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킹 2019> 존 파브로 감독
디즈니의 명작으로 꼽히는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실사화 리메이크가 7월 개봉되었다.
감상평을 보면 좋다, 아니 전보다 못하다 등등 의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런 논쟁은 뒤로 하고 그 이면에 있는 새로운 사실에 한번 주목해보려 한다.
바로 이 영화가 가상현실 VR을 이용하여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전에 브런치에 디즈니가 가상현실 VR이나 실감현실 시기에 큰 우위를 차지할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예상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나 혼자 예측이라 여겼었는데 디즈니가 사실 몇 년 전부터 VR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것도 새벽에 씨네21 유튜브에서 보고서야 알았다. 이야 그랬구나, 역시 디즈니 구나 싶었다.
실사판의 존 파브로(Jon Favreau) 감독은 <라이온킹2019>가 "애니메이션도 실사도 아닌 새로운 미디엄"이라 소개했다. 그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것이 실사인지, 애니메이션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실감 나는 영상이라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리라.
<아바타>를 만든 할리우드 No.1 시각적 테크니션이자 연출가인 제임스 카메론의 덕후라고 자처하는 존 파브로 감독.
그는 실리콘밸리의 최첨단 기술을 차용해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의 몇 안 되는 GEEK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감독한 영화에 배우로도 등장하는 끼 많은 그는 특히 가상현실 VR에 관심이 있고 그것이 새로운 미디엄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인터뷰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근데 그뿐만이 아니다. 디즈니는 그의 역량을 최고로 끌어올려줄 마법의 드림팀을 구성한다.
- 아바타, 타이타닉의 시각효과 담당했던 '로버트 레가토' VFX 감독
- 혹성탈출, 어벤저스를 책임진 프로덕션 디자이너 '제임스 칠런드'
- 잭 리처, 패트리어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케일럽 드샤넬' 촬영감독
아바타와 혹성탈출이란 영화만 그려봐도 <라이온킹2019> 실사 제작이 어떻게 흘러갈지 벌써부터 그려지지 않는가?
헐리우드영화 제작사상 유례없던 방식으로 만들어진 <라이온킹2019>의 큰 특징은
모션캡쳐와 게임엔진으로 구현된 '가상현실 스튜디오'에서 Virtual Production 방식으로 영화를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즉 진짜가 아닌 가상의 촬영장에서 제작했단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좀 더 빠른 이해를 위해 그와 드림팀의 영화 제작 과정을 한번 따라가 보자.
1) <라이온 킹>의 모든 것은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제작팀은 아프리카 동물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계속 돌려다 보며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의 모든 것을 캐치하고 관찰했다.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동물원 테마파크를 방문하여 실제 눈으로도 관찰했다.
사운드 담당자들을 독일 마그데부르크 동물원으로 급파해 사자의 소리, 즉 심바의 포효하는 소리 등을 담고 수집했다. 여담으로 만약 사자가 포효를 잘 안 했다면 동물원에서 어떤 식으로 자극을 주었을 까 무척 궁금하다.
드디어 2017년 초, 영화의 배경이 될 아프리카 케냐로 존 감독과 핵심 13명 제작진이 날아간다. 몇 개월간 케냐 전국을 누비며 엄청나게 찍어댄 사진과 녹음 영상, 온갖 동물과 식물, 바위와 절벽, 일출과 일몰, 별 뜨는 밤하늘 등을 찍는데 헬리콥터 3대와 사파리 랜드 크루저 6대, 1톤이 넘는 카메라 장비가 동원되어 12.3TB 용량을 찍었다.
입이 짝 벌어질 정도로 할리우드급이다. 디즈니나 되니까 돈대서 이리 찍지 우리나라 제작사는 꿈도 못 꿀 스케일이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ㅠㅠ
극 중 멋있는 대자연과 피어오르는 먼지, 붉게 타오르는 태양과 다양한 사운드들이 이렇게 제작되었다.
2) 블록버스터 제작에서 늘 하듯 채집한 사진과 영상에 컴퓨터 CG와 시각효과 VFX를 하나하나 입혀 실제처럼 재현시킨다.
-----------------여기서부터 이전과 다르니 집중해주시길(아래 순서는 저도 잘 몰라 틀릴 수 있음)--------------
3) '블랙박스 극장기법'으로 감독과 팀원이 블랙박스 안에 들어가 VIVE VR 헤드셋을 쓴다.
4) 눈을 딱 뜨니 게임처럼 가상세계 VR 안으로 들어온 감독과 팀원들. 가상현실 스튜디오이다.
광활한 아프리카 사바나가 그들 앞에 드넓게 펼쳐져 있다. 자, 이제부터 탐험이 시작된다! GO GO!
