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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Mar 01. 2022

승진했는데 기분이 그저 그렇다.

이미 내 시야는 달라졌다.


안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 받은 기분




작년 딱 이맘 쯤, “승진 누락자의 소회”라는 글을 발행했었다. 침몰해가는 매출과 조직문화를 심폐소생하고자 조직에 충성을 다했는데, 고작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승진이 누락되었던 이야기였다. 그 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마음 아파해주셔서 감사했다. 그 덕에, 이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듯 하다.     


(작년에 쓴 글 링크 : https://brunch.co.kr/@sydney/207)



저 승진했습니다. 허허. 그런데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생각해봤다. 작년에 그토록 간절했던 승진인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1. 나는 고인물이었다.

같이 승진한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다.  실력이 뛰어나서 그런건 절대 아니다. 우리회사는 승진을 시킬  직전 승진연차와 3개년 종합평가를 따지는데, 승진연차 년수 + 3개년 종합평가 점수가 가장 높았다. 실장님 뺨을 때리지 않는 이상 승진 확률이 높았다. 작년같은 경우에는 경쟁자가 많았다. 후보군에서 유일하게 공채 중에 이름을 올려서 많은 공채 선후배들의

응원도 받았다. 만약에 그들을 제치고 승진했다면, 어렵게 승진한 케이스라  승진의 맛이 달콤했을 . 하지만... 회사는 다른 선택을 했다.



2. 회사에 애정이 식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회사를 정말 사랑하는 1인이었다. 이번 회사는 두 번째 회사인데, 전 직장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좋은 회사였지만 기업문화가 정말 최악이었다. 두 번째 회사이자 10년 넘게 근속한 지금회사는 기업문화가 정말 좋다. 신입사원 채용을 할 때 합숙을 하는 걸로 유명한 회사라, 인격적인 면에서 튀면 입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과 있을 때 인화를 많이 느끼고, 사람사는 세상임을 느껴왔다.   

  

그런데 승진 평가에서도 저 인화가 작용하는 걸 보고 (육아휴직했던 너를 시키면 담당 임원이 눈치가 보임) 실망했다. 이런 곳에 왜 애정을 투여하고, 성장을 기대해야하는지 이유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작년 1년 동안은 회사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만 생각했다. 예전에는 인간관계에 있어 고민이 있는 동료나, 업무에서 헤매는 동료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담해줬다.     


왜냐면 회사를 잘 가꿔나가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을 다독이고 끌어가야 한다고 믿었었으니까. 그런데 작년 승진을 겪고나서는 누군가 나에게 나가오면 실눈을 뜨고 잘 모르겠다는 표정만 지었다. 음.. 나 잘모르겠어. (나한테 물어보지마.) 알아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모른다’라는 말을 반복하니 정말 모르는 상태가 됐다. 물고기 심장처럼 파닥파닥 뛰어다니던 열정은 죽은 생선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3.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게됐다.

처음으로 이직 시장에 발을 들였다. 사람인/인사이트/원티드 등 잡마켓등에 이름을 올려봤다. 이름을 올리고 이력을 쓰다보니 턱없이 경쟁력이 없는 사람인 걸 깨달았다. 10년 만에 영어,일본어 시험 성적을 최고점대로 리셋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로 정리해뒀다. 그랬더니 정말 많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오, 이 회사 아니어도 날 찾는데는 많구나.     


많은 제안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하진 못했다. 지금 회사 연봉 수준이나 복지를 맞춰줄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그만큼 지금 회사가 여러모로 업계를 리드하고 있는 건 맞다. 그래도 회사 바깥으로 나갔을 때 내 경쟁력을 생각해보면, 1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낫다는 확신이 있다. 몸담은 회사가 당장 무너져도 어디서든 뭐든 해낼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사업준비도 시작했다. 일단 아이템을 못잡아서 블로그부터 하고 있다. 아무래도 책과 스토리텔링을 좋아하고, 해외영업을 쭉 해왔기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 중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느낀 건데, 세상에는 돈버는 방식이 정말 무궁무진하다. 사무실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어야만 돈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우물안의 개구리 였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생각보다 돈은 쉽게 벌리기도 한다. 블로그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많이 배웠다.      


정신승리 같지만, 작년에 승진 못한 게 잘된 일일 수도 있다. 승진을 했다면 또 회사 일에만 매몰되어 바깥 세상이 어떤지 잘 몰랐을 거다. 지금 우리 회사는 잘 항해하고 있지만 알고보면 침몰하는 중일지 누구도 모르니까.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 혹시 작년의 나처럼 승진에 누락되거나 기대하지 못한 실패를 맛본 분들이 있다면, 그 실패가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는 정말, 무슨 일이 생겨도 잘 해낼 것만 같거든.




ps. 승진 축하 메시지가 많이 왔다. 모든 답장에 "운이 좋아서"라고 답장했다. 물론, 마음에 없는 소리다. 회사 사람들에게 100%의 마음을 드러내는 게 꺼려질 정도로 애정이 식었다. 앞으로 가식적인 회사생활,,, 얼마나 더 할수 있을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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