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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덕 Dec 29. 2022

재수생 시절

나는 큰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다행히 큰아버지가 학원비를 주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달 큰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상점에 전화했다. 전화를 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큰아버지가 상점에 안 계실 때가 있어서 한 번 만나기 위해서는 여러 번 전화해야 했다. 가끔 큰어머니가 받으면 놀라서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애를 태우다가 우여곡절 끝에 큰아버지를 만나면 정말 기뻤다.

큰아버지와 나는 주로 큰아버지 상점 근처에 있는 지하도에서 만났다. 큰아버지는 돈 없애가며 다방에서 만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다방에서 주스를 시켰다가 큰아버지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 날도 덥고 커피 마시기는 싫고 해서 무심코 시원한 사이다를 시켰다가 돈 아껴 쓸 줄 모른다고 종업원 앞에서 야단을 맞았다. 나는 그래도 큰아버지가 고마웠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원은 종로 2가에 있었다. 종로학원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제 때에 입학금을 내지 못해 등록이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종로학원에서 받은 합격증을 보여주자 서무과에 있던 직원은 나를 서울대반에 등록시켜 주었다. 서울대반 학생은 총 50명 정도였는데, 지방 학생들이 많았다. 학생들은 대부분 연고대 이상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이 학원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학원 생활은 재미있었다. 실력 있는 선생님들의 학습 지도와 학원 친구들의 학습 의욕은 공부에 전념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잘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던 집주인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형은 왜 돈 안 벌고 공부만 해?”

“......”     

당시 우리 가족은 삼양동에 살고 있었다. 정릉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전셋값이 오르자 우리는 삼양동 산동네로 이사해야 했다. 삼양동 버스 종점에서 20분 이상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동네였다. 이런 동네에, 그것도 단칸방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재수하고 있다는 것이 자기가 보기에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주인은 그의 딸과 아들을 중학교까지만 공부시킨 후 공장에 보내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의 아픈 곳을 녀석은 용하게 찔러댔기 때문이다.

당시 어머니는 식당을 운영했으나 수입이 변변치 않았다. 둘째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자 기술을 배우겠다고 전기 수리를 하고 있던 동네 청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막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내가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했지만 나는 공군사관학교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군에 입대해야 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군사관학교 본고사에 합격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아직 예비고사와 2차 시험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실패 경험은 두려움을 주기 마련인 모양이었다.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본고사에 합격한 학생들은 정밀신체검사, 체력검정, 그리고 면접시험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공군사관학교의 정밀신체검사는 3군 사관학교 중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대부분 눈 때문에 많은 사람이 탈락한다고 했다.

나는 시력이 좋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력 검사에서 위기를 느꼈다. 렌즈에 양 눈을 대고 눈에 보이는 3개의 원 중 앞으로 튀어나온 것을 찾으라고 하는데 영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 대답했더니 군의관은 나를 별도의 장소로 데리고 갔다. 본고사 성적이 기록되어 있는 듯한 서류를 살펴보던 군의관은 “너 공부 때문에 눈이 나빠졌냐?”라고 물었다. 눈 때문에 떨어질까 걱정했던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뭔가를 적으면서 가라고 했다. 기분이 찜찜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신체검사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예비고사에도 합격하여 공군사관학교로부터 최종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다음 날 나는 학원 친구들과 함께 간단히 소주를 마시면서 석별의 정을 나눈 후 학원을 떠났다.

그런데 어느 날 큰어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 왔다. 저녁 무렵이었다. 큰어머니는 다짜고짜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자 큰어머니는 욕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큰어머니를 붙들었다. 내가 이유를 묻자 큰어머니는 몰라서 그러냐고 했다. 큰어머니는 큰아버지가 나의 학원비와 이빨 치료비를 대주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찾아온 것이었다.

당시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신체검사 전에 충치를 치료하고 오도록 했다. 치료하지 않으면 입학이 취소된다고도 했다. 충치가 많았던 나는 할 수 없이 큰아버지에게 부탁했다. 큰아버지는 아는 치과에서 치료를 받게 해 주었는데 큰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큰어머니가 하도 크게 소리를 치니까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부끄러웠다. 큰어머니는 내가 제지하자 어쩔 수 없었는지 욕을 하면서 같이 온 운전수와 함께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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