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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an 04. 2019

그리움이 살찌는 겨울



비행기까지 타고  해외에 다녀왔지만, 여행은 아니었다.

마음 저 아래가 꾸물 꾸물 움직이. 무게와 두께가 있을것 같은 그런 설렘을 고 떠났다.

집에. 가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콧노래를 부르던 시아는 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어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연신 웃었다.

안개 자욱한 밀라노는 착륙을 해서도 보이지 않았지만 시아는 작은 비행기 창문에 얼굴을 딱 붙이고 안개 넘어 고향을 눈으로 안았다.


이태리어가 가득한 공항에 들어선 시아는 물을 만난 물고기 같았다.

말펜사 공항에서의 시아는 느슨했고, 자유로웠고, 여유로웠다.

늦은 시간 공항까지 마중 나오신 삼촌의 품에 안겨 인사를 하고, 그리웠던 동생과 이모를 만나고...

그렇게 마법 같은 시아의 크리스마스가 열렸다.


15년을 살았어도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던 돌로미티가 시작되는 산줄기가 있는 PONTE DI LEGNO에서 5일을 보냈다.

유학생이었고, 연인이었고, 신혼부부였고, 첫 아이를 출산하고, 직업을 가지고, 좌절을 하고, 성취를 하는 이태리 세월을 공유한 일곱 가정이 함께 4일 밤 5일 낮을 나누었다.


낮에는 스키를 타고, 저녁에는 먹고 웃었다.


우리는 늘 그곳에, 그 사람들과 있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도 낯설고 불편하지 않게 섞이고 녹았다.

한국의 명절처럼,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아빠들끼리 방을 나누어 진한 수다를 떨었다.

하루 종일 놀았어도 아쉬운 아이들은 삼삼 오오 짝을 지어 방을 옮겨 다니며 함께 잤다.

우리 방을 찾은 아이들과 시아는 밤이 늦도록 낄낄 깔깔 놀다 덴마크 이모한테 호통을 듣고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나란히 누워 곤히 자는 아이들의 모습은, 알프스 보다, 해가 화창한 이태리 하늘보다 더 숭고하게 아름다웠다.

눈에 다 담고도 모자라 조용히 사진을 찍어 두었다.

사랑했던 너희들. 사랑하는 너희들.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이 엄마 저 아빠에게 혼나기도 하지만,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다.

남편들은 이 집 부인, 저 집 부인에게 잔소리를 듣고, 부인들은 저 집 남편, 이 집 남편에게 흠을 잡히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리는 내 집 네 집 없이 속을 내보이며 살 던 사람들이었구나.

다섯 달 만에 만나니 그게 보였다.

너는 그렇고 나는 이렇고 재는 또 그래서 맘에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했지만, 15년 타지 생활에 많이 다른 서로와 경쟁도 하고 의지도 하면서 우리는 아무래도 많이 사랑하게 되었나 보다.


매일 보는 사람들처럼, 아무 얘기나 두서없이 늘어놓고, 대충 얘기하고, 대충 이해하고, 웃고 또 웃고. 웃지 않으면 시큰하고.


산에 있는 5일 동안 시아를 거의 못 봤다. 우리가 부르는 소리에는 반응도 않는 어느 날 다소 삐진 부모가 시아를 불렀다.

"엄마 아빠가 부르면 대답은 해줘야지.. 시아는 친구들이랑 이모 삼촌만 좋은가 봐..."

"엄마 아빠가 더 좋지. 그걸 몰라? 그냥. 난 이제 또 갈 거잖아. 가면 못 만나니까, 지금은 친구들이랑 이모 삼촌들이랑 많이 있어야지. 괜찮지?"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지만, 시아에게 이태리는 아직 아물지 않은 그리움이고, 눈물샘이다.

괜찮다. 시아 말이 맞다.


하루처럼 지나간 5일을 뒤로하고 밀라노로 내려왔다.


이제 시아가 이태리 친구들을 만날 차례다.

S.를 만나 S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M의 집에서 점심을 먹는 일정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 없는 외박은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제는 손을 꼽아 기다린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다. 이제는 우리는 없고 S가 사는 아파트이다.

