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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Mar 14. 2018

10. 석탄 광산 No.5 - 2

 

 그들은 마스쿠를 따라 갱도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갱목이 받치고 있는 낮은 천장 때문에 이안은 고개를 내려야 했는데 수진까지 어깨에 둘러메고 있어 고생은 배가 되었다. 그녀는 자꾸 뜨려는 몸이 나무에 부딪쳐 고통스러웠고 특히 끊임없이 달그락거리는 안전모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얏, 이안, 좀 낮게 들어줘. 자꾸 천장에 부딪친단 말이야!”


 그녀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소하다는 표정을 띤 채 그냥 그대로 밀고 나아갔다. 약기운이 사라지자 방금 전 날듯이 좋았던 기분은 쫙 가라앉고 몸이 무거워짐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천장이 높아지고 그녀가 스스로 내려와 걸었기에 그는 훨씬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얼마 안 가서 석탄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나무문 하나가 나타났다. 주변은 땅속 지하의 암흑 그 자체였고 안전모의 별별 모양 헤드라이트들이 시커먼 벽 여기저기로 흔들흔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흡사 극장에서 빛그림자 놀이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스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 바로 옆 바닥에 놓인 대형 성냥(붉은 황이 붙은 그것의 머리는 거의 그의 주먹만 했다)을 집어 벽에다 확 그어댔다. 성냥 끝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 튀어나온 긴 심지에 그것을 갖다 댔다.


“화다닥.”


 불붙은 심지가 포물선을 그리며 둥근 벽을 따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불길의 육상 레이스였다. 그리고 중간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아래에는 기름이 담긴 석탄 단지가 놓여있었다. 불이 떨어지자 확 붙더니 바로 화염에 휩싸였다. 


 순식간에 방이 환해졌다. 그제야 그들은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조그만 굴들이 벽마다 가득 차 있는데 마치 고대 카타콤의 층층이 무덤이 100층 넘게 위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장은 손바닥 크기로 아주 까마득했다. 숫자를 적은 이름표가 박힌 굴 앞으로 컨베이어 벨트길이 이어지며 각 층의 벨트는 한쪽 구석에 위치한 커다란 상자 모양의 저장소로 모두 모아지게 설치되어 있었다. 저장소 앞에는 수레 여러 대가 정차해 있었다. 


 마스쿠는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휘파람을 불어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온 실내에 울려 퍼졌다.

 

“여러분이 도착한 이곳은 ‘석탄광산 No.5’이다. 광산은 지하에 사는 우리 딥언더니아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신성시되는 곳 중 하나이지. 왜냐하면 우리의 생존은 광산에서 시작되었고 여전히 이곳 때문에 탄탄히 건재할 수 있는 거니까. 더군다나 여기 석탄은 무공해제품으로 자연친화적 마크까지 달고 있단다. 최상품임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녀도 황금에 우러러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지. 자, 오늘 여러분은 나와 함께 그런 딥언더니아의 정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는 광부의 작업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저 무덤 같은 굴속으로 한 명씩 기어들어간다.

2) 들고 있는 도구로 앞을 가로막은 석탄벽을 파낸다. 

3) 파낸 석탄을 안에 놓인 양동이에 가득 담아 들고 나온다.

4) 컨베이어 벨트 위에 그것을 쏟아붓는다.      


 그는 저장소 앞으로 다가가 측량기 꼭대기쯤의 한 눈금을 곡괭이 끝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석탄이 여기에 찰 때까지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이 꽥꽥 터져 나왔다. 수진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불평했다. 


“저장소가 저렇게 큰데 언제 다 차겠어요?”


“무조건 차야한다. 그게 오늘의 할당량이지. 할당을 못 채우면 우리 광부들은 절대로 광산을 벗어나지 않아. 자, 내가 호명하는 굴로 들어가 어서 작업을 시작하자! 그리고 나중 저장소에서 꺼낸 석탄을 실은 수레는 남자들이 밀고 나갈 테니 니들은 (순간 그는 남자아이들을 넘겨보며) 더욱 부지런히 작업해야만 한다. 조금도 늑장을 부려선 안 돼!”


