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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Dec 13. 2019

네가 잠들면 무릎을 꿇게 돼

자동으로 무릎이 꿇어진다


아이 얼굴을 보려

무릎을 꿇는다.

자발적인 굴욕은

아이에게만 가능하다.



손바닥을 바닥에 짚고 무릎을 꿇는다. 등을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이고 숙연하게 한 곳을 바라본다. 눈이 향한 곳에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가 있다. 얼굴을 부비며 아이 살냄새를 맡고 싶지만, 괜히 가까이 갔다가 아이가 깰수 있으니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경건한 시간이다.  


자는 천사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살아 있는게 맞을까? 지금 느끼는 완벽한 행복이 믿겨지지 않아 의심된다. 천사에게 영혼이 있는지 확인하려 눈을 몸쪽으로 내린다. 작은 숨소리와 함께 융기와 하강을 반복하는 언덕을 볼때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 숨을 잘 쉬고 있구나.  


신생아 시절을 거쳐 곧 5살이 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 3.9킬로로 태어난 아이는 16킬로가 되었고, 손끝부터 팔꿈치 길이만큼도 안되던 키는 이제 내 허리까지 온다. 가마가 훤히 보이던 듬성듬성 머리카락은 빽빽하게 숲을 이룬지 오래. 그래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자는 얼굴이다. 신생아 때와 똑같은 자는 모습.


자기시간이 없는 워킹맘 라이프를 살고 있다. 나만 그런건 아니다. 남편도 그렇다. 남편은 내가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면 그때부터 새벽1-2시까지 개인시간을 보낸다. 낮잠을 아무리 자도 눈꺼풀이 12시를 못버티는 나는 새벽을 선택했다.  


알람소리에 눈이 떠지면 침대 옆에 있는 간접등을 켠다. 조잘조잘 대화를 하다가 잠든 아이는 침대 끝으로 굴러가있다. 발 밑에 말려있는 이불을 곧게 펴서 덮어주고 나가려는데 천사의 얼굴이 발목을 잡는다. 아이가 깰까봐 조심히 곁에 가서 얼굴을 본다. 해변에 앉아 바람을 쐬듯 아이 얼굴을 본다. 마음의 크고 작은 상처가  아물어 없어진다.  






"회사에서 무릎을 꿇은 적이 있나요?"하고 후배가 물었다. 하나의 장면이 아득하게 떠올랐다. 4년 전 Y업체와 Joint Venture(**2개 이상의 기업이 특정목적을 위해 공동사업체를 만드는 것)를 할 때였다. 각 분야에서 Top Player인 양사가 50:50으로 출자를 하기로 MOU를 맺었다. MOU에 싸인 할때까지 협조적이던 Y업체는 실무협상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우리팀은 무조건 Joint Venture를 성공해야했다. 비협조적인 Y업체를 구슬리고 달래면서 해달라는 자료를 다 만들어줬다. Y업체는 자세를 낮춘 우리를 보며 더욱 과도한 요구를 했다. 아마도 공동출자 회사에서 주도권을 얻고 싶었을 거다. Y업체가 비협조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사이, Joint Venture를 마무리 해야하는 기한이 다가오고 우리팀은 조급해졌다.


조급함을 눈치 챈 Y업체는 이빨을 드러냈다. 크고 작은 꼬투리를 잡으며 비난하고 모욕했다. 실무진이 8명 모인 자리에서 결국 우리팀장은 고개를 숙였다. '제발, 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가져갑시다'라고 무릎을 꿇었다. 한쪽 손을 우리팀장 손에 잡힌 Y업체 팀장은 나머지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도 같이 하라고.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라고 한마디 하고 고개를 숙였다. 너희처럼 격 떨어지는 회사와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자체가 유감스런 상황이니까. 팀장님의 노련함으로 회의를 마무리를 하고 공항가는 택시를 탔다. 2박3일동안 Y업체에게  모든 기가 빨린 팀장이 짠했다. "팀장님, 괜찮으세요?"하고 물었다. 팀장은 말이 없었다.


출국시간보다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빨리 Y업체와 헤어지고 싶어서 급하게 나오다보니 한시간 이상 일찍 도착해버렸다. 카페에 앉아 팀장님과 팀원들과 둘러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할 기운이 없었다. 괜히 나때문에 이런건가? 죄책감이 들어 아무말이나 하려는데 팀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하는 게 맞겠지?"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다시 한번 그에게 괜찮은지 물으며 먼지가 붙은 그의 무릎을 바라봤다.


"내가 회사에서 무릎을 몇번 꿇었을 것 같애?"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당황했다. CS센터에 있던 분도 아니고 평생 전략본부에서 해외사업만 하던 분이니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에 "세번?"이라고 답했다.   


" 수가 없다."하며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팀장은 프로포즈할 때도 무릎을 안꿇었는데 회사에서는 여러번 꿇었다고. 본인이 한번 꿇으면 몇천명 되는 직원들이 먹고 사는데 이게 무슨 대수냐고 말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팀장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이게 무슨 대수냐고."


내가 과연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 나같은 사람은 절대 할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회사는 몇천명의 직원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는 곳이다. 이곳을 모욕하는 이에게 무릎을 꿇어가며 그들을 인정할 필요가 있을까? 퇴사를 했으면 했지 무릎은 절대 꿇을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엔 '절대'가 없으니 언젠가 무릎을 꿇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오직 아이 앞에서만 무릎을 꿇고 싶다. 나의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건 아이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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