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서 육아 코너를 둘러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첫 책의 분야이기도 했고, 요즘 부모님들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나를 보는 나름의 시장조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표 영어가 자리를 잡았던 자리에 작년부터는 강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문해력"입니다. 서점가는 "문해력"과 "오은영 박사님" 두 축으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의 문해력에 위기가 오면서 사교육 시장에서도 미세한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모든 과목의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 "독서"가 답이다. 아이들을 읽고 쓰게, 아니. 그도 안된다면 "읽게"라도 하기 위해 사활을 건 책들과 교육상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책벌레였고, 공부도 잘했던(쿨럭) 사람으로서 독서는 공부의 기초체력임을 압니다. 책을 잘 읽으면 국어는 당연히 잘하고, 언어는 통하므로 영어도 잘합니다. 수학은 자칫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논리력을 키우기 위한 존재 의미를 가진 과목이므로 당연히 독서를 많이 한 친구가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 중에 국어와 수학의 성적이 둘 다 높은 아이들이 많은 이유이지요.
그런데 이런 책을 부모님들이 읽으신다고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게 될까에 대한 의문을 떨쳐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똑똑해서 부모가 의도를 가지고 대하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립니다. 다들 한 번씩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막 공부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공부 안 하냐! 그러면 바로 안 하고 싶어지는 것 말입니다. 나도 분명 공부하려고 했는데 누가 시키니까 하기 싫어진 마음,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아이들도 어른들만큼이나 남에게 통제받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양육 딜레마] 중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율성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 자율성을 가지고 내적동기가 유발되어야 행동할 수 있고, 그 행동을 지속할 수가 있습니다. 통제나 강요가 잠깐은 효과를 보일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남편도 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수시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읽긴 하지만 다소 우리 부부의 속마음에는 우리가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고 독서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아이도 책을 좋아하겠지?라는 계산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ㅎㅎㅎㅎ 부모가 책을 정말 열심히 읽고 계속 읽어도 아이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놀 것이 없어서 심심하면 차라리 방바닥에 배를 깔고 뒹굴거릴지언정 책을 읽지 않더라고요. 엄마 아빠의 책을 던져버리기까지 합니다. 책을 보는 "행위" 자체로는 아이에게 동기유발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책을 계속 읽는 걸까요? 부모가 책을 읽는 것이 정말로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걸까요?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바로 "문제 해결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좋은 상황에서는 언제나 평온을 유지하고 어느 정도 꾸며서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이 닥치거나 당황할 때 나오는 모습이 바로 그 사람의 본질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를 잘 인식하고 그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 삶을 행복하게 현명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부모의 문제 해결 방식을 늘 가까이서 보고 배우는 것은 바로 아이입니다.
저의 문제 해결방법은 일단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상황을 다 상상합니다. 최악의 상태부터 상정하는 것이죠. 그러면 실제로 어떤 일이 생기든 그것보다는 낫습니다. 세상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보호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저희 엄마를 닮았습니다. 이보다 더 상상력이 풍부할 수는 없게 최악의 상황을 잘 생각하십니다. 이런 방법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옴짝달싹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만히 있어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죠.
저는 책을 통해서 다른 사고방식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 그리고 방식,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것을 아니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힘에 부칠 때, 그동안 해왔던 문제 해결방법으로는 해결을 할 수 없을 때 책에서 답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모습은 그렇습니다. 부모가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 아이도 그 성장의 방법을 찾는데 독서가 있을 수 있구나 를 알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살다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나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답을 내기가 힘에 부칠 때 제가 그랬듯 나의 아이가 책을 뒤적거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 잔상과 좋은 기억이 더해져서 말입니다.
오늘도 저는 책을 읽지만 아이에게 책을 “함께” 읽자고 강요는 안 할 생각입니다. 책을 통해 엄마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언젠가는 책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