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지음
이 책의 소제목은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이다.
나는 스스로를 정의하길,
문과적 성향 80% 이과적 성향 10% 그리고 나머지 알 수 없는 성향 10%가 아닐까 싶다.
국어를 좋아했고, 잘하기도 했었고,
영어도 괜찮았고(모든 언어 공부를 그럭저럭 하는 편_유학 가서 조금 도움이 되었다)
사회 같은 과목은 나의 전략과목이었다. 시간대비 결과가 잘 나오는.
텍스트를 읽고 문맥을 짚어내고 그리고 또한 암기가 필요한 과목들은 모두 내 손에 잘 잡혔었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은. 정말이지 조금 노력해도 여전히 헤매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영역 같은 그런 분야였는데, 늘 수학과 과학을 힘들어했던 내가,
어쩌다 보니 건축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어 져서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물리 2, 수학 2 이런 과목들도 공부하고 수능도 봤었고
공대에 진학해서는(입학했을 당시 건축과는 건축공학과로서 공대 소속)
정말이지 하기도 싫은 공업수학부터 시작해서 기초적인 물리, 화학 이런 수업들도 들어야만 했다.
1학년 공대 필수 과목이어서.
내 주위 애들은 90% 이상이 공대 남자애들이었는데 이들은 수학 너무 잘하고, 물리도 잘하고
몇 없는 공대 여학우들도 언어보다는 수학, 과학에 특화된 친구들인지라 다들 나의 고충을 이해 못 했었다.
다행히 건축과 커리큘럼은 2학년부터 시작되었는데, 난 건축전공과정에
수학과 과학이 없는 줄 알았는데, 건축과 전공에서도 구조역학 이런 과목은 필수여서
또 하나도 못 알아먹겠지만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듣고 C였는지 D였는지 점수를 받았었다.
대학땐 인문대 수업들이 좋았었고 예술 관련 수업들을 좋아했었고 공대 전공인 친구들의 그 알 수 없는
미적분 얘기, 역학 얘기는 따라갈 수 없었다(전기전자전공은 미적에서 모든 게 끝나고 기계공학전공은 열역학유체역학 동역학 등등 dynamics에서 모든 게 끝난다)
괜히 남의 동네 인문대 알짱거리면서 강사님이나 교수님들 멋지다고 공대랑 비교된다며 생각하기도 하고
인문, 사회대 특유의 그 토론들, 논쟁들, 끝없는 책들, 지적인 대화, 날카로운 비판 의식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무한 동경이 많았다.
공학대학 교수님들이나 공대 친구들, 대학원생들의 그 어딘지 너드미 느껴지는 외모, 드라이하면서 히키코모리 같은 그 분위기, 낭만은 잘 모르겠는 그런 느낌에 식상했던 시절이었다. '건축과'는 전공이 전공인지라 일반 공대 학과들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랬던 내가 40세에 이르자, 뭔가 공학적인 과학적인 소위 이성적인(감성이 아닌) 주제들에 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치우친 쪽으로만 들이 팠던 걸까 라는 생각도 들면서
과학과 수학 등의 진리탐구에 내가 너무 무심했고 그 분야가 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들른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문과적 지성의 최고 글쓰기 재주꾼인 유시민 작가도 이과의 얘기들이 궁금했던 것이로구나! 동질감을 느끼며 읽게 된 책인데, 역시 글을 잘 쓰는 작가답게 아주 술술 읽힌다.
물론 물리 파트에서는 조금 진도가 안 나가서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지만(이건 내 이해력이 딸려서)
그 역시 철저한 문과 인간으로서 그동안 과학에의 무지를 반성하면서 남은 인생 머릿속 사고의 지평의 균형을 조금 맞추어 보기 위해 이과의 이야기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
100%를 깨우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주제를 파악하고 사실을 이해하는 것까지는 성공한 듯이
보인다. 사실 지적인 행복감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제자가 생기고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뿌듯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모르겠는데, 나는 스스로 그렇다. 몰랐던 것을, 답답해하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해가 되기 시작할 때의 그 뿌듯함이 분명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의 행복감 그런 것 못지않게 기분 좋은 그런 기분이다.
사람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또 인생에 안 중요하다고 하면 안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지적인 유희를 통해서 성찰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책의 존재의 이유가 그런 것이 아니겠나라는 것을 느끼며
이 책을 문과이든 이과이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