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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영의 Dec 13. 2021

지킬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급성폐렴으로 죽었다는, 내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화장을 했다는 내 딸아이의 침울한 얼굴이 눈앞에 밟혀서 한낮에 길을 걷다가도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거나 걸음을 멈춰 서서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미친년 보듯 하기도 했다. 전 남편의 회사로 찾아갔다가 로비를 지키는 경비원에게 진짜로 미친년 취급을 당하고 건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후두폴립이라는 말도 안 되는 질환 탓에 여전히 목에서 말 대신 쇳소리만 나오고 있어서 더욱 더 그러했을 것이다. 이런 삶도 삶인가. 누구에게는 삶이 모욕이 아닌가, 나는 지치고 낙담하였으나 끝내 본가로 들어가지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겠다는 결심도 하지 않았다. 지킬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질긴 생을 이어가는 스스로가 욕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살고 싶다는 욕망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계속되는, 실업 상태를 벗어나려는 노력과, 거듭해서 거절당하며 보내는 시간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경멸의 시선들이 나를 점점 무너트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나의 무능력 때문이라는 자괴감이 암세포처럼 자라는 것을 나는 느꼈다. 나는 점점 갈 곳을 잃은 채 밤거리를 담배나 피우며 서성거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 따뜻한 밥 한 끼와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말을 걸어오기라도 한다면, 그가 누구라도 따라나설 것 같기만 한 날들이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느꼈다. 날마다, 매 순간. 


-심영의 소설 『오늘의 기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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