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예희 Feb 22. 2017

돈이 다인가, 다가 아닌가에 대하여

'돈이 다가 아니다' 라는말. 꽤 오랫동안 그 말에 자동으로 그렇죠 그렇고 말굽쇼 라고 대답했다. 왜냐, 그야 고렇게 대답해야만 뭔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고렇게 대답해야만 속물이란 비난을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내 비록 족보 따위 없는(있나?) 집안의 자손이지만 그래도 점잖아 보이고 싶긴 하다 이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내가 어느 날 할 일이 없길래 각 잡고 앉아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어. 돈으로 안 되는 게 뭔지, 그런 게 있긴 한지 따져봤어! 그랬더니 어머나? 별로 없어! 물질적인 거야 당연히 이거 얼마예요 물어보고 여깄습니다 하고 돈을 주던가 카드를 긁던가 하면 손에 넣을 수 있으니 패스. 그럼 정신적인 부분은? 사랑?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들 하는데 정말일까? 순애야으아 김중배으으 다이야 반지가으 그렇게으 좋드냐으아라고 이수일이 광광 울부짖었다지만 허이구 평소에 잘했어 봐라 가긴 어딜 가겠냐. 수일이 너는 돈마저도 없는 놈이지 돈만 없는 놈이 아니란다. 아마도 김중배는 돈도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럼 깨져버린 사랑을 돈으로 다시 이어 붙일 수 있을까? 그야 물론 1대 1로 등가교환을 하는 건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누굴 찼는데 으아 기분이 찜찜하고 괜히 미안할 때, 혹은 내가 차여서 기분이 더러워 뒤질 것 같고 이렇게 엿같을 수가 없을 때 말이에요. 고럴 때 돈이 있으면 기분 전환용으로 머리도 쌈빡하게 할 수 있고 위아래 옷도 쫙 뺄 수 있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거든요. 에이 썅, 여행이나 가자며 가방 싸들고 어디든 갈 수도 있다. 혼자 가기 싫다면 나같이 시간 많은 친구에게 야 내가 쏠게 나랑 놀러 가자 라고 제안할 수도 있다. 둘이든 셋이든 우루루, 물주는 나.


우정은? 존경은? 사랑만큼이나 고귀하게 느껴지는 요런 것들을 돈으로 살 생각을 하다니 불경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여보세요, 나의 친절과 나의 여유, 나의 미소와 나의 우아함은 모두 계좌가 빵빵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좔좔 흘러나온다. 친구 모임? 돈이 간당간당할 땐 왠지 불편하다. 눈썹 그리고 입술 칠하고 일단 나오긴 나왔지만 안절부절못한다. 쟤가 쏘면 참 좋겠지만 당연히 뿜빠이겠지? 뭐 하나 더 시키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누가 사준다고 또 마냥 좋지도 못하다. 마음이 참 그렇다. 이런 생각을 하며 뭔 놈의 즐거운 대화를 하겠습니까. 모르는 사이에 얼굴에 티가 확확 날 것이다.


성취감은 어떨까? 창작은 어떨까? 돈이 있다고 모든 걸 이룰 수는 없지만 일단 시도해볼 수는 있다. 학원에 다니든 학교에 다니든 운동을 배우든 뭘 하든 돈이다. 해본 다음 오 이거 재밌네, 딱 내 거네 하며 더 깊이 파 들어가려면 또 돈이다. 해봤더니 요건 나랑은 좀 아니네, 다른 걸 한번 해봐야겠네 할 때도 돈이다. 제2의 기회, 제3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실패할 여유가 생긴다. 그놈의 가성비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지마켓이든 옥션이든 뭐든 최저가 정렬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헐, 돈 진짜 좋은데?


하지만 만약 나의 어린 조카(미취학 아동입니다)가 이모 이모 있잖아요 돈이면 다 되는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우와,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어 당연하지! 돈이 짱이야!라고 온 마음을 다해 외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뒤에서 애 엄마가 눈을 부라리며 저년이 미쳤나 하겠지? 그러니 생글생글 웃으며 조카야 그렇지 않아, 세상에는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단다 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알 것도 같다. 그렇구나 이런 거구나... 나 어릴 적에도 어른들이 그래서 그랬구나...

작가의 이전글 평일의 애프터눈 티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