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지음
패닉이라는 이름의 남성 듀오로 가요계에 데뷔했던 이적은 '이적' 이름의 솔로 활동으로도 성공적으로 활동해 왔다. 나는 패닉의 빅팬도 아니고 이적의 빅팬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패닉의 앨범은 다 들어봤으며 이적의 솔로 앨범도 2집은 직접 구입했었고,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 이적의 콘서트도 다녀온 바 있다.
그가 처음 낸 책인 '지문사냥꾼'도 구입해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꽤나 이적이라는 뮤지션에게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이적이 전달하는 음악보다 그가 써 내려가는 가사들이 너무 좋다.
문학적인 농도가 진해서 은유적인데도 현실적인 느낌도 가미되어 있어서, 멜로디와 합쳐졌을 때 가사가
따로 노는 건 또 아니고 잔잔한 음률과 함께 가슴 깊이 박히는 그런 가사들.
거의 100% 한글로도 완벽하게 감상을 전달할 줄 아는 그는, 요즘처럼 알 수 없는 내용의 외국어 범벅의
그로테스크한 가사들이 판치는 가요계에서, 오랫동안 보존되었으면 하는 '씨간장'같은 존재로서 자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요새 하도 침착맨 유튜브를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씨국물' 이런 표현이 입에 붙었다.)
그런 이적이 수필집 같은 것을 출간했다고 하여,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거의 두 달 가까이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이적의 단어들'은 단어들에 대한 이적의 짧은 글 혹은 메모라고 봐야 하나. 짧은 끄적임이 있는 그런 책이라서 30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의 그런 책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적은 이적이기 때문에, 글자 수가 몇 자밖에 안된다고 해서 그 감상이 결코 짧지 않다.
오히려 그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고수의 경지에 이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하는 게 쉬워 보이면' 그러면 고수라고 하던데.
짧은 글귀로도 충분한 생각들을 표현할 줄 아는 글들.
더 이상 미사여구도 많이 없고, 담담하고 솔직하게 하지만 역시나 유려하고 아름다운 그의 글들은
뮤지션 이적 이외에 '작가 이적' 역시나 매력이 너무 많은 작가임을 증명해 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짧지 않고 풍족했던, 충만했던 독서의 경험.
요즘 참 날씨 좋은데, 이 책 한 권 선택해서 공원에서 햇살 받으며 책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책 전체에서 가장 맘에 드는 문구는 바로 책의 맨 앞에 나오는 문구이다. '인생'이라는 단어에 대한 글인데,
짧지만 마음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