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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Jun 19. 2022

소설에 대하여

이경 소설의 경우


당연히 존재했던 것들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당연한 믿음은,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바뀐다. 무엇보다도, 즐겨 듣던 비틀스의 카세트테이프가 종적 없이 사라지고, 그 당연히 있었던 것이 정말 있기는 했던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회의가 지나간 후엔 사라져버린 것들, 그래서 영영 되찾을 수 없는 것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한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간단치 않은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 "거기 잘 있는 거죠, 아주머니?"라고 묻는 맨 마지막 문장은 세월호에서 아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평범한 우리 이웃을, 자신만의 일상에 허우적거리느라 잠시 망각에 빠져 있던 기억을 소환한다. 안타까움과 슬픔과 분노의 정념으로. 


오늘 하루도 내겐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당연히 되어야 하는 어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포함) 이경 소설집 『비둘기에게 미소를』에 들어 있는 단편「당연히」만 읽었다. 포크너 소설 《에밀리에게 장미를》도 있고,  '우연이'가 노래하는 '우연히'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첫사랑 그 남자를 하필이면 나이크클럽에서 우연히 만나지? 아무튼 내일은 표제작을, 다음날은「재난 수령인」과「스튜디오 베이비」를, 또「기부 왕」과「수태고지」와「A28」을 읽어나갈 참이다. 


첫 소설집을 내는 제자의 소설 해설도 조금씩 써야 하고, 새로 펴낼 평론집 원고도 손 봐야 한다. 장우원 시인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면서 쓴 시들을 담은『안나푸르나 가는 길』에 수록된 시들, 이를테면, “당신을 에워싼 경계도/ 사실은/ 내 욕망의 한계라는 것/ 경계를 지워야/비로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경계(境界)」도 그러한가, 하는 마음으로 읽어볼 참이다. 


그렇게 봄은 천천히 지나가고, 살아내는 일의 번잡함 속에서 나는 내게 당연히 존재했던 것들, 그러나 사라져버린 것들과 그것이 욕망의 문제였던가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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