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14년 6개월간 살면서도 여행은 많이 하지 못했다. 내가 가 본 곳은 자카르타, 수마트라, 족자카르타, 발리, 롬복, 술라웨시 등이다. 그것도 초기에만 많이 다녔다. 2015년에 반둥으로 이사한 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로 반둥에서 보냈다. 반둥은 한국의 초가을 날씨처럼 시원해서 그 어느 곳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여행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곳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반둥(Bandung) : “시원한 휴양 도시”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먼저 여행한 곳은 반둥이다. 2009년 5월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인도네시아대학교 학과장 교수가 한국학과 교수들과 함께 반둥으로 놀러 가자고 했다. 반둥은 ‘아시아 아프리카 비동맹회의’가 열린 곳임을 중학교 때 배운 바 있어서 그런지 친근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반둥은 유명한 휴양지이며, 아주 시원한 곳이라고 해서 나는 좋다고 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학교 차로 반둥을 향해 떠났다. 다행히 길은 많이 막히지 않았지만 4시간 정도 걸렸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반둥의 유명한 관광지인 화산 ‘땅꾸반 쁘라후(Gunung Tangkuban Perahu)’로 갔다. 땅꾸반 쁘라후란 '뒤집힌 배'라는 뜻이다. 산이 뒤집힌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은 이 화산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 서부 자부에 살던 미녀 다양 숨비가 그의 아들 상꾸리앙과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속임수를 썼는데, 이에 속아 화가 난 상꾸리앙이 만들던 배를 발로 차서 뒤집히게 했다는 내용이다.
해발 2,084 미터의 이 화산은 9만 년 정도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물과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화산 정상까지 올라가면 찬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춥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래서 이곳에 가려면 겉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화산 정상에서는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가끔 한국어로 '딸기 사세요'라고 하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있다. 낯선 곳에서 한국어를 하는 인도네시아 상인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화산 중턱에는 화산의 뜨거운 물로 삶은 달걀을 파는 가게들이 있어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달걀을 사 먹었다. 우리는 뜨거운 물에 발만 담갔다. 피로가 내려앉자,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내려왔다. 그리고 순다 전통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한국인 중에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런데 나는 비교적 잘 먹는 편이다. 특히 순다 음식이 입에 맞는다. 그런데 매운 ‘삼발’은 조심해서 먹는다. 삼발은 고추를 찧어서 만든 고추장 같은 양념인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아주 좋아한다. 한국인에게 김치가 필요하듯이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삼발은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튀긴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이라 느끼한 속을 매운 삼발이 개운하게 만들어 주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 처음 온 한국 사람은 삼발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삼발을 먹고서 배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만 사파리(Taman Safari)와 뿔라우 스리부(Pulau Seribu) : “가까운 야생, 가까운 섬”
2009년 8월에는 딸이 놀러 와서 '따만 사파리(Taman Safari)'에 갔다. 따만 사파리는 개방된 동물원이다. 상당히 넓고 위험해서 차를 타고 구경해야 한다. 동물원에 들어서니 초식 동물들이 다가왔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입구에서 산 당근이나 바나나를 주었다. 동물들이 침을 흘리며 먹을 것 달라고 가까이 오자 딸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즐거워했다. 그런데 사자와 호랑이같은 맹수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맹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만 사파리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많이 구경하지는 못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호랑이 쇼와 서부극 등이다. 딸이 코끼리를 타 보고 싶다고 하여 나도 처음 코끼리를 타 보았는데, 코끼리 등은 생각보다 딱딱했다. 다소 불편했으나 딸은 무척 좋아했다.
며칠 후에는 '뿔라우 스리부(Pulau Seribu)'에 놀러 갔다. 뿔라우 스리부란 천 개의 섬이라는 뜻이다. 자카르타 인근 바다에 크고 작은 섬이 많아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여러 섬 중 하나인 ‘뿌뜨리 섬’에 도착하니 무희들이 춤을 추며 관광객을 환영하였다. 바다는 깨끗하고 잔잔해서 수영하며 놀기에 적당했다. 저녁에는 카페에서 식사했다. 그곳에서 노래하며 분위기를 주도하던 사회자가 우리에게 한국 노래를 하라고 해서 아내와 함께 <사랑해>를 불렀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말로만 듣던 '코모도'였다. 공룡처럼 큰 코모도가 섬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발리(Bali) : “힌두의 섬”
2009년 12월 15일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25년이 되는 날이라 발리로 여행을 갔다. 인도네시아에 온 후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라서 얼마 전 발리에 다녀온 여교수로부터 한국인 여행 안내원을 소개받았다. 여행 안내원은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발리에 와서 여행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반 주택을 빌려서 여행객들이 숙박하게 하고 기사를 고용하여 여행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행업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안내원 덕분에 3박 4일 동안 편하게 발리의 유명한 관광지 여러 곳을 구경했다. 발리에는 힌두교도가 많다. 그래서 힌두 문화와 관련된 행사나 건축물이 눈에 많이 띈다.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조각가 ‘뇨만’ 씨가 만들었다는 거대한 가루다 동상, 발리에 온 관광객을 환영하는 ‘께짝 댄스’ 공연,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이 탈출하는 장면의 배경이 된 ‘울루와뚜’ 사원, 일몰 광경이 아름다웠던 해변,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우붓’, 장난이 심한 원숭이 등이 지금도 기억난다. 단지 아쉬웠던 것은 아름다운 바닷속을 구경하기 위해 배를 타고 멀리 나갔다가 멀미하는 바람에 ‘스노클링’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이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멀미약이 멀미를 키운 모양이었다.
