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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Jun 16. 2020

그녀를 쓰지 않기로 했다.

나의 작은 사람이 그녀가 되었다.

벌써 10년이나 살아온 작은 사람은 혼자 머리를 묶고, 파스타도 만들고, 자전거를 타고 친구를 만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하는 큰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 모르는 것이란 없지만, 알고 싶은 것은 억만 개나 되는, 그냥 기분이 좋기도 하고, 그냥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모든 부당함에 사사건건 맞서는 그녀의 출현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가끔 나의 작은 사람이 돌아오는 듯하였지만 이내 그것은 내 미련이 만들어낸 착시 일 뿐 여전히 그녀라는 사실에 분하기도 했다. 작은 사람은 홀연히, 인사도 없이 나를 떠났고, 그 자리에 그녀가 남았다.


그녀가 작은 사람만큼 아름답긴 하다. 내 속에 쏙 들어오진 않지만 팔을 크게 열고 품에 안으면 작은 사람 닮은 달큰한 향이 나기도 한다. 그녀는 어디서 언제 배웠는지 모르는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서 매일 나를 놀라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그녀는 가끔 이해심이 깊어 내 얘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그녀는 자전거를 잘 못 타는 내가 걱정되어 앞서가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아 어쩐지 든든한 마음이 들게도 해준다. 그녀는 제게 잘 맞는 참 예쁜 옷을 고를 줄 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들은 새롭고 신기한 세상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어 낡은 나와 젊은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는 아직 작은 사람이 한없이 그립지만, 그런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혼자'가 늘어나면서 나는 대견하고 조금 외롭다. 나는 조금 외롭지만 '혼자' 바삐 달리는 그녀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조금 더 물러나고 만다.

10년을 살면 사람은 이토록 아름다워지는구나.


10년 동안 힘이 닿는 대로 마음이 닿는 대로 작은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이야기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어야 할 것 같다.

작은 사람의 이야기는 참 많이 내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일 수 없다.  '혼자' 살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녀는 이제 머지않아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갈 수 있으리라.

그래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를 위해 남겨두려고 한다.


10년. 서툴게 사랑하고, 서툴게 기록했지만, 가끔은 참 어두운 것 같은 날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만큼 자랐다.

꼬물거리는 너를 처음 만난 순간이 아직도 지금처럼 선명한데 너는 어느새 번데기를 벗어던진 나비가 되었다.  

훌쩍 길어져버린 너를 동그랗게 말아 다시 내 품에 꼭 담아버리고 싶은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 너를 더 이상 붙들지 않으려고 해.

언젠가 네가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서글프게 훌쩍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네가 멀어진 자리에 남은 내 시선을 나에게 돌려볼 생각이야.

너를 통해 만난 참 많은 나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도 더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마주 앉아 얘기하면 즐거운 동행이 되고 싶어.

그래서 이제는 내 이야기를 써볼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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