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예희 Feb 26. 2017

프리랜서라는 단어에 대하여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네, 저는 프리랜서로 어떤 어떤 일들을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을 한다. 그런데 이때, 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어떤 일이라는 주제보다 프리랜서라는 형식에 주목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게 뭔 소리냐면


나 : 아, 저는 프리랜

상대방 : (싹둑)와 멋있다 좋겠다


이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으며 나는 그중 대체 어떤 분야의 프리랜서인지 아직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왜 그러시죠.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거나 할 일은 아닌 게,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여전히 생소하고 독특하게 느껴진다는 뜻이겠거니 생각한다. 뭐니 뭐니 해도 '프리'라는 부분, 그게 되게 프해 보이지 않습니까. 집에서 노브라로 일 해요 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훨씬 있어 보이긴 한다. 물론 기분이 나쁜 경우도 있다. 오래전 소개로 만난 남성과의 대화를 떠올리면 지금도 쌍욕이 나온다. 대략 이런 대화였는데


쌍놈 : 회사 어디 다니시죠

나 : 저는 출퇴근이 아니라 프리랜

쌍놈 : (싹둑) 팔자 좋으시네~ 사회생활을 모르시겠어~ 조직이요~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당시 서현역 스타벅스 테이블을 마음속으로만 열두 번 엎었던 과거의 나여... 잘 참았다...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주는 독특한 느낌, 폴폴 풍기는 그 아련한 자유의 냄새...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든 상상 속의 유니콘 같은 것이든 간에 대충은 알 것 같다. 왜냐고요? 그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렇지. 졸업 후 우왕좌왕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하던 시기엔 '저는 프리랜서입니다'라는 그 짧은 자기소개를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간지럽고 민망하고 쑥스러우며 무엇보다 이 있어 보이는 단어를 가져다 쓰기엔 아직 내가 엄청나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보자, 그러면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얘기냐. 글쎄요, 역시 돈? 당시 하던 일로 펑펑 뺀뺀 쓸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해서? 아니면 어려서? 혹은 덜 멋있어서? 남들 정장 입고 회사 다닐 때 후드티나 입고 다니니까? 아니면 전부 다? 어쨌든 구체적으로 정확히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마냥 송구하고 부족하고 부끄러운 느낌, 그게 상당히 컸다 이거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고서도 1, 2년 정도는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냥 뭐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라며 얼버무렸다. 나는 아직 준비 중이오, 미완이오 라며 뒤로 숨는 것이다. 완벽히 준비가 다 되었다던가 완성되었다는 것,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걸 지금은 압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죠.


그렇게 어영부영 내 일의 주제와 내 일의 형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걸 미루던 어느 날, 클라이언트로부터 명함을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상부 보고용으로 나의 이력서와 명함이 필요하다는 얘기에 어이구야 내가 아직 명함이 없었구나 하며 무척 급하게 앉은자리에서 후다닥 명함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쇄소에서 퀵서비스로 보내준 결과물을 받아 드니... 어라, 요 작은 종이가,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요 명함이 어쩌면 그렇게 묵직하게 느껴지던지.


20년가량 지난 지금도 그때 그 명함을 쓰고 있다. (전화번호만 두어 차례 바뀌었다) 첫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하면 왠지 좀 있어 보일 것 같지만 실은 겸사겸사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돈이 다인가, 다가 아닌가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