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드니 Aug 23. 2021

Prologue. 저, 청담 살아요

부자동네에서 멘탈 붙잡고 살아가는 팁을 소개합니다


제발 초면에 묻지마세요. 감당 못하시니까.

저 청담 살아요.





제발 사람들이 초면부터 묻지 말았으면 하는 게 있다. 사실 이 질문은 무례하기 짝이없다. 초면에 어떻게 개인정보를 당당하게 캐묻는단 말인가. 하지만 회사생활하며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반부터 호구조사가 제대로 안되면 상호 소통이 불가능한 듯 굳이 초면에 이렇게 묻고야 만다.

“어디 사세요?”     


이 문장이 들리는 순간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오므리게 된다. 음... 잠시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시선을 바닥으로 깐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수줍은 입김과 함께 내 입술에서 세음절이 뱉어진 순간, 상대방은 얼굴의 모든 구멍을 열어젖히며 방금 내가 말한 단어를 힘껏 외친다.

“청담이요?!”     


그렇다. 나는 청담에 산다. 정확히 말하면 청담역 부근에 산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촌. 장동건, 고소영 등 유명 연예인은 물론 박인비 같은 성공한 운동선수, 기업인들이 산다. 사는 곳 뿐이랴. 청담사거리 위로 디올, 버버리, 샤넬 등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샵이 기차놀이하듯 나란히 서있다. 명품거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한끼에 20만원이 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이 골목마다 하나씩 보인다. 그곳에서 온몸에 명품을 휘두른 채 우아하게 칼질하는 청담동 며느리들. 청담의 평범한 풍경이다.      


그런데 밑단이 다 풀어진 구제 청바지에 어깨가 도드라지는 후질근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내가 청담 주민이라니. 다들 인지부조화가 생길 수 밖에. 사실 맨처음 청담역 부근에 이사 왔을 땐 설렜다.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면 TV에 나왔던 유명 맛집과 힙플레이스들이 있다. 무엇보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처음엔 듣기 좋았다. 청담 살아요? 우와. 타인의 감탄은 괜히 어깨를 올라가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나는 날 속일 순 없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청담 사람이 아니다. 401버스를 타고 강남구청 앞 정류장에 내리면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 동네에 맞는 사람일까? 20평대 복도식 아파트에 세입자로 사는 내가, 국산차를 몰고 다니는 내가 이 동네와 어울릴까? 결혼하고 나서도 이런 생각이 기저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아이를 낳고 더욱 두려움은 커졌다. 나의 자산상태나 별로 여유롭지 못한 생활이 드러날 까봐.

       

그런데 두려움은 잠시. 청담에 사는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날 두렵게 하지 않았다. 날 두렵게 하는 건 그저 내 자신이었다.  오고가며 만나는 사람들 중에 단 한명도 집이 자가인지 세입자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또 내가 들고나간 핸드백, 내 목에 걸린 목걸이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은 뭘 하는지 쉬는 시간에 뭘 하는지 물었다. 평소에 어디서 몰입하는 지 궁금해했고 글을 쓴다고 하면 신기해했다. 이상하네. 이게 청담 사람들이라고?      


의문스런 마음에 천천히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곳에 살기 전에, 아니 살면서도 가지고 있던 청담동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흔들렸다.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한 청담동 사람의 모습은 청담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청담에 어쩌다 ‘놀러오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쩌다 이벤트성으로 놀러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무언가를 평가하지 않고 관찰하면 거기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없앨 수 있다. 관찰된 것을 호의로 간주하면 심지어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 소설 <명상살인> 中 


소설 <명상살인>의 한 대목처럼 청담에 대해 평가하고 좌절하는 대신 천천히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는 건 쉽지 않지만 회사 사람들 vs 청담동 사람들을 비교관찰해보니 확연한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관찰된 것들은 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만한 것들이었다. 청담 사람들은 이미 가진게 많아서 그런지 마음이 여유로웠다. 여유에서 나오는 삶의 방식은 단순했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고 따라하고 나면 뭔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들이 었다.


이번 브런치 프로젝트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이야기는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장부터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