다나우 또바(Danau Toba) : "호수와 전설"
2010년 1월 우리 부부는 코이카 단원으로 파견되어 같은 과에서 근무하게 된 두 여성 단원과 함께 수마트라에 있는 ‘다나우 또바(Danau Toba)’로 여행을 갔다. 다나우 또바는 ‘또바 호수’라는 뜻이다. 우리는 수카르노하타 공항에서 수마트라섬의 ‘메단’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그곳에 살고 있던 코이카 단원의 집에서 이틀 지낸 후 또바 호수로 가는 버스를 탔다. 또바 호수에 도착하는 데 4시간 정도 걸렸다.
또바 호수는 수마트라섬 북부에 있다. 길이는 100킬로미터, 넓이는 30킬로미터, 깊이는 505미터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이 호수와 관련된 전설은 또바 호수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어느 날 주인공이 낚시하다가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다. 그러자 물고기가 살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살려주었더니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화되었다. 아가씨는 자기가 물고기였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주인공은 약속하고 이 아가씨와 결혼했다. 이후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런데 식탐이 많아서 어느 날은 아버지에게 드릴 음식마저 다 먹어 버렸다. 화가 난 아버지는 '물고기 자식'이라고 아들에게 욕했다. 그러자 물이 솟아나서 온 땅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전설에서는 주인공이 약속을 어겨 땅이 물에 잠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산 폭발로 호수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호수의 푸른 물빛과 시원한 바람이 생각난다.
이 호수 가운데에는 큰 섬이 있다. 그 섬 이름은 ‘사모시르’이다. 우리는 배를 타고 사모시르섬으로 갔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호수 위에 지어져 있었다. 호수에서 서양 사람들이 즐겁게 수영하고 있어서 우리도 짐을 풀자마자 수영복을 입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호수는 깨끗하고 시원했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모시르섬에서는 3박 4일을 지냈다.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지냈더니 천국처럼 느껴졌다. 운전면허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섬을 구경하려다가 위험할 것 같아 포기했었는데 마침 경찰이 오토바이 운전면허증을 검사하는 것을 보고 웃었던 일, 작고 예쁘게 생긴 교회들의 모습, 온천 풀장에서 수영하며 놀았던 일 등이 생각난다.
우리 일행은 다시 메단으로 와서 다른 코이카 단원들과 만나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단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했다. 그런데 단원 중 한 분은 외로워서 원숭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낯선 이국에서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에는 자바 사람과 수마트라 사람을 비교하는 말이 있다. 자바 사람은 온순하여 화를 잘 내지 않으나 수마트라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낸다고 했다. 그래서 자바 사람은 일본 사람과 비슷하고, 수마트라 사람은 한국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도 경험한 적이 있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택시 기사에게 요금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더니 그 기사는 큰소리로 화를 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모두 놀랐다. 우리는 얼른 기사에게 돈을 주고 황급히 택시에서 내렸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사웅 앙끌룽 우쪼(Saung Angklung Udjo) : “관객이 연주자가 되는 밤”
2010년 2월에 딸이 다시 놀러 왔다. 딸은 나처럼 추위를 많이 탄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네시아를 좋아한다. 딸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여러 곳을 구경하다가 어느 날 우리는 반둥에 있는 ‘사웅 앙끌룽 우쪼(Saung Angkulung Udjo)’에 갔다. 이곳에서는 보통 인도네시아의 전통 악기 가믈란(Gamelan)과 앙꿀룽을 연주하고 인도네시아의 전통 인형극 등을 공연한다.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양음악도 들려준다.
공연 중 재미있었던 것은 관객들이 앙끌룽을 직접 연주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나의 음을 낼 수 있는 작은 앙끌룽을 관객들에게 나누어 주고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앙끌룽을 흔들어 소리가 나게 했다. 그러면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음이 바뀌면서 아름다운 하모니가 이루어졌다.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에 직접 참여케 함으로써 더욱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좋게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공연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관중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을 무대로 불러내어 음악에 맞추어 같이 춤을 추었다. 연주 및 공연 시간은 모두 100분 정도 되는데, 딸이 아주 좋아했다.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족자카르타(Yokyakarta) : “새벽의 보로부두르와 밤의 라마야나 공연”
2010년 4월 아내와 나는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주관하는 4박 5일간의 '족자카르타'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족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만나면 족자카르타에 가 보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해서 꼭 가 보고 싶었기던 곳이다.
우리는 먼저 족자카르타에 있는 가자마다대학교(UGM) 한국학과를 방문하였다. 학과장 교수와 한국어교육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족자카르타를 여행했다. 끄라톤(왕궁)과 물의 궁전, 말리오보로 거리, 아판디 미술관, 아만지워 호텔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빠랑뜨리띠스 해변에서는 말도 타 보았다. 그런데 역시 족자카르타 여행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보로부두르와 쁘람바난 사원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더워지기 전에 구경해야 한다고 해서 새벽에 일어나 전등을 들고 보로부두르 정상까지 올라갔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점차 떠오르는 해의 모습을 보면서 새벽에 일어난 보람을 느꼈다. 보로부두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언덕 위의 불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모양의 불탑이 엄청나게 많았으며, 각 부조에는 불교와 석가모니의 생애와 관련된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대충 구경했는데도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나 더워지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온 이유를 실감했다. 그런데 우리가 호텔로 돌아갈 때쯤 오는 관광객들도 적지 않았다.
쁘람바난 사원은 힌두교 사원으로서 보로부두르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 사원을 구경한 후 우리는 '라마야나' 공연을 보았다. 주인공 라마가 원숭이의 도움으로 그의 아내 시타를 구출한다는 이야기였다. 화려한 무대와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족자카르타에 간다면 이 공연을 추천하고 싶다.
따만사파리에서 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