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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Aug 22. 2022

학대 피해자로 산다는 건






한 번 열기 시작한 트라우마라는 이름의 상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시작되었다. 아프다는 이유로 다시 덮어두기엔 열어버린 트라우마는 모른 척할 수 없는 문제로 남았고 계속 모르고 뒀다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에 끝까지 치료해야 했다. 어릴 적 학대로 고통받았던 시간들보다 트라우마는 아프면 아팠지, 괴로우면 더 많이 괴로웠다. 성인이 되었고,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도 아님에도 과거 트라우마의 모든 시간을 다시 몸으로 나타나 다시금 고통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밤이 되면 공황발작과 유체 이탈한 듯한 분열된 자아와의 긴 싸움을 했고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밥을 먹지 않아도 살이 빠지거나 변비와 설사를 오갔다. 온몸에 알 수 없는 멍의 존재를 봤고 이따금 기억을 잃어 하루가 없어졌다. 하루의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매우 공포스럽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뿐더러 갑작스럽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공간에서 정신 차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엄마와 연령대가 비슷한 여성 또는 험악해 보이는 남성을 보면 학대가 있던 과거로 돌아간 듯 공포에 질려 아이처럼 벌벌 떨었다. 트라우마와 비슷한 상황 속에 놓이면 크고 작은 소리에 놀랬고 아파했다. 학대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나는 꿈과 현실 속 수많은 트라우마 재경험을 한다. 수면제를 먹고 겨우 잠들었는데 꿈속에선 현실처럼 엄마가 날 위협하고 공격해 내가 아프고 괴롭고, 학대와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겨우 일어났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 눈으로 보이는 고요하고 조용한 현실은 현실 같지 않았다. 오히려 꿈이 더 현실 같고 나는 여전히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트라우마의 또 다른 이름이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환자들은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트라우마에 대한 재경험을 해 현실 자각이 느린 사람들이 있다.


트라우마로 정신적 고통만 큰 것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감 그리고 큰 스트레스가 쌓여 일반인보다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해 잘 아프고 쉽게 낫지도 않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아픔을 달고 지내며 여러 병원을 다녀도 정확한 병명을 듣거나 치료가 어렵다. 어지럽고 두통이 심해 이비인후과를 가서 검사를 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나온다. 또 배가 아프고 혈변을 봐 내과를 가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듣는다. 심각한 증상으로 여러 정밀검사를 해도 어떤 것도 조치를 받을 수 없다. 아픈 것도 서럽고 정확한 병명은 몰라도 학대로 만들어진 내 모든 시간과 몸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


이런 증상들에 대해 내가 좀 유별난 것 아닐까 생각했었다. 보통 트라우마라고 하면 가볍게 소비되는 일이 많았고 그렇게 미디어에서 표현된 적이 있기에 비슷한 상황, 비슷한 사람 아님, 목소리 데시벨에 놀라 하루 종일 벌벌 거리는 내가 유난 떤다고 여겼다. 매주 한 번씩 정기적으로 정신과에 방문해 이런 나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내 담당 교수님은 당연한 결괏값이고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황당하면서도 나를 이렇게까지 아프게 만든 내 부모, 나에게 가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들끓었다. 나를 학대하지 않았다면 나는 보통의 20대 여자아이들이 꿈꾸는 것을 똑같이 꿈꾸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을 같이 꿈꿨을 텐데 트라우마로 매일 오늘은 버텨낼 수 있을까, 내일은 조금이라도 나아진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울었던 시간이 억울하고 분했다. 학대라는 상황이 눈으로 보이기엔 끝났지만, 나는 트라우마 그늘 아래 여전히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다. 우울이라는 심해에 빠져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 사람들 속에 겨우 살아가고 있지만 누구보다 사는 게 아닌 나였다.


그때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아동학대 사건이 뉴스로 퍼졌다. 사건에 대해 점차 수면 위로 사건의 정황이 자세히 올라오니 시간이 흐를수록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웃에 대한 관심을 높여 피해 아동을 구출하자고 사람들은 더 높게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고 참 씁쓸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현주소는 높은 목소리만큼 국민의 의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매일 맞으면서 동네가 떠나가라 살려달라고 울어도 누구 하나 신고하지 않았다. 지나가다 날 마주치면 그저 불쌍한 눈빛 하나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신고를 한다고 해도 진행형만 생각하지 과거형이었던 피해자에겐 아무도 관심이 없다.


