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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Nov 16. 2021

인간은 무엇 때문에 자서전을 쓰는가?

-자서전은 아니고 자전적 소설을 쓰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자서전을 쓰는가? 이에 대해 폴 리쾨르는, “고백해야 한다는 내적 욕구”를 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고백하는가? 어느 정도는 종교적인 의미의 ‘과오(faute)’라 부를 수 있다고 본다. 결국 고백해야 한다는 욕구는 죄의식에 다름 아니며, 자서전 글쓰기의 근원에 존재하는 이 죄의식은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초자아의 검열에 대한 의식이며, 결국은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 그 자체이다. 물론 이는 보다 철학적인 질문이라 하겠다. 그렇더라도 자전적 글쓰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에 대한 의문은 없을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본 결과물이 바로 자전적 글쓰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전적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실의 문제일 것이다. 자서전의 진실이 곧 글 쓰는 현재의 진실이라면, 더 나아가 되찾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결국 자서전의 수신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자서전은 글쓰기라는 매체를 통하여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함으로써 자아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혹은 만들어내는 과정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을 반성하고 기록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자서전은 진실에 근거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저장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생각나지 않을 때 의도하지 않게 진실과 배치되는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또 한편으로 자신의 명예와 이익에 관련되는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부족한 기억을 메우기 위해서 역사적인 기록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도 서술된 텍스트가 완벽하게 옳다고 단언할 수 없다. 자서전을 쓰는 것은 진실을 기록하려는 의지이기도 하고 망각을 극복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정말 속속들이 썩은 최고의 위선은 바로 자기 자신마저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다.

  많은 논자들은 자전적 글쓰기가 사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이 만나는 역동적인 공간임을 강조하면서, 내면의 자기반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 자신을 조명할 수 있는 공유적 자아 내지 관계적 자아를 상정하고 있다. 즉 자기 서사 글쓰기를 통해 ‘나’라는 도덕적 주체에서 ‘윤리적 주체’로의 이동 가능성을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게 보았을 때, 자서전은 한 존재의 궁극적인 진실, 작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욕망을 모태로 한 재현을 통해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것이다. 어떻게 타자인 독자를 나의 지지자, 공모자로 만들 수 있을까? 결국 어떻게 타자와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자서전 작가들이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최대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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