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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레꼬레 Sep 03. 2023

연수

장류진 지음

장류진 작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채로 책의 첫 장을 읽어가면서,

결국 하루 만에 이 책은 다 읽게 되었다.


짧은 단편 6개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운전공포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도로에 나가기 위해 일타강사로 알려진 아주머니에게 운전연수를 받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펀펀페스티벌'은 주인공이 대기업 합숙면접에 참여하면서 밴드 결성을 하는데 그 합숙소에서 이뤄지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 단편 '공모'가 사실 제일 맘에 들었었는데,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지닌 회사에서 부장 자리까지 올라간

주인공과 술집을 운영하는 '천 사장'을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진다. 꽤나 현실적인, 너무도 있을법한, 혹은

내가 회사 다닐 때에도 이뤄졌었던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들이어서 도대체 작가는 회사를 몇 년 다닌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다음 단편 '라이딩크루'는 이 책의 단편 중 2번째로 좋아하는 단편인데 동네에서 자전거 동호회를 운영하는 주인공이 맘에 들어하는 여성 회원과의 연애를 꿈꾸던 중, 사진의 모습에 혹해서 당연히 여성인 줄 알고 가입 승인을 한 새로운 회원이 알고 보니 자신과 동성인 남성인 것을 알게 되고 좌절하고 그 남성 신규 회원이 너무나 잘생긴 외모로 기존 여성 회원들과 케미를 쌓아갈 때 일그러지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너무나 인상적인 단편이다. 결말이 해괴해서 그것도 맘에 든다.


4번째 단편 '동계올림픽'은 작은 방송사에서 인턴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올림픽 취재 기인데 다루는 건 금메달을 딸 것 같은 선수의 집에 가서 취재를 하는 것이지만 비치는 내용은 젊은 인턴이 과연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불안함과 막막함이 더 압도하는 그런 소설이라서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무거운 그런 기분이 든다. 소설에도 묘사된 추운 겨울의 황량함이 책의 종이들을 뚫고 내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은 그런 단편이랄까.


마지막 단편 '미라와 라라'는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국문과에 진학한 서른두 살의 박미라를 주인공으로 이뤄지는 소설인데 매번 형편없는 글솜씨를 보이던 미라가 어느 날 너무나 멋진 소설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으로 반전이 이뤄지고 그 멋진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오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에서 놀라운 점은, 각 주인공들의 독백에서 너무나 나 역시 동일한 감정을 느꼈었다는 게 포인트이다. 보통은 혼자만 하는 생각, 혼자만 갖는 마음들을 (차마 밖으로 꺼내기엔 부끄러운 감정들) 꽤나

솔직하게 표현해서 소설의 주인공에 쉽게, 그리고 빨리 감정이입을 하면서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소설의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읽고 나서도 그 잔상들이 기억에  꽤나 오래 남는 것이 장류진 작가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난 이제 누가 봐도 '청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나이에 이르렀지만 누구나 '청년'의 시기는 겪는 것이기에 이 소설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막막함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닌 것처럼 느꼈는데 처한 상황들은 나의 청년기에 비하면 더 차갑고 혹독하고 냉랭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항상 그렇듯 장류진 작가의 소설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너무나 즐겁게 소설을 읽다가, 다 읽고 나서

뭔가 약간의 찌꺼기 같은 감정들이 머릿속에 남게 된달까. 즐거운데 마냥 즐거운 게 전부 인 게 아니라서.

이게 곧 현실이라서. 소설이지만 현실적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어쨌든, 이 책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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