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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덕 May 01. 2024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

인도네시아의 대학들은 한국과 달리 9월에 1학기를 시작해서 12월에 종강을 한다. 그리고 2학기는 2월에 시작해서 5월에 끝난다. 물론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게다가 매년 조금씩 변하는 ‘르바란’ 축제일에 의해 교육 일정에 변동이 생기기도 한다. 

교육 일정 외에 한국과 다른 점은 학생 성적 평가 방식을 들 수 있다. 한국 대학에서는 대부분 상대평가를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절대평가를 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절충적인 방식으로 평가를 하고 있는데,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다만, 몇몇 학생들이 성적을 올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잘못하지 않았으면 정중히 거절하여 평가의 엄정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이후로는 점수를 구걸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학생들은 대체로 명랑하고 똑똑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나의 강의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가르치는 일이 즐거웠다. 학생들의 호기심에 찬 눈을 보면 가끔 공군사관학교 수업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생도 때도 그랬지만 수업시간에 조는 생도가 많았다. 항상 심신이 피곤하니 수업시간은 안식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웬만한 명강의가 아니면 생도들의 관심을 끌기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교수님이 생도들에게 강의를 해 보고 싶다고 해서 특강 시간을 마련해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강의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생도들이 졸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당황하시는 것 같아서 나는 돌아다니며 조는 생도들을 깨워야 했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학생들은 달랐다. 특히 여학생들은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재미있다고 웃었다. 수업시간에 웃음소리가 많으니 강의하는 것이 즐거웠다. 학생들은 내가 인도네시아에 처음 왔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나에게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알려 주었다. 식사 때나 인사할 때 모두 오른손을 사용해야 하며 왼손은 화장실 이용 시에만 사용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또 어떤 학생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서 친절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 한 학생이 나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른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가 몰라 주저했더니 그 학생이 내 오른손을 잡고서는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으나 상대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시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인사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의 특징은 시간 개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업시간에 지각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학생이 면담 요청을 하고서 나보다 늦게 온 적도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개 ‘반지르(홍수)’ 때문에 길이 막혀서 혹은 기차가 연착되어서 늦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행동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나는 1분만 늦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강박증은 1분만 늦어도 처벌을 받았던 사관학교 생도 생활 경험 때문에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약속이 있는 경우 약속 장소에 미리 간다. 늦을까 초조해하는 것보다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스마트 폰이 있어서 일찍 가도 지루하지 않다.  전자책을 보면서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시간 개념은 인도네시아인들의 낙천적인 성격과 환경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늦는 것에 꽤 관대하다. 따라서 모임이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서양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코리안 타임’이 있다며 놀렸다는 것이다. 

언젠가 한 인도네시아 교수가 ‘한국 젊은이들은 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육아 및 교육 부담이 커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역시 한국 사람들은 과학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2015년에 나는 학회에서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 교육과정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지금과는 조금 차이가 있으나 내가 근무하던 당시의 이야기라서 여기에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인도네시아 대학교 한국학과(Program Studi Korea Univesitas Indonesia)는 1997년부터 인문대학에서 교양선택 과목으로 한국어 강좌를 운영하였다. 매 학기 20-50 명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수강하였다. 그런데 교수 부족으로 인해 한국어 강좌 운영이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인도네시아 대학교는 자카르타 주재 한국 대사관 및 한국어 세계화 재단, 한국국제협력단,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의 지원으로 2006년 8월에 4년제 한국학과(한국어와 한국문화 전공)를 개설하였다. 한국어과 또는 한국학과는 나시오날 대학교, 가자마다 대학교에 이미 개설된 바 있지만 이들은 모두 3년제 과정이었다. 따라서 4년제 정규 학사과정은 인도네시아대학교가 처음이어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인도네시아 대학교 한국학과의 인기는 매우 좋은 편이다. 한국학과 개설이 정식 인가된 2006년에는 320명의 학생들이 한국학과에 지원하였다. 그런데 2007년에는 1,070 명이 지원하였고, 이후 지원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30-40 명을 선발하다가 60 명을 선발하기도 하였다. 입학 경쟁률은 20-30 대 1 정도이고 인문대학 내 영어과, 일본어과와 함께 3대 인기 학과가 되었다. 한국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이처럼 높은 것은 인도네시아에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졸업 후 취직 문제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학과 졸업생들은 타 전공 학생들보다 취직이 용이하여 한국의 대기업을 골라가며 선택하였다. 

한국학과 졸업 이수학점은 144 학점이다. 이 중 전공 필수 학점은 98 학점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한국어 39 학점, 언어학 15 학점, 한국 문학 18 학점, 한국 역사와 문화 21 학점, 논문 5 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한국학과 학생들은 이러한 수업을 통해 한국어 및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함양하고 있다. 한국학과 학생들이 예의가 바른 것은 이와 같은 강좌를 통해 배운 한국 문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도 교수가 나타나면 모두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이러한 광경은 한국 대학교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매우 흥미롭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는 인도네시아인 교수, 한국국제협력단, 한국어 세계화 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에서 파견된 한국인 객원교수, 그리고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채용된 한국인 강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인 교수들은 인도네시아인 교수들과 함께 한국학과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강의는 물론 논문지도, 학생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면담, 한국학 관련 세미나 개최, 인도네시아인 교수들과의 화합을 위한 모임, 학교 행사 참여 등을 통해 한국 및 한국인의 이미지를 제고하여 왔다. 

한국학과에 원어민인 한국인 교수가 많다는 사실은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의 자랑거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 의한 교수 파견 지원이 감소하여 인도네시아대학교에서는 그 대안으로서 한국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인도네시아인을 교수로 채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 졸업생들은 주로 한국 기업에 취직한다.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한국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소수의 졸업생만이 한국에서 유학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인 교수들 역시 대부분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소수만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에서는 한국의 일반 대학에서 출판한 책을 한국어 교재로 사용하다가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발행한 <<인도네시아인을 위한 종합 한국어>>를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과목은 아직까지 인도네시아어로 출판된 책이 없어서 담당 교수들이 자체 제작한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에는 인도네시아어로 된 한국 문학, 한국 문화, 한국사 교재 제작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인도네시아대학교는 인도네시아 최고 명문 대학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대학교에 한국학과가 개설되었다는 것은 한국 정부와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뜻깊은 일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 및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는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의 발전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대학교 한국학과 수업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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