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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Oct 17. 2022

그래도 참 다행이지

어떤 스트레스였을까, 무엇이 그렇게 괴로웠나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트라우마 재경험을 꿈속에서 했던 날, 놀라서 눈 뜨고 주변을 보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꿈에서 온 집에 피로 물들어진 집에서 어린 동생과 맨발로 도망치던 그 차가운 밤이 아니라 나만 있는 집에 살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눈을 뜬 현실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자각한 것조차 참 다행이고 자랑스럽다면 자랑스러웠다.


전에는 트라우마 재경험을 꿈에서 할 때 쉽게 현실 자각이 안 됐는데, 이번엔 바로 현실과 꿈을 구별할 수 있다니 내가 대견했고 스스로를 위로해줄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보니 참 많은 발전을 했구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심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슬프게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질문을 했으나 긍정적인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평생을 살면서 갖게 된 상처를 한순간에 버릴 수 없겠지. 어렵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세상살이가 참 어렵고, 자존감에 대해서, 자기애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필요성은 알아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자존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말 어렵다고 느낀다. 밑바닥은 이제 만들었는데 완벽한 타인을 보며 나의 자존감이 보일 때마다 아직도 먼 이야기라는 것을 직시할 때마다 참 암담하게 느껴진다. 관계가 잘 다져진 사람한테서도 가끔 내가 참 매력이 없는 걸까? 나는 질리는 사람일까? 혼자 생각하고 혼자 우울에 빠지게 될 때마다 너무나 슬프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참 타인을 보며 나의 존재에 생각할 때마다 한 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짧은 대답 하나에 의미 부여하고 깊고 진하게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타인을 보며 자존감을 확인하는 날 발견할 때, 타인이 아니라 ‘나’를 보자고 외칠 수 있고 너무 지치고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내가 나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힘들면 일을 잠시 멈춰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보면서 채워도 가보고 정말 답이 안 나오는 기분엔 관련된 책을 읽거나 상담을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말이다. 전에는 이런 선택지가 하나도 없었는데 다행히 이제는 나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상황이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매일 배워야 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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