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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7. 2017

2. 벼룩시장의 날

여권을 찾은 1인은 사랑해요 루프트한자 사랑해요 리스본공항을 외치며 첫 목적지를 향해 출발합니다. 여권은 숙소에 얌전히 놔두고 혹시 모르니 복사본을 가방에 넣었습죠. 숙소 주인 아저씨가 리스본은 참으로 좋은 도시이지만 소매치기가 많으니 그날 쓸 돈만 가져가는게 좋을거야 라고 하여 그분의 조언을 따랐음. 

그나저나 지금 생각해도 어 여권 잃어버렸네? 비행기에 두고 내렸나? 공항 가야겠네? 공항 오니까 분실물 센터에 있네? 라는 과정이 샤르륵 부드럽게 흘러가 주었다는게 참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포르투갈에는 무엇이 있느냐, 트램이 있습니다. 트램이야 이 나라 저 나라 있는 나라 많잖아 라고 하신다면 호호 포르투갈엔 오오오래된 트램이 있다고 말씀드리겠어요. 저 멀리서 드륵드륵거리며 달려오는 저것이 아마도 그것 같아서 긴장 빡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는데







아하 요것은 제가 기다리는 그것은 아니고, 시내 관광용으로 만든 여행자용 트램입니다. 좀더 기다리니 호홋 제가 탈 트램이 역시 드륵드륵 소리를 내며 도착했는데







이름하여 28번 트램. 사실 트램tram은 영어이고, 포르투갈에선 일렉트리코eletrico라고 해요. 여러 노선 중 시내의 주요 관광지를 콕콕 찍으면서 달리기 때문에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에게 두루 무척 인기있습니다. 28번 트램 타고 창밖만 봐도 시내 구경을 알짜로 하는 셈인데







이거 나무로 만든 트램이여. 그니까 1936년~47년 사이에 건설된 트램 노선인데 그 옛날 그 열차를 여전히 쓰고 있는 거에요. 반들반들 닳은 내부가 무척 매력있습니다... 

라고는 하지만 미어 터져서 아슬아슬하게 낑겨 달리고 있음. 아침 일찍이거나 늦은 밤 아니면 하루 종일 거의 항상 이렇게 붐빈다고. 리스본 소매치기 범죄의 상당수가 이 트램 열차 안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트램 외관도 나무여. 페인트 칠해놔서 긴가민가 싶지만 나무입니다. 

하여간 숙소의 그분 왈, 28번 타고 가다 보면 오르막길이 나올 거거덩? 올라가다 보면 내리막길이 나올 거거덩? 내려가다 보면 이따만한 교회가 나올 거거덩? 거기서 내리면 돼~ 라고 했는데 진짜로 한번 올라갔다 내려오니 거대 건물이 나옴. 그리하여 저요저요 하며 내렸습니다. 근데 내리고 나서 보니 가방 지퍼가 시원하게 열려 있었... 이눔들이 뒤질라구...







그러나 저에겐 손목지갑이라는 참으로 눈에 빤히 잘 보이면서도 접근하기가 어려운 물건이 있는 관계로 돈이라던가 카드는 무사합니다. 이거 참 모양 빠지고 여름엔 땀 차서 드럽게 덥지만 훌륭한 물건입니다. 

하여간 그래서 여길 왜 왔느냐면 위에서 세번째, 페이라 다 라드라feira da ladra를 가려고 온 것인데 그게 뭐냐면 허허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 벼룩시장으로서 아오 내가 여기 가려고 요일 맞추느라 좀 힘들었세요. 라드라ladra가 여자 도둑을 뜻하니 이 곳은 도둑시장이다 라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벼룩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ladro에서 유래했다는게 정설에 가깝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벼룩시장이잖여.







저를 내려주고 다시 덜걱덜걱대며 떠나가는 노오란 나무 트램님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어 트램이네 응 트램이구먼 하며 덤덤해졌지만 호호 이땐 첫날이라 타요 버스를 처음 본 어린이처럼 꺅 트램 꺅 트램 꺅 저거 트램트램트램 한국엔 없는 트램 하며 정신없이 구경했습니다. 가방이랑 카메라만 조심하면 차암 좋은 물건이여.