“요즘 세상에 무슨 성차별이에요? 쟤들이 나보다 힘이 더 세다고요! 특히 쟤는 엄청나게 먹어댄단 말이에요!”


 왕허준이 부들부들 떨리는 엄지손가락으로 수진과 안젤라를 차례로 가리키다가 다시 수진을 꼭 집으며 분통을 터트렸다. 당사자인 그녀들이 그를 무섭게 흘겨봤다. 그러나 광부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


“하기 싫으면 나중에 간식은 없다. 이곳에서만 먹는 별식 중의 별식인데.”


 카할, 이안, 왕허준, 티앤 단까오와 해마는 배정받은 1층의 굴 안으로 각자 들어갔다. 뱀파이어 안젤라는 어차피 먹지도 못할 간식 괜히 고생하기가 싫어 바깥에서 서성였지만 마스쿠의 호통에 안으로 들어가는 시늉을 해야 했다. 그녀는 곰곰이 앞을 바라보다가 이 더러운 곳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하여 뱀파이어의 엄청난 괴력?을 이용하여 무서운 속도로 석탄을 캐기 시작했다. 만약 마스쿠가 곁에 있었다면 당장 자기네와 같이 일하자고 그녀를 채용하려 안달이 났을 것이다. 이날 저장소의 눈금을 채운 많은 부분이 그녀의 공덕이었음을 부디 알아주기 바란다.

 

 드디어 우란과 수진이 굴을 배정받을 차례가 되었다.


“우란은 7번, 수진은... 응, 48번? 왜 너만 멀리 떨어져 있지?”

 

 마스쿠가 손에 들고 있는 리스트의 숫자를 여러 번 확인해보았지만 별 이상은 없었다. 수진은 48번 굴로 가기 위해 그가 작동시킨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올라야만 했다. 


 48번 입구는 오랫동안 출입이 없었는지 매우 지저분했다. 부러져서 못쓰게 된 연장들이 바닥에 마구 흐트러져있고 과자 봉지와 쓰레기도 나뒹굴었다. 생각보다 안이 꽤나 깊었다. 그녀는 길을 가로막은 싸리발을 제치고 지나갔다. 드디어 석탄 벽을 만나기까지 한 30분 넘게 들어가야 했다. 벽 앞에서 양동이를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나가 얻어올까 생각도 했지만 너무 멀기에 우선 석탄을 다 캐놓고 보자며 힘껏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벽이 상당히 단단하여 생각보다 무척 힘이 들었다. 그녀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팠다.



 아이들이 일하는 동안 마스쿠는 별식을 준비한다며 갱도를 나갔다. 이안은 석탄이 가득 든 양동이를 컨베이어 벨트 위로 붓다가 역시 양동이를 들고 굴 입구로 나타난 우란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반가워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수진이 어디로 배정받았는지 알아?”


“48번이야.”


 그는 잠시 쉬는 틈을 타서 48번 굴로 가보았다. 자기가 배정받은 것과 달리 입구부터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걸음을 재촉하다가 옆으로 젖혀진 싸리발을 발견하였다. 전기가 흐르듯 온몸에 불안한 전율이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얼른 주변을 살펴보았다. 구석에 떨어져 있는, 붉은색 글씨가 써진 종이가 그의 눈에 띄었다. 붉은 X자 금지 표시였다. 놀란 그가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진아~ 수진아~ 어서 나와!”

 

 6분이면 석탄벽에 도착했던 자신의 굴과 달리, 너무 깊이 들어간 이곳에서 그녀의 이름을 연신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바람과 같은 속도로 뛰어 드디어 그녀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푹 눌러쓴 안전모 때문에 그녀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열심히 석탄 캐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가 뒤에서 그녀의 팔을 불쑥 잡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꽥 내질렀다. 비명소리가 크게 울리며 실내 벽을 흔들어 메아리쳤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부지직~부지직~” 


“이게 무슨 소리야?” 


