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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Sep 22. 2022

더는 나빠질 것 없는 세월 너머로

-오늘의 기분,212-213쪽.

사람들은, 아무리 분별력 있고, 신중하고, 사려 깊고, 1980년의 참혹한 사건에 관한 진실에 더 많이 경청하고, 공감한다 할지라도,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마침내 군대의 말을 수긍하고 말 것이었다. 군대의 말은 일종의 강력한 소문을 형성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시의 시민들은 물론이고 이후의 시민들 사이에서 불신을 조장하는 일종의 분열공작이기도 했다. 

  총을 들고 저항했던 사람들과 총을 버리자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갈라지고, 총이나 각목이나 돌멩이를 들고 싸웠던 사람들과 그 장소와 시간을 피해 어디론가 몸을 피했던 사람들이, 희생자의 가족들과 부상만을 입었던 사람들이, 교도소에 구속되었던 사람들과 민간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받았던 사람들이, 보상금을 많은 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발언권을 얻게 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갈라진 마당에 이제는 교소소를 습격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갈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건이 마무리되고 난 후 그 참혹했던 일의 경과가 진실을 드러내고 군대의 말이 왜곡과 과장과 거짓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어도 그 혼란을 틈타 교도소를 습격하려 한 이들의 동기에는 선하거나 정의롭거나 하는 의도와는 거리가 먼 무엇인가가 분명 자리하고 있을 거라고, 최소한 마음 한 구석에는 그런 의혹을 키우게 될 것이었다. 교도소는 보통사람들의 안녕과 평온한 삶을 위협하는 자들을 격리해 둔 장소인 까닭에 그곳은, 그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은,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상을 저지른 것 못지않게 위험하거나 적대적인 정서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 대신, 난리가 났으므로 일을 할 수 없었고, 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시내에 나가 돌멩이를 던지거나 차를 타고 외곽을 돌아다니다 밤늦게 지치거나 무섬증이 들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시절엔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밤엔 누가 어디서 쏘는지 모르는 총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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