우얏든동 제가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거쳐 어 저건가보다 하고 내렸던 바로 그 빅교회는 이것이며







고 왼쪽 골목 입구에서부터 뭔가 이거다 싶은 삐리리한 필이 빡 오기 시작하는 것이







캬 또 이런데 오면 손끝이 드릉드릉하면서 신이 나지 않것습니까








그리하여 동네 언니오빠들 뒤를 졸졸 쫓아 저어기 안쪽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곳은 리스본의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알파마alfama 지역의 일부로, 무려 12세기부터 시장이 섰다고 합니다. 페이라 다 라드라 라는 명칭은 17세기 문헌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고 하니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죠.








말 그대로 벼룩시장. 대단한 물건이 있다기 보다는 껄껄 이싸람들 뭘 이런걸 다 갖구 나왔엉 싶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여행 초반, 멍하니 사람들 사이를 흘러다니며 이 동네는 이런 곳이구나 라는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무척 좋습니다. 말하자면 낯선 곳에서 자체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느낌이랄까요. 여권땜에 집나가신 정신도 아직 덜 들어왔고 시차땜에 잠도 부족하니 조용조용 멍하게 이렇게.







직접 만든것 같은 뭔가 일관성 있는 디자인의 악세서리도 있고







램프에 머그컵에 책에 인형이라는 차암 일관성 없는 조합도 있고







그렇구나 포르투갈 사람들 집에는 리스본 사람들 집에는 이런 물건들이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고개도 끄덕끄덕 해봅니다. 제 사무실의 요런조런 물건들도 여기 슬쩍 끼어들어 쫙 깔아놓으면 좀 팔릴까요.







말씀드리는 순간 허허 뭐죠 이 거대바퀴는







파트라슈의 우유마차 바퀴로 추정되는 둥글이들과







시뻘건 우유통들. 여기에 우유 담아 배달하면 자동으로 철분이 함유될것만 같음








저어기 멀리엔 왠지 바다같은 떼주 강rio Tejo이 흐르고 오른쪽 옆에는 뭔가 핑크핑크해보이는 건물이 있는데









걍 돌색인데 주변 뻘건 천막 색이 반사되어 그런지 뭣때문인지 사진엔 저렇게 나왔구먼. 판테온 나시오날pantheon nacional입니다. 좀전에 트램 정류장 앞의 빅교회는 이그레자 드 상 빈첸테 드 포라Igreja de Sao Vicente de Fora구요. 

벼룩시장이 어딨나 하며 검색하니 이그레자 어쩌구랑 판테온 어쩌구 주변에 있다길래 이름 참 드럽게 길고 어렵다 했는데 막상 와보니 걍 커다란 건물 두개 딱 있고 그 앞이 온통 벼룩시장이여. 

그나저나 햇볕이 어우... 주근깨가... 기미가...








여긴 뭐죠 도자기 노량진인가요







구경만 하겠다고 말한 것도 잠시 어머 하얀 생선 이거는 사야겠다며 가슴이 벌렁벌렁 합니다. 안돼 예희야 정신차려 너 숙소 4층같은 5층이잖아 나중에 체크아웃할때 가방 어떻게 들고 내려갈거야 








화요일 토요일 열리는 곳이라니 나중에 나아중에 포르투갈 쫙 돌고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오면 그때 쫙 몰아서 질러야지








라며 기약할 수 없는 다짐을 해봅니다(그리고 그 다짐은 지켜지지 않았...) 오 근데 어우 이거 좋네요. 1974년 포르투갈 항공사 달력으로 추정되는 이거. 포르투갈의 상징인 미친닭 그림도 그려져 있고 막 어우







어디서 야들야들 간질간질한 음악 소리가 난다 했더니 파두fado 씨디를 팔고 계신 그분







여행의 첫날, 어리버리한 가운데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다양한 문화를 한 곳에서 이렇게 만납니다.







앞으로 계속 보게 될 푸른 빛의 타일 아줄레주azulejo와







좀 전에도 잠깐 봤던 미친닭...은 아니고 갈로 드 바르셀로스galo de barcelos. 파두와 아줄레주, 바르셀로스의 수탉 이야기는 앞으로 꾸준히 나올 예정입니다. 왜냐면! 포르투갈에 얘네가 쫙 깔렸기 땜에 계속 눈에 밟혀!







그치만 나라의 상징이고 뭐고 베룩시장 하면 이거 아닙니까 이거 구제옷 이거 이거 막 사이즈만 맞으면 막 50센트 막








그리고 부엌 찬장에서 굴러다니다 간만에 볕을 쬐는 요런 유리잔들도요.







누군가에겐 쓰레기, 누군가에겐 보물. 기스가 쫘악쫘악 나 있건 말건, 햇볕이 쨍하니 모두 반짝반짝 아름답습니다.







