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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Jun 19. 2022

소설에 대하여

김정주 소설의 경우


김정주 소설집 『바다 건너 샌들』(소명출판, 2022)의 표제작 「바다 건너 샌들」의 문장은 더 없이 단정하고 맑고 투명하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스며들어 있다.


남편은 사회초년생이고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때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아이를 낳고 얼마 후 남편은 메모 한 장 남기지 않고 나를 떠난다. 수소문 끝에 만난 남편은 그녀에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너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고 나를 잊어달라고 말한다. 


혼자 키운 아들은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을 때, “엄마 난 개야. 개가 되기로 했어. 날 용서하지 말고 버려줘요.” 하고 나를 떠난다. 아들은, 지금과는 달리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있고 고상하게 취미 생활을 하는 엄마가 있는 그런 집. 그래서 아들은 자신을 버리고 간 생부를 찾는 대신 그의 결혼식에 생모를 초청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난다. 홀로 자신을 키우느라 볼품없어진 엄마의 손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들은 이제 다이어 반지를 끼고 그 반지에 어울리는 손을 가진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불편해하는 것이다. 오래전 그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아들이 그녀를 떠난다. 


‘나’는 가끔 아들이 신던 삼선슬리퍼를 마른 수건에 물을 묻혀 닦는다. 아들의 발, 잘생긴 발, 고단했던 날을 이해해 주던 발, 그런데 멀리 가버린 발을 그녀는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그렇게 다가구주택에 홀로 남겨진 늙은 여자는 그녀에게 남겨진 시간을 견딘다. 그녀에게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를 늙는 일이다. 그런 하루가 자꾸 연이어진다. 전화벨이 없고, 현관을 누르는 벨 소리가 없고, 티브이만이 하루 종일 살아가는 그런 날들. 그런 하루를 깨운 것은 버려진 개가 혀를 길게 뽑고 학학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새끼를 낳은 일이다. 개의 엉덩이 끝에서 투명한 막에 싸인 물체가 비어져 나온다. 막에 싸인 그것은 아주 작은 눈을 감고 있다. 아주 오래전 그녀의 아들이 세상에 나올 때 그랬던 것처럼. 


소설집에 수록된 나머지 소설들은 하루 한 편씩 읽을 생각이다. 소설이나 평론을 쓰고 그것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 위한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마음의 소란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쉬지 않고 소설을 쓰고 책으로 묶어내고 있는 작가의 그 자신의 삶에 대한 경건함을 나는 ‘추앙’한다. 버려진 개가, 그래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비루한 삶으로 전락하지만 온 힘으로 새끼를 낳는 일로 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는 것처럼, 작가는 끊임없이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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