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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레꼬레 Sep 24. 2024

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믿고 보는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는 십 대 소년 주인공이 종종 등장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전혀 사전 지식 없이 도서관에서 선택하여 읽은 소설인데, 십 대 소년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엄마와 주인공을 버리고 떠난 것으로 알고 있고, 엄마와 둘이서 지내는 주인공은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능력이 꼬마 때 발휘되기 시작, 십 대의 사춘기를 보내는 즈음에도 여전히 발휘되어 

가끔씩 괴로워하는 주인공과 도서 편집자인 엄마와 엄마의 레즈비언 애인이었던 여성 경찰과의

에피소드들이 소설의 전반부에 그려진다.

그리고 엄마와의 결별로 인해 이제는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여성 경찰이

몇 년 후 뜬금없이 주인공을 호출하여,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그런 스토리.

경찰이 소년을 부른 이유 역시 영혼을 볼 수 있다는 그 능력 때문.


스티븐 킹의 모든 소설을 읽은 것도 아니고, 그의 대표작을 두루 섭렵한 것도 아니다.

단지 빌리서머스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이후로 그의 소설을 좀 찾아봐야지 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을 뿐.


이 소설은 엄청 재미있지는 않고, 하지만 그렇다고 망작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 중간즈음에 위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천재답게 주인공과 사건이 유기적으로 얽혀서 들어가는 솜씨는 너무 훌륭하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상 속의 에피소드를 스티븐 킹만큼 덤덤하게 툭툭, 그러나 재미있게 던질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보통 그런 노력을 하다가 너무 진부해져 버리거나, 아니면 너무 색깔이 없어지던가 하는데 십 대 소년 주인공과 엄마의 관계와 그 애인과의 에피소드들은 캐주얼하면서도 귀엽고 그러면서 사건은 

또 그 안에서 줄기를 잡고 뻗어나가는 나무처럼 전개되니까.


그리고 별거 아닌 것처럼 묘사되었던 치매를 앓는 외삼촌의 존재는 소설의 마지막에 꽤나 드라마틱하게

어쩌면 뜬금없이 존재의 이유를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소년이 영혼을 볼 줄 아는 그 능력이 또 한 번

쓰인 다는 게 거참 절묘하다.


마치 결말을 정해놓고 그 모든 것들을 엮어낸 것처럼(아마도 작가들의 작업은 그러하겠지만).

설렁설렁하면서도 농담과 위트도 있고, 가끔씩 진지해지다가도 가벼워지는

이러한 농도 조절이 스티븐 킹의 고유한, 어마어마한 능력인 것 같다.


이 서평을 적을 때에 큰 재미는 없었다고 적어놓고서 글을 적다 보니 자꾸 칭찬하게 되는 점들이 많아진다.

길지 않아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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