하이고 요런거는 요것채로 홀랑 들어다 어디 조명 어두운 까페 같은데 갖다 놓으면 좀 있어 보일듯. 실제론 국민연금 고지서 뭉치더라도 마 포르투갈어 모르면 마 다 있어 보이는거 아니것습니까.







이른 시간부터 나온 판매자들은 큰 건물 앞, 그늘진 명당에 자리를 잡았고







한발 늦은 그분들은 쨍한 봄볕 아래에서 지글지글 익어갑니다. 4월 말, 볕은 따갑지만 잠깐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시원하다 못해 쌀랑해지는 날씨.







이 언니네 좌판에선 요 앞 나무상자 안에 든 것들이 궁금하고







여기선 고무줄로 묶어놓은 사진들이 궁금합니다. 다음엔 나도 이거저거 바리바리 챙겨갖고 여행을 떠나볼까, 벼룩시장을 찾아 쫙 깔아놓고 팔아볼까







극동아시아 대한민국에 웬 뜬금없는 북유럽 스타일 어쩌구가 열풍이듯 유럽 등에선 지극히 동양적인 문화가 멕힐지도 모르죠. 

실제로 이곳 리스본뿐 아니라 이후 여행한 도시들에서도 크고 작은 벼룩시장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제 눈에는 뭐여 싶은 불상이라던가 중국풍 찻잔 같은 것이 제일 먼저 턱턱 팔려나가는 걸 보며 오 나도 벼룩에 도전해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요.







무속신앙의 부적이라던가 혁필화, 탱화 등도 좋고 아예 붓이랑 먹물 싸갖고 가서 자자 가훈을 써 드립니다 하며 우리말이나 한자로 그 자리에서 쓰면 와하하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야 이거는 벼룩원정대 조직해서 한번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은 좀 더 나중에 한 것이고, 아직은 뭐 어이구야 뭐가 뭔지 이게 다 뭔지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파... 아까 빵쪼가리에 버터 바른거 하나로 땡이었어... 물론 빵이 좀 크긴 했지만... 버터가 듬뿍이긴 했지만...








이 앞을 지나가는데 판매자 오빠가 휘리릭 뛰어와선 너 아디다스 신었구나(네) 여기 아디다스 있는데(근데요) 너도 아디다스 나도 아디다스 그니까 이거 사라며 유혹하심ㅋ








되는 대로 싸들고 와서 벽에 붙이고 싶어지는 아줄레주 조각들







and 아줄레줏집 멍멍이








허리손 포즈와 매의 눈으로 체크남방 아벗님의 콜렉션을 감상중이신 그분








주인따라 좌판깔러 나온 멍멍이. 어우야 시원해 보인다.







귀여우니까 한장 더 찍어봅니다. 하이고 코 시꺼먼거 코 축축한거 코 삼각형인거 하이고오오








난 이게 좋겠어 이 개당 1유로 브로치의 반짝임 이것은 나의 패션을 완성시켜 줄 것이야 후훗









사실 요런 것들은 와그르르르르 잔뜩 모여 있어야 분위기가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딱 하나만 골라야지 하고 뎀벼들면 또 막상 눈에 차는게 없지 않나요... 

라고 쓰면서 다시 보니까 어머 국방색 쿠션 밑에서 두번째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노란색 나는거 저거 갖고싶네 저거








식탁보며 테이블 매트, 손수건 등 크고 작은 천 제품들도 곳곳에 이렇게. 무늬는 걍 프린트 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입니다. 

이후 많은 상점에서 요런 물건을 많이 봤는데 큼직한 식탁보 하나에 오천원에서 만원 남짓이라 어라? 괜찮잖아? 하며 솔깃솔깃.








어멋님 어멋님 이거 얼마에요 이거 얼마에 주실 수 있어요








어머 손님 눈이 높으시다 이 미싱이 진짜 좋은 미싱이에요 내가 이걸로 우리 애들 옷 다 해입혔자나 싸게 줄께 갖구가 있을때 챙겨가








1커피잔 3유로 2커피잔 5유로. 까페 체인 로고가 박힌 잔들입니다. 저도 SICAL 써 있는거 하나 샀... 여기서 말고 하안참 나중에 여행 막판에 하나 샀... 근데 난 1유로에 샀... 꺄항항항항








그렇게 페이라 다 라드라feira da ladra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다 와 더는 안되겠다 진짜 배고프다를 부르짖으며 포르투갈에서의 첫번째 점심밥을 먹으러 갑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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