구출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피해 아동이 구출만 되면 아이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모든 트라우마로 인한 몸의 반응과 정신과적 치료가 마무리되고 완만한 사회생활까지 이루어져야 그게 진짜 끝인데 말이다. 아무도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문제점은 아동학대 피해가 있었던 아이에 대해선 여전히 무지하다고 느꼈다. 신고나 구출, 보호도 받지 못하고 모든 학대를 받다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피해 아동은 사각지대에 있다고 정말 뼈가 시리도록 느끼고 또 느껴야 했다. 학대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경찰에 신고해 형사건으로 처벌받지 않는 이상 제아무리 신고를 해도 경찰이 ‘그러지 마세요~’ 정도의 이야기와 조금 타이르고 돌아간다. 실제로 내가 아빠의 폭력에 지쳐 녹음을 하고 쫓아낸 후 경찰에 증거물을 제출하고 신고했을 때도 형사와의 긴 통화를 했었다. 당연히 신고가 접수돼 확인할 수 있겠지 싶어 훗날 신고 내역을 뽑아보면 아무런 신고 내역도 없었다. 너무나 황당했다. 신고를 했음에도 확인이 안 돼 신고조차 확실히 된 것이 없으니 어떻게 해도 나의 아동학대 피해, 트라우마를 증명할 방도는 없다. 어떤 식으로도 학대를 증명할 수 없으니 복지, 법률 그 어떤 것도 일시적으로나 장기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로 아파 경제활동이 어려운 것과 트라우마 치료 위해 쓰이는 어마 무시한 병원비, 상담비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나는 이 모든 답답한 상황이 버거워 몇 번이고 긴급복지에 대해 여러 차례 문의 전화를 해봤지만, 매번 퇴짜를 맞았다. 모든 법과 복지는 내 부모를 포함해 지원받을 수 있게 되어 있고 기준 자체도 나와 내 부모를 하나로 하여 원가정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기준이 나를 때리고 나를 아프게 한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나, 개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다. 그러니 정신과를 비롯한 말도 안 되는 병원비에 검사비, 상담비 그리고 생활비 감당이 어려워 여러 방면으로 알아봐도 나는, 피해 아동이 어쩔 수 없이 성인 된 사람들은 모두 사각지대에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미치도록 답답했다. 그래서 긴급복지에 매일 달달 볶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사정을 이야기해 대학병원에서 학대받았다는 병원 소견서를 가지고 온다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일단 심사 진행해보겠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임상실험으로 학대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발견했고 치료과정 중에 있어 대학병원 교수님의 소견서를 받아 동사무소에 제출했다. 여러 심사와 근로능력 평가 등 받고 나서 결국 의료비와 생계비 지원이 되는 기초수급을 받을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소견서와 같이 청소년 상담받았다는 확인서를 들고 가서 엄마가 내 등본을 열람하지 못하게 해 주소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지원받고 지내는 나 같은 사람은 사실 천운에 속한다.


대부분 자신이 얼마큼 힘들고 치료가 급하고 필요한지 알면서 트라우마 치료에 쓰이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일부의 사람들은 생활도 어려워하며 아픈 몸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건 조금이라도 표면에 나온 이야기, 잠깐이라도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이야기이다. 어쩌면 더 아프고 더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거나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학대 피해자는 함부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가 다른데 학대 피해자가 갖고 있는 무게는 너무나 무거워 듣는 이들에겐 ‘날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건가?’ 하는 오해를 받는다. ‘나는 ~ 일이 있었어.’ 있었던 일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도 상대는 내가 우울해한다고 생각한다. 우울한 게 아님에도. 내가 어떻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하는 것 모두 어릴 적 상처로 인해 이유가 다 존재해도 이해받기는 어렵다. 이해를 바란 적은 딱히 없지만 오해받는 것은 억울하다. 내 아픔과 내 행동에 대해서는 온전히 전문 상담사 혹은 학대 피해자였던 사람들과 나눌 수 있지 내 친구, 지인에겐 나눌 수 없다. 평소 내 아픔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누면 아픔이 줄어!” 말은 어쩌면 학대 피해자에겐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것이 힘든데 때론 편견 싸워할 때가 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과 만남은 자제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면서도 슬프고 좌절감이 든다. 가정사가 나쁘다고 해서, 내가 학대 피해자였다고 무조건 대물림되거나 트라우마 관련한 아픔이나 우울이 전염되는 것도 아니고 학대 유전 DNA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진 못 했지만, 살아가는 모든 시간 동안 죽일 힘을 다해 그들처럼 되지 않기 싫어 시간, 돈 그리고 노력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약물치료를 하고 트라우마와 마주하며 나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나, 모든 피해자들은 지금의 아픔을 기억하며 누군가는 지금, 좋은 아빠 또는 좋은 엄마가 되어 있다. 또 역시 누군가는 아픔을 가지고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워가며 계속 전진하기 위해 많은 경험을 쌓고 피해자들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삶을 마주한다. 그러니 가정사가 나쁘다는 이유로 제발 함부로 색안경을 쓰고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나는, 우리는 박수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버텨줘서? 아니다. 견뎌내서?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고통에서 견디거나 버틴 적이 없다. 누군가 나에게 위로의 의미로 버티다 혹은 견디다 같은 동사의 말을 하고 내가 듣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냥 매일 죽고 싶어 하다  멋대로 시간이 지나버려서 성인이 되었고 눈으로 보이는 학대는 없어졌을  나는 트라우마로 여전히 아프고 힘겹다. 


그럼에도 박수와 찬사를 받아야  이유가 따로 있다. 나는 어릴  아픔을 절대 잊을  없는 사람이고 안고 살아야 한다. 그게 내가 가지고 , 살아온 삶이었으니까. 살아가는 시간 동안도 트라우마 안고 사는 일이 매번 아프지만, 나에게 저주를 퍼붓던 가족의 말이  순간 떠올라 괴롭고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 아픈 기억이 모든 순간이 고통이지만, 그런 자신을 인정하며 용기를 가지고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해결하면서 나름대로 훌륭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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