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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r 02. 2017

뺀뺀 놀기에 대하여

모두들 바쁘다.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와중에 놀고 있다는 사실이, 한가하다는 사실이 왠지 송구하다. 내가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내고 있는 것인데 정체불명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는 뺀뺀, 아주 그냥 뺀뺀 놀 필요가 있다. 속에 고여 있는 것을 열심히 퍼다 썼으니 뺀뺀 놀면서 빈 곳에 다시 뭔가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조용히 가만히 누워서, 맛있는 것을 잔뜩 먹으며,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인터넷 즐겨찾기를 세 바퀴쯤 돌며 기다린다. 창작자라는 간지러운 타이틀이 요럴 때는 쓸모가 있다.


창작자가 아니라면? 무슨 상관이야. 뺀뺀 노는 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노는 건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다. 로또 1등에 당첨되더라도 하던 대로 직장에 계속 출근하겠다,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망가져 버린다 라는 요지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던데 아직 제대로 안 놀아보셨군요 라고 답해주고 싶다.


제대로 노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이냐.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당신의 집에서 시작하자. 청소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 바닥에 머리카락 좀 떨어져 있다 한들, 출처불명의(사실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만) 꼬불거리는 짧은 털이 좀 굴러다닌다 한들 뭐 어쩌라고. 씻기 싫으면 씻지 않는다. 음식은 시켜 먹으면 되고 치우는 건 나중으로 미룬다. 안 죽어 안 죽어. 냄새가 좀 날 뿐이야.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가 쌓인다. 뭐, 사람이 살다 보면 쓰레기가 쌓이는 건 당연하지. 그럼 대체 언제 쓸고 언제 닦고 언제 씻고 언제 버리느냐, 때가 온다. 어느 순간 자 슬슬 해볼까, 인간의 형상을 갖춰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 엉덩이를 응차 일으켜 세우면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다. 만약 자연스럽게 스르륵 일어나기 전에 치워야만 해서, 씻어야만 해서 억지로 끄응 하고 일어난다면 당신은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다시 편히 누우셔도 됩니다.


우리는 더 놀아야 한다. 

그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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