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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Aug 10. 2022

내가 딸이라서 그런 거라고 말해.

 



“다녀왔습니다~.”


밝게 인사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이 없어 집에 오면 마음이 공허했다. 아빠는 새벽부터 일 나가 아침에 마주치는 일이 없었고, 엄마 역시 맞벌이로 나를 반겨주거나 간식을 챙겨주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홀로 집에 돌아와 텅 빈 밥솥을 확인 후 당연한 듯 쌀을 씻고 밥을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 안의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멍하니 있다 보면 밥솥 소리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럼 자리에 일어나 냉장고에서 김치와 참치, 각종 양념장을 꺼내 김치찌개를 한 후 다 된 밥을 하나 꺼내 홀로 밥을 먹어치운 후 먹었던 그릇을 설거지한 후 저녁이 될 때까지 지루한 기다림이 찾아왔다. 서울에서도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으니 이 정도는 거뜬하다 생각했지만 씁쓸한 마음에 입 안이 쓰다. 그렇게 3년을 보낸 것 같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동생이 태어나 내가 하원 시킬 때까지 말이다.


학교 끝나자마자 놀이방에서 동생을 데리고 나와 집으로 와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밥을 해야 했고, 엄마가 시킨 엄청난 양의 집안일을 하고 나면 동생 밥 챙겨준 후에야 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서울에서 단 둘이 살 때는 집안일을 절대 시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동생 독박 육아를 하게 됐고 엄마는 퍽하면 피곤하다는 말로 각종 찌개부터 반찬 해달라 투정 부렸다. 10살부터 시작된 일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지면서 엄마는 자신의 속옷부터 오만가지 빨래를 시키고 다림질법 스스로 깨달아 다림질까지 했다. 동생 나이가 5살이 넘어가니 점점 쌓여온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왜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왜, 나만 해? 따져 물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조금만 참으라는 말과 함께 동생이 7살 되면 넌 안 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지켜진 적이 없다.


나는 손바느질부터 다림질까지 다 할 줄 알면서 내가 내 교복 치마를 수선하고 스스로 빨래해 다림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툭하면 저녁상을 차리라는 엄마의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들어줬지만, 동생은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동생이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리니까, 엄마가 아직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니까 하는 마음에 당연하게 생각하고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여겼다. 7살이 되어도, 11살이 되어도 엄마 아빠는 동생을 시키지 않고 나를 불렀다. 적어도 상 놓는 것, 수저 놓는 것은 동생 시키겠다고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자 매일 투덜거리며 약속하지 않았냐 따지며 내가 한 소리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내 말을 무시했다. 동생이 중학교 들어가면서 나처럼 당연히 스스로 교복 빨고 알아서 다림질할 줄 알았으나, 엄마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당연한 듯 매일 교복을 빨아주고 다림질도 반듯하게 해 놓은 후 입고 가라며 방문에 걸어두었다.



나는 밥 하다, 국 찌개 끓이다 수시로 데어 화상을 입어 엄마에게 전화해 이야기하면 바쁜데 왜 자꾸 귀찮게 하냐고 되려 화내 속상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예순 잔치 전날, 만만하게 보이기 싫어 내 손으로 치마 길이를 짧게 수선하면서 다리미 최고 온도에 검지를 데인 적이 있다. 아! 소리하기도 전에 손가락 살이 잔뜩 오그라들어 너무 아팠다. 통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져 엄마에게 병원 가자고 이야기했으나, 나를 흘끔 보고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투명인간 취급에 서러워 다시 재촉하자 엄마는 짜증 내며 감자 한 조각을 잘라 손 위에 올리라고 줬다. 나중에 지인에게 들었던 말인데 화상에 감자가 도움이 된다고 해줬다. 대신, 감자의 독이 있을 수 있어 물에 담갔다가 상처에 올려야 한다는 말을 덧붙었다. 순간 나는 황당하면서 분노가 올라왔다. 감자 한 조각을 줬을 때 엄마는 그냥 껍질만 까서 주고 입 다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내 돈으로 피부과에 가 화상 치료를 받았다. 내 화장 상처를 본 의사가 얼굴을 잔뜩 구기며 아프지 않냐고 물어봤고 3도 이상의 화상으로 괴사가 진행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계속 치료해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는 용돈을 안 받는 아이라 한 두 번 가고 그 후에는 가지 못 해 흉터가 깊게 생겼다.


