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청담동 이야기를 쓰는 시드니입니다.
관자가 넘치는 동네에서 살다가
이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요.
문득, 오늘은 이 글이 쓰고 싶었습니다.
맛있고 행복한 어린이날 되세요 :)
관자는 나에게 시금치였다. 보통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튼튼해지려면 시금치를 먹어야 한다고 채근할 때 우리 엄마는 관자를 내 밥그릇 위에 올려뒀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강요된 시금치를 싫어하듯 나도 관자를 싫어했다. 고무줄 같은 식감에 묘한 비린내는 푸근한 밥상머리에서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관자를 싫어하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매 끼니 관자요리를 만들었다.
도톰한 관자를 숭덩숭덩 썰어 버터에 구워낸 관자구이, 샛노란 계란물을 풀어 부친 관자전, 참기름장에 콕 찍어먹는 관자회까지. 어떤 날은 밥을 뺀 모든 요리에 관자가 들어있었다. 그런 날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먹을 게 없다고’ 투정을 부리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곤 했다. 목구멍에 넘기는 자체가 고문인 게 바로 관자였다.
우리집에 관자가 많은 이유는 할머니댁이 조개양식장과 가까운 해안가였기 때문이다. 간이 안 좋은 아버지를 걱정한 할머니는 장이 열리는 날 관자를 잔뜩 사서 우리집에 보냈다. 특히 관자철인 봄에는 우리집 냉장고 문을 열면 관자를 담은 비닐봉지가 와르르 쏟아질 정도로 관자가 많았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말캉한 관자살을 씹어삼켰지만 간도 좋고 도통 아픈데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관자만큼 먹기 싫은 게 없었다.
두 손을 테이블 밑으로 내리고 인상을 쓰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관자가 이렇게 너한테 천대받을 게 아니라고. 서울 사람들은 특별한 날 한번 먹을까 말까 한 귀한 음식이라고. 그건 서울 사람들 사정이고 나는 여전히 관자가 싫다고 하자 엄마의 손이 내 등 뒤로 서서히 올라갔다. 할 수 없이 재빨리 제일 작은 관자전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질긴 껌을 씹듯이 관자살을 질겅거리며 다짐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서울로 가야지. 관자가 구하기 힘들고 먹기도 힘들다는 그 서울로.
다행히 염원대로 20살에 서울로 왔다. 서울 음식은 확실히 달랐다. 삼겹살 하나에도 선택지가 많았고 대학가라 가격도 쌌다. 특히 나는 철판구이를 좋아했다. 뜨거운 불판에 고기를 달달 볶아먹다가 남은 양념으로 볶아먹는 밥은 신세계였다. 매끼 철판구이만 먹고 살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 중에 몇몇은 꼭 조개구이집에 가고 싶어했다. 달큰한 레몬소주에 치즈가 올라간 조개구이가 그렇게 맛있다고 내 손을 끌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조개구이 집에 간 날은 자취방에 돌아와 라면 하나를 다시 끓여 먹었다.
취업을 하고 2년 차가 됐을 때 다른 층에서 근무하는 대리님과 소개팅을 하게 됐다. 첫 만남에 대리님은 나를 청담동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태어나서 청담동은 처음 가본터라 전날부터 긴장됐다. 신경이 쓰이는 건 소개팅 상대인 대리님이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만날 사람들이었다. 혹시 내가 시골출신인 걸 알아차릴까봐 옷장에서 한참동안 옷을 골랐다. 프릴이 들어간 원피스를 입을까? 아니면 차분해 보이는 정장 자켓을 입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블랙 롱 원피스에 회색 케이프를 두르고 갔다.
레스토랑에 도착해서 점원에게 메뉴판을 받는데 묘하게 손이 떨렸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나의 촌스러움이 발각 될까봐 조용히 있었다. 메뉴판을 능숙하게 훑던 그는 평소 잘 못 먹는 음식이 있다면서 먹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건 바로 관자 스테이크. 그는 메뉴판을 내쪽으로 보여줬다. 뺴곡한 설명 중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3만원이라는 가격이었다. 고작 몇점 안나오는 관자가 3만원이라니. 우리집 냉장고에 빼곡이 쌓여있는 관자가 생각났다. 오래 묵혀둬서 성에가 낀데다 비린내까지 진동하는 관자들. 고향집 냉장고에 넘치는 관자들을 상상하고 있는 나에게 대리님은 관자가 별로냐고 물었다. 아, 아니요라고 손사래를 치자 그는 점원을 불러 관자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주문하고 20분 정도 지났을까 관자요리가 서빙되어 나왔다. 넓게 펼쳐진 연노랑 양파소스 위에 6개의 관자가 나란히 담겨있었다. 나를 향하던 대리님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은 관자로 향했다. 대리님은 스푼가득 양파소스와 관자를 채워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감탄사를 외쳤다. 한쪽볼로 관자를 씹던 그는 관자요리를 내 쪽으로 밀었다. 대리님이 했던 것처럼 스푼에 양파소스와 관자를 골고루 담에 입으로 쏙 집어넣았다. 갑자기 눈이 확 뜨였다. 집에서 먹던 그 관자가 아니었다. 프랑스 인근 지중해에서 오랫동안 훈련한 쉐프가 고심해서 만든 고급요리 같았다. 그 뒤로 다른 요리들이 나왔지만 우리는 관자 요리를 집중해서 먹었다. 마지막 관자 한조각이 남았을 때 나는 그릇을 대리님 쪽으로 다시 밀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관자를 많이 먹었어요. 저희 집에 관자가 아주 많았거든요.”
저 말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두꺼운 키조개 껍질을 벗고 흰 속살을 내보이는 관자처럼 불편하게 입고 있던 감정이 흘러나가는 느낌이었다. 관자를 너무 좋아하는 그에게 우리집에 관자가 왜 많았는지 미주알 고주알 설명했다. 빛나던 눈은 다시 내쪽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집으로 가려는데 대리님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운데 커피 한잔 더 하자는 그. 그렇게 만남을 이어 가다가 우리는 결혼까지 했다. 서울 토박이인 남편은 운전으로 장장 5시간을 가야 하는 장흥을 좋아한다. 장흥에 가면 관자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으니까. 특히 소고기, 버섯, 관자를 함께 먹는 장흥삼합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결혼하고 한참 뒤에 남편에게 첫 데이트 했을 때를 물어봤더니 관자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솔직하고 배려심 있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고. 옷은 좀 은하철도999에 나오는 메텔 같았지만.
나는 아직도 관자를 잘 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젠 관자가 좋다. 뽀얗게 제 살을 내보이는 관자처럼 속을 훤히 보여주면 이루지 못할 인연이 있을까. 관자가 이어준 인연을 영원히 잘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