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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28. 2017

사장과 사모에 대하여

사장님과 사모님. 두 호칭 모두 일종의 높임말마냥 사용되니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서로 무척 다르다. 국어사전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사장(社長)님 : 회사의 책임자. 회사 업무의 최고 집행자로서 회사 대표의 권한을 지닌다.

사모(師母)님 : 스승 또는 윗사람, 혹은 남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


즉 사모가 없어도 사장은 혼자서 충분히 사장일 수 있지만 사장이 없으면 사모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 사모는 사장에게 종속된 자이며 사장이 계속 사장이어야 사모도 계속 사모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모님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곧바로 이야기한다. 저는 사모가 아니라 사장입니다. 제가 바로 사장님이죠. 제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제 주머니에서 나갈 돈은 모두 제가 번 것입니다. 이 사실은 나에게 무척 중요하고 의미 있다. 정색하고 각 잡고 말할 필요가 분명하다.


작년 이맘때, 벼르고 별렀던 자동차를 드디어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시간 여유가 있던 남자 친구와 함께 근처 자동차 대리점에 가서 차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우리를 맞아준 영업사원(5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은 오로지 남자 친구만 바라보며 친절히 설명을 해 주었다. 차 내부와 외부를 구경한 다음 견적을 내기 위해 컴퓨터가 놓인 영업사원의 책상 앞에 앉았는데, 영업사원은 이때부터 몸을 아예 남자 친구 방향으로 틀어서(골반 틀어지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때까지 꾹 참고 있던 나는 드디어 끼어들었다.


나 : 이거 제가 탈 건데요. 저한테 설명을 해 주셔야죠

영업사원: 아 네 사모님, 그래도 사장님이 잘 아셔야 하니까요

나 : 저는 사모가 아니라 사장인데요. 할부금 이거 다 제가 내는 건데요


뭐 어쨌든(땀을 닦으며) 여차저차 차를 계약하고 며칠 후 드디어 새 차를 인수받는 날. 근처에 사시는 아버지가 차 구경 좀 하자며 놀러 오셔서는 영업사원과 인사를 나누셨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업사원은 오로지 아버지만 바라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장님, 사이드 브레이크는 여깄고요. 트렁크는 이렇습니다. 그렇게 나는 한순간에 제3자가 되었고 속으로 아, 또 시작이냐라고 생각하며 턱에 힘을 빡 주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참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영업사원의 설명을 자르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 이 차는 이 친구가 탈 거고 이 친구가 돈 낼 거니까 이쪽에 설명을 하시죠

영업사원 : 아 네 사모님 차죠 그렇죠

나 : 사모 아니라 사장입니다


내가 바로 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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