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집에 수록한 여섯 편의 소설 중 다섯 편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조망하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맨 마지막에 수록한 중편소설「그 밤의 붉은 꽃」은 고려 몽골 침략기의 삼별초 항쟁을 소재로 한 것이니 이 소설집에 실린 중·단편 모두 우리 역사의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을 다루고 있지요. 소설집 제호를『그날들』로 정한 까닭은 누군가는 잊기를 바라지만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비극적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어할 수 없는 부재」는 등단작이고 「그 희미한 시간 너머로」는 제1회 5·18 문학상 수상 작품이면서 2012년에 발간한 제1회 5·18 문학총서에 수록된 소설이어서 제게는 매우 특별합니다. 두 소설 다 5·18 이후의 다소 비루한 우리 모습을 성찰하는 작품이지요.「누가 남아 노래를 부를까」는 제1회 부마항쟁기념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것이어서 제게는 그 의미 역시 작지 않지요. 본래 제목이「새로운 시작」이었는데, 소설집에 수록하면서 제목을 바꿨습니다.「꽃도 십자가도 없는」,「누가 남아 노래를 부를까」두 작품은 모두 부마항쟁 관련 소설이고,「얼룩을 지우는 일」은 1948년 여순 사건을 조망하는 작품입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중편소설「그 밤의 붉은 꽃」은 고려 몽골 침략기의 삼별초 항쟁을 소재로 했으나 내 관심은 명분이 어떠하든 전란 속에서 그것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놓여 있습니다. 오래전 제주 여행 때 삼별초 항쟁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의 초등학생이 쓴 시를 읽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거든요. 역사적 항쟁인 것은 틀림없지만, 삼별초군이 들이닥친 진도와 제주 사람들에게는 느닷없는 재앙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요. 가슴에 오래 머물렀던 의문을 담은 장편소설을 썼으나 세상에 내놓을 기회를 얻지 못해 중편으로 줄여 소설집에 싣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집『그날들』은 2024년 광주문화재단의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발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푸른사상사에서 기꺼이 출간을 맡아주어 흩어진 말들을 단정한 언어로 묶어낼 수 있었어요. 광주문화재단과 푸른사상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많지 않은 저의 독자들께도 따듯한 인사를 전합니다. 두루 평온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