 날카롭게 반응하며 그녀는 안전모를 벗어 재빨리 모자 전체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라이트가 사방을 비추자 그녀는 주위를 찬찬이 살펴보았다. 그녀 옆에서 그가 다급하게 부추겼다.


“이럴 시간 없어. 어서 빨리 여길 나가자.”


 그녀는 한 무더기 캐놓은 석탄더미를 아쉬운 듯 쳐다보며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바닥이 출렁거렸다. 그녀는 순간 잘못 봤나 싶어 다시 쳐다보았다. 진짜 출렁거렸다. 그녀뿐 아니라 그 역시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바닥이 무너지려나 봐!”


 그가 소리쳤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그의 메아리와 함께 바닥과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으악~” “엄마~” 그들은 석탄과 함께 컴컴한 지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밑으로 무시무시하게 흘러가는 급류가 보였다. 지하 수맥이었다. 물살이 얼마나 센지 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움찔해질 정도였다. 물속으로 떨어진 그들은 거친 물살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스쿠의 손에는 펄떡거리는 심해어 여러 마리가 꿰인 줄과 몸에 좋은 심층수가 담긴 병이 들려있었다. 이것들이 바로 그가 자랑했던 별식 중의 별식이었던 것이다. 광산 구석의 비밀리에 위치한 샘에서 막 잡아서인지 물고기가 유난히 싱싱한 것이 잘 손질해서 석탄불 위에 구우면 정말 꿀맛이리라. 처음 광산을 방문한 아이들에게 한번 맛보게 해 줄 생각에 그는 벌써부터 마음이 뿌듯해졌다.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부르며 그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No.5로 돌아왔다. 그는 저장소의 측량기 눈금을 쳐다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할당량의 절반 넘게 석탄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부지런한 일꾼들이군.'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구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거기에 놓인 석탄화로에 불을 피우고, 생선 비늘과 내장을 곡괭이 끝으로 대충 정리한 후 커다란 석쇠를 올려 생선들을 굽기 시작했다.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그의 옆으로 몰려들었다. 다 구워진 생선이 골고루 돌아가고 생선 피를 따로 모은 병이 안젤라에게 건네졌다. 그녀는 한 모금 마신 후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까 기억해둔 이안의 굴로 찾으러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병을 든 채 의아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마스쿠를 쳐다보며 외쳤다.


“이안이 안에 없어요.”


“잠시 나갔나 보지, 곧 돌아올 게다.”


“아까 48번 수진이 들어간 굴을 물어봤으니 아마 그녀와 같이 있을 거야.”


 입가 주변에 기름과 검은 재가 잔뜩 묻은 우란이 우적우적 생선살을 씹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안젤라의 얼굴이 잔뜩 굳어지더니 컨베이어 벨트를 탈 필요도 없이 단 세 번의 점프로 48번 굴 앞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무척 당황한 얼굴로 뛰쳐나왔다.


“큰일 났어요, 큰일!”


 불안감을 느낀 마스쿠는 먹던 생선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쏜살같이 굴로 뛰어 들어갔다. 다른 이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지상에 있는 것처럼 그들 앞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나왔다.

 

“앗, 이럴 수가!”


 마스쿠는 달리던 걸음을 급히 멈추었다. 그의 발 앞으로 거대한 절벽낭떠러지벼랑이 펼쳐져 있었다. 벼랑 앞에 서서 그와 그들의 안전모에서 나오는 다양한 모습의 헤드라이트들이 엄청난 스케일로 뻥 뚫린 암흑 속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그러나 수진과 이안의 모습은, 꿈틀거리는 생명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지하로 흘러가는 격류의 세찬 울부짖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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