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드니 Apr 08. 2022

회사 가기 싫지만 막상가면 신나요

일은 영원하지만 그놈은 영원하지 않거든요


회사 가기 싫다

근데 막상가면 신난다




파열하는 알람소리에 눈이 떠진다.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아 알람을 끄고 정자세로 하늘을 본다. 이상하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설마 몸이 굳어버린 걸까? 겁에 질린 채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본다. 잘 움직인다. 휴. 다행히 몸이 굳은 건 아니군. 그런데 왜이렇게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운 걸까. 사실 이유를 알고 있다. 회사 가기 싫으니까!


매일 아침 나는 나 자신과 싸운다. 일어날 것인가,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항상 나와의 싸움에서 진다. 힘을 꽉 주고 기상하려다가도 바람빠진 풍선처럼 온몸에 힘을 빼버린다. 그러다가 지각을 겨우 면하는 마지노선 시간이 되서야 잽싸게 움직인다. 출근 준비가 시작되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빨리 사무실의자에 엉덩이를 붙여야한다는 생각만 한다.


겨우겨우 9시 정각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자리 컴퓨터 전원이 이미 켜져있다. 센스있는 옆자리 후배가 9시 5분 전에도 내가 등장하지 않자, 미리 컴퓨터를 켜놨다. 내 앞자리에서는 실장님과 부장님들이 열띤 토론중이다. 솜털위에 구슬을 놓듯 살포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30분 전 출근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업무에 집중하는 표정을 짓는다.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니 기다렸다는 듯 메신저창이 점멸한다.

"시드니, 커피 마셨어?"


간단하게 오전 할일을 정리하고 동료와 함께 회사 1층 카페로 내려간다. 항상 먹는 소이라떼를 주문하고 테라스에 앉는다. 빌딩 숲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고, 심폐소생술 하듯 카페인과 맑은 공기가 입속으로 들어온다. 그래, 이거야. 이거 때문에 출근하는 거지. 분명 1시간 전만해도 회사오기 싫어 죽을 것 같았는데 막상 오니까 기운이 돈다. 앞 동료에게도 내 이상복잡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분명 1시간 전까지 너무 회사 오기 싫었거든? 근데 이상하게 회사 오니까 기분이 좋네."


내 말을 들은 동료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회사 오기 싫은 사람 맞아? 내가 보기엔 니가 전사에서 제일 신나게 회사 다니는 것 같은데."

뭐시라. 내가 제일 신나게 회사를 다닌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직장생활 12년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느끼며 다녔는데. 소설을 쓰라고 하면 10권은 쓸수 있고 간증을 하라고 하면 2박 3일동안 잠 안자고 입털수 있는데. 애끊어지는 내 고통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말라고!


바닐라향이 달콤하게 올라오는 소이라떼를 한모금 머금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말도 맞는 것 같다. 회사에 오면 이상하게 신난다. 왜지? 아마 오랜시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몇가지 원리를 깨달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원리1. 우주는 영원하지만 생명체는 영원하지 않다는 스티븐 호킹의 말처럼, 일은 영원하지만 그 새끼는 영원하지 않다.


원리2.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성장시켜야한다. 회사는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 커리어를 잘 쌓고 있는다면, 갑자기 이 회사가 망해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원리3. 뜯어먹을 게 많다. 안다. 회사가 날 묶어두기 위해 많은 복지를 제공한다는 것을. 그럼 어때. 개인적으로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누릴 수 있으니 최대한 많이 활용한다. 회사콘도, 교육비, 카페 할인까지.


원리4. 내 것을 준비 하기 위한 대안이다. 회사 안에서든, 회사 바깥에서든 나만의 것을 할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는 온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대안이 되는 것이 지금의 회사생활이다.



원리 1,2,3,4를 한번 되뇌이면 갑자기 회사가 사랑스러워보인다. 그래, 회사에 오는 건 고통스럽지만 이곳에 배우면 앞으로 인생에서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른다. 혹시 오롯한 내것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경험한 것들이 자양분이 될 테니 지금 당장 대안이 없다면 이곳에서 배울 거 다 배우고 뽑아먹을 거 다 뽑아먹고 있는게 가장 현실적이다.


너무 긍정적인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아니, 긍정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거다. 회사는 괴로운 곳이다. 조직이 우선시 되므로 내 의지로 할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계속 괴로워만 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인생이 짧다는 데 동의한다면, 인생의 일부인 회사 다니는 시간은 얼마나 짧을지. 짧은 시간을 잘 담금질하고 활용해야 내 삶이 단단해진다. 중국 회화사 연구가 제임스 캐힐의 말처럼.


삶이란 퍽 짧으므로 우리는 촛불을 밝히고 어둠의 시간을 충분히 이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제임스 캐힐 <중국 회화사>
매거진의 이전글 승진했는데 기분이 그저 그렇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