아파트 정원을 한 걸음에 달려본다. 매일 오르고 매달렸던 커다란 나무들을 만지고 쓰다듬고, 다시 한걸음에 S네 집 현관 앞에서 벨을 누른다.

엘리베이터 앞에 버선발로 나온 S를 보고 시아가 멈칫한다.

어색한가?

잠깐 둘이 그렇게 가만히 서서 눈을 맞추다가 꼭 끌어안는다.

1분 정도... 말도 않고 소리도 안 내고 시아랑 S가 꼭 안고 섰다.

여덟 살의 그리움이 너무 절절해서, 간절해서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서있던 엄마들이 울어버렸다.


미안해...

하지만 너희들은 참 예쁘구나...


포옹을 풀고 서로 얼굴을 만지며 웃던 아이들이 손을 잡고 방으로 뛰어들어가고, 엄마 아빠들이 남아 그동안 아이들의 그리움을 털어놓으며 시큰했다.

다음날 아침 시아는 S와 이미 아파트 놀이터에 나와서 놀고 있었다.

우리가 떠나던 여름처럼, 그네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엄마 아빠가 반갑지만, 다가온 이별이 아쉬워서 시아는 조금 속상했다.

둘이 다시 꼭 안았다.

너희들은 참 예쁘구나...


S의 집에서 5분 거리에 사는 M의 집에 도착했다.

아직 잠옷을 입고 있는 M의 가족은 모두 나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한 살 때부터 키운 우정이다. 어린이집에서는 꼬집고 물고 싸우며 배운 서로를 잊지 못해, 같이 수영을 다니고, 체조를 다니며 체육 어린이를 함께 꿈꾼 친구다.

M의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둘이 앉아 손을 꼭 잡고 웃는다.

M이 먼저 또르르 눈물 한 방울, 시아도 한 방울. 그리고 또 웃는다.

여덟 살이 이렇게 예쁘고 멋있게 그리움을 표현할 줄 아는지 몰랐다.

너희들은 참 예쁘구나...


점심 다 먹고 조금 놀았을 때쯤 시아를 데리러 갔다.

꼭 다시 만나자, 통화하자 약속하고, 겨우 겨우 이별을 했다.

다시 교회 친구들을 만나고,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맑은 하늘 아래로 이태리가 안 보일 때까지 시아가 울었다.

"덴마크에 가기 싫어요..."


시간이 지나면 덴마크를 좋아하게 되겠지.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이 옅어지겠지.


"우리가 이태리에 살았다면, 그랬다면 엄마도 참 좋았겠지만, 아빠가 덴마크에서 좋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것도 참 좋은 거야. 우리 이태리에 살 때는 친구들이랑 같이 그렇게 오랫동안 겨울에 산에 간 적 없잖아. 이태리에 계속 살았다면, 이번에도 우리는 못 갔을지도 몰라. 같이 산에 가니까 참 좋더라. 그리고 시아가 친구들 만나서 안아주는 것도 너무 예뻤어. 우리가 이태리에 계속 있었으면 못했을 것도 하게 되고, 친구들이랑도 더 많이 좋아하게 됐으니까. 덴마크에 오게 된 게 꼭 나쁜 건 아니지. 조금만 힘 내보자. 엄마도 아빠랑 다 같이 힘내자. 그래서 이태리도 자주 놀러 가고, 이태리 친구들도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하자."


"응. 나도 알아. 나도 그건 아는데, 아빠가 좋은 일을 이태리에서 찾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내가 나중에 크면, 이태리에서 일 찾을래. 그때는 엄마 아빠도 같이 가자."

"응, 그래. 같이 가자."


그리움이 이렇게 뜨거운 시아를 데리고 이태리를 다녀온 게 잘한 일인지, 이태리가 좋을수록 덴마크가 심드렁한 시아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8일을 있었어도 집 같은 곳을 떠나, 아직 마음 붙이지 못한 덴마크에 다시 살러온 내 가라앉은 마음은 또 어쩔 것인지.

모르겠다.


시아가 울었어도, 내가 맥이 빠졌어도, 아쉬울게 없이 좋았던 크리스마스다.

참 좋았다. 모든 것이 꽉 차 우리의 그리움을 살 찌운 크리스마스였다.

살찐 그리움이랑, 시아랑 나랑 황가수랑 다 같이 힘을 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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