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가는 곳마다 내가 쫓아낼거야
아저씨가 가는 곳마다 쫓아낼 거에요.
- 미래 건물주 -
여전히 편지는 오고 있다. 이번에는 건물주다. 요즘 초등학생 장래희망이 건물주나 유튜버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긴 했는데 실제 사례를 보니 우습다. 게다가 건물주가 돼서 나를 쫓아내겠다니. 순진무구한 아이의 생각에 코웃음이 난다. 건물주가 되려면 최소 20년은 지나야 할 것이고 되더라도 임대차보호법으로 세입자는 보호받기 때문에 당장 나를 쫓아낼 수도 없다. 호기롭지만 천진해서 어이가 없는 편지는 가게 옆 술집 사장님이 대충 묶어놓은 주황색 종량제 쓰레기봉투로 직행했다.
피부가 따끔거린다. 시술한 지 이틀이 지났는데 여전히 얼굴이 얼얼하다. 그래도 벌집 같았던 첫날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지는 게 보인다. 얼굴을 가득 채운 엠보자국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각 점의 부피가 많이 줄어들었다. 앨리스 말대로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완벽히 없어질 것 같다.
머신 세팅을 끝내고 카페 오픈 팻말을 걸어두니 손님들이 들어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픈하자마자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화를 들어보면 대체적으로 학부모들 같은데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는 느낌이다. 주문 받은 커피를 만드는데 집중이 안된다. 앨리스가 오늘 오전까지는 건축 발주서를 보내준다고 했었는데 정오가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매사 철저히 시간을 지키는 그녀였는데 혹시 마음이 변한게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발주를 주겠다고 한 날 머릿 속에 성형외과 1층공간을 어떻게 구상할지 한참 고민하다 잠들었다. 얼굴에 칼을 댄 것도 아니고 겨우 바늘을 댔지만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웠던 감정을 떠올린다. 이런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고 싶은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최대한 타인들과 마주치지 않는 동선과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입구에서 엘리베이터까지 들어오는 길은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동선을 짜고 모빌이나 나무를 배치해서 정면에서 오는 사람이 시술을 마친 내 얼굴이 보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발주를 받지 모르고 호기심에 받은 울쎄라와 리쥬란이었지만 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형수술이나 시술을 받은 고객의 마음 속에 완전히 들어가서 공간을 꾸밀 수 있었으니.
답답한 마음에 앨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계속되고 연락이 되질 않는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메시지도 보냈지만 답이 없다. 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갑자기 사고를 당했거나 어디가 아프다거나. 하루만 더 기다리고 성형외과로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시술을 하고 많이 아프면 연고를 받으러 오라고 했던 의사선생님의 말을 핑계로.
카페 마감을 하고 동네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향하는데 등골이 살짝 싸한 느낌이 든다. 뒤를 돌아보니 앨리스였다. 앨리스는 다섯명 정도 되는 여자들 중간에 서서 파안대소하며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 중 한두명은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혹시 다른 카페에 갔다가 오는 걸까? 그럼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하루종일 그녀 연락을 기다렸는데 사람들과 다른 카페에 갔다오는 앨리스라니. 그녀가 점점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고 아는 척을 할지 말지 결정을 해야했다.
"어머, 사장님!"
내 결정과 상관없이 손을 흔들며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 민망함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얼굴 많이 가라 앉았네요! 다행이다!"
"아, 네. 덕분에..."
그래서 건축 발주서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나눌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녀가 흘러가듯 한 말일 수도 있는데 내가 괜히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얼른 차에 시동을 걸고 타려는데, 앨리스가 내 차 문을 확 잡는다.
"내일 카페 갈게요!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역시 그녀는 잊지 않았다. 운전을 하고 집에 가면서 내 머리를 한두번 쳤다. 하루종일 까만 감정에 휩싸여 불안해하던 내가 한심했다. 사람을 잘 볼줄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는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인데. 그녀에 대한 믿음이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아니, 믿음보다 더한 감정들이 생겨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