰어가서 안아줄 거야!"


두고 온 그곳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오게 될까?

시아보다 많이 살았어도, 그리움을 대하는 법도, 오늘을 살아내는 법도 잘 모른다.

더 살았어서 점점 더 모른다.



잠이 안 오는 걸 보니... 황 씨들의 웃음에 기어이 옮아 들뜨고 말았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 도시에서 거슬러 사는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