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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Oct 10. 2022

미안하다는 한 마디의 위로

나에게 던진 첫 사과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나에게 남겨진 이야기가 당장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이야기가 되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복잡하게 만들어 브런치에 글 올리는 일이 어려웠다. 잘 사는 내용을 쓰려고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아닌데.., 그저 난 내가 볼 수 있는 글만 쓰면 된다고 생각해 시작한 글쓰기였을 뿐인데 말이다.


최근부터 정신없이 일만 하다 기절하고 괴로움을 못 이겨 일에 매진하기를 반복했다. 당장 내가 먹고 자고, 쉬고 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 가치관이 깨진 것 같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갑질에 고통받기도 하고,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남들은 죽어라 노력하는데 난 그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아무런 힘도 쓰지 않는 것만 같다고 느꼈기에 매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함에도 속도를 올렸다.


그러다 결국 모든 감정이 터지게 된 것은 일요일, 아주 평범할 거라 생각했던 주말 끝자락이었다. 어느 때처럼 정신없이 일하고 부당함에도 버티고 ‘나’ 가치를 밟는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 아빠에 대한 내 마음들이 한 번에 몰려와 오늘 아침부터 우울하고 괴롭지만 다시 잠들 수 없는 고용한 휴일에 울음을 터트렸다.


삭막해진 내 마음속에 찾아온 ‘사랑’이라는 단어, ‘쉼’이라는 갈망으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알게 되고부터 난 나에게 미안하다고, 내가 그렇게도 원했던 것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알아서 상처받은 나한테 사과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입 밖으로, 말로 꺼내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원하는 게 돈이 아니라,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기억을 쌓는 거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려서 미안해.
바다가 보고 싶다고, 이젠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것 하나, 들어주지 못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받은 조롱과 비웃음에 방치되게 해서 정말 미안해..


처음이었다. 내가 나에게 사람대 사람으로 미안하다고 말을 꺼내게 된 건.., 엄청난 용기였다. 나는 수시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지만, 한 번도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거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거나 한 적은 없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채찍질했고, 이것만 하고… 이것만 더 버텨보자라고 매정하게 굴었는데 오늘 처음 나에게 던진 그 미안하다는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하고 정말 떨어트릴 수 없는 그 감정에 펑펑 울었던 것은, 오늘 처음이었다. 무의식 중에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몸이 아팠고 고통의 수치가 높아지면서 수시로 잠에 깨고 다시 잠들 수 없었던 나날들이 늘어갈 때마다 왜 그러냐고 다그치기 바빴지만 난 정말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일을 열심히 하는 나의 모습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힘이 되는 시간을 나누는 것을 행복해한다고…


눈물이 주룩 계속 흘러내렸다,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한참을 울고 또 울다가 핸드폰 전원을 완전히 끄고 지쳐 잠들고 일어나서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동안 일한다는 명목으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내가 끝까지 일하기 위해 시간을 내지 않으려 했던 고집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내 시간 때문에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정말 마음 깊이 원하는 것을 하고 나니 이제야 ‘나’ 그 자체로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이렇게도 어려웠구나, 사과 한 마디를 나에게 던지는 일이 엄청나게 큰 힘이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어쩌면 또 한 번의 진짜 어른으로 가는 방향을 찾은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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