동생이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 끓인 라면을 엎어 손가락에 붉게 올라오자 일하다 말고 집에 와 동생을 응급실에 데리고 갔다. 다녀와 나에게 크게 다그쳤다. 너는 어떻게 하면 동생이 혼자 라면 끓이게 하냐고 며칠 동안 혼나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나는 학교에 있어서 동생이 라면을 끓여 데인지도 몰랐다. 나는 동생 밥 차려주다 국을 가슴에 엎어 2도 화상을 입었은 적이 많지만, 한 번도 응급실을 가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동생이 다치면 하늘이 무너진 듯 울며 응급실 데리고 가고 동생 데리고 큰 병원에 가서 다 나을 때까지 치료받게 하는 내 부모의 모습을 보니 씁쓸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퍽하면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동생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이 억울했다. 나는 어릴 때 많이 업어줬지만, 동생은 어릴 때 직접 돌보지 못해 가슴이 무너진다는 말을 수시로 들으면서 내 모든 시간을 쏟아 동생만 돌본 나의 노고는 인정해주지 않았다. 수시로 동생한테 한약 지어줘야 한다는 말을 내게 했다. 그럼 난? 질문하니 너 따위가 무슨 한약이냐며 노발대발했다. 나는 혼자 아니면 동생 돌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동생은 어딜 가나 엄마 아빠의 과한 보호와 내가 지켜주고 있었다. 밥도 할 줄 몰라 18살이 되어도 전자레인지 하나 돌리지 못한다. 밥 한 번 제 손으로 차리거나, 밥 먹을 때 숟가락 젓가락 하나 놓은 적 없다. 밥이 다 차리지고 밥 먹으라 소리쳐야 겨우 기어 나와 밥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 게임했다. 내가 게임하면 컴퓨터를 내게 던져 부쉈지만, 동생에겐 조립식으로 된 최고급 컴퓨터를 선물했다.


나는 용돈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매번 제대로 주겠다 약속하고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부분 한 번만 주고 용돈을 구경도 못 했다. 심지어 생활비도 그랬다. 그러나 동생은 중학생 때부터 얼마 받고 싶은지 이야기하면 그래도 줬다.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받아 본인이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사고 싶은 것 다 산다.


이건 분명한 차별이다.

생각할수록, 차별을 받을수록 나는 내가 딸이라서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바람에 불가하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잘 알고 있었다. 억울할 때마다 대우가 극도로 달라질 때마다 엄마에게 물었다. 왜 나한테 이러냐고, 이럴 수 있냐고 따져 물어보면 엄마는 자신이 돌보지 못해 동생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급할 때 없는 돈 모아 돈으로 해줬다는 말로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정신적인 지지였다. 또 내 말에 따뜻한 포옹을 간절히 원했다.



나는 내가 딸이라서 차별받고 대우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엄마는 내가 미운 것이고, 나는 지금 아빠의 자식이 아니어서 차별받아도 괜찮은 아이였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자의 딸이니까. 아니라고 부정해도 나는 매일 엄마 내면 속 감정과 마주했다. 수시로 아빠가 너만 챙기고 동생은 보지도 않는다는 사실관계에 벗어난 말로 매일 새뇌시키면서도 너만 아니었다면 이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엄마 입에서 친아빠 이야기가 나오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욕설과 죽일 놈이라고 내 귓가에 대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이야기해 원치 않는 이야기를 듣는 나는 곤욕이었다.


한 번쯤은 내 부모에게 그리도 잔인하게 차별하고 아프게 했어야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알 수 없는 부모의 행동은 나이를 먹을수록 철들면서 이해가 되거나 그 의미를 알 수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딸이라서 그런 것일까 라는 질문에 아니라는 단호한 대답이 나온다. 나의 착각으로 두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듣는 상담사는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입으로 말해주시면서 기나긴 시간동안 받아온 차별로 인해 상처받은 내 모습들이 생각나 미치도록 화가 나고 또 울화통이 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표현하지 못하지 못 한다. 속으로 끙끙 앓다가 홀로 그 아픔을 삼켜보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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