5) 감독과 팀원들은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마법지팡이 대신 양손에 무선 VR 컨트롤러를 들고 창조주 '신'으로 변신한다.
가상 사바나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영상이 그들의 손에서 다시 재탄생된다.
사바나 안을 돌아다니다가 "여기야!" 하는 장소를 헌팅한다. 조명을 위해 태양의 위치를 바꾸고 채색과 음양도 좀 만지고. 파브로 감독이 양손에 쥔 컨트롤러를 위 아래 옆으로 흔들어대며 이렇게 소리친다.
"여기 좀 어두워, 태양빛 키워봐. 밝게 말이야. 좀 더! 음, 좋아. 아니, 저기 기린 좀 집어넣어. 여기, 그리고 여기에도. 좀 더 넣으라고."
동물들을 가장 보기 좋은 위치와 앵글에 배치하고, 숫자를 더하거나 빼고, 여긴 구름도 좀 더 집어넣야겠고 등등... 감독과 팀원들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가상 사바나를 찬찬히 돌아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수정 들어가신다.
2019년 7월 12일 자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팀원들이 VR 헤드셋을 쓰고 아예 개개의 동물들 시점으로 들어갔다고도 하니 이 영화 한 편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했을 까 싶다.
6)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3D 프린터로 모형 촬영장비를 제작하고 이 장비에 센서를 장착한다. VR 고글을 쓴 촬영감독이 모형 장비를 움직이면 VR 사바나 안의 카메라가 센서를 따라 움직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실에서 결코 찍을 수 없는 독특한 카메라 워킹이나 앵글로 촬영되고 다양한 액션들이 도출되었다.
이런 장비뿐 아니라 조명, 로케이션, 소품 등 촬영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가상현실 스튜디오 안에 가상으로 존재한다.
7) 애니메이터들이 게임 캐릭터 조정하듯이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때 비욘세니 누구니 엄청 광고하던 그 으리으리한 목소리 연기자들의 미리 녹음해둔 즉흥연기 대사가 같이 입혀지며 동시녹음으로 촬영된다.
<라이온킹2019>이 기존의 CG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은 모든 제작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는 점이다.
즉, 촬영하면서 목소리 입히고 수정까지 한꺼번에 All In One으로 진행되었다. 어디서 보니 이것을 VR 제작세트와 컴퓨터그래픽CG기술을 혼합한 라이브액션기술 제작이라고 명하는 것 같았다.
진짜로 착각시키기 위해 1.43:1의 화면비율로 화끈하게 보여준다.
존 감독은 이런 제작과정을 "멀티 플레이어 버추얼 리얼리터 필름 메이킹 게임 (Multi player virtual reality film making game)"이라고 불렀다.
그는 "너무 진짜 같은 나머지 현실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지길 바란다"라고 했다는데.
아마도 이 말이 <라이온킹2019> 실사판에서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진짜 목표가 아니었을까?
2019년 8월 22일 BCWW NewCon 콘퍼런스 중 UNITY의 김범주 에반젤리즘 본부장님의 설명을 보충하고 싶다.
사실 <라이온킹2019> 뿐 아니라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플레이어원> 과 존 파브로 감독의 <정글북>도 가상 VR 스튜디오 방식으로 제작되었단다. 그럼 왜 거추장스럽게 가상 스튜디오를 차릴까? 그냥 예전에 하던 대로 하지?
왜냐하면 관객의 CG나 영상 퀄리티의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대로 작업했다가는 버려지는 CG나 촬영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헛수고에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이 생각보다 높단다.
그러나 VR스튜디오는 처음엔 좀 비용이 들더라도 버려지는 CG나 촬영분을 많이 줄여주기에 결과적으로 영화 제작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음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래는 씨네21이 미국 현지 촬영장에서 직접들은 제작비하인드 유튜브 영상이다. 이 영상을 많이 참조했다. 꼭 보시길 바란다. 이해가 더욱 빠를 것이다.
참고로 한 다른 유튜브 동영상을 아래 남긴다. 직접 보면 헐리우드의 기술발전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EFvP81uyRs&list=WL&index=4&t=0s
동물의 표정이 사라지고 의인화가 덜 되었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디즈니는 처음 계획대로 <라이온킹2019>를 제작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디즈니 역시 제작과정에서 문제점이 뭔지 분명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뼈 굵은 전문가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R 제작방식을 고집한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내가 느낀 점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동물도 이리 생생하게 만드는데 앞으로 꼭 비싼 배우 써 가며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이미 하늘로 올라가신 로빈 윌리엄스 같은 전설적인 배우를 가상으로 다시 소환해 출연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전문용어로 진짜가 아닌 가짜 인간 '디지털 휴먼'들이 나오는 영화는 흥행에 어떤 영향을 줄까?
특히 판타지나 SF 같은 영화를 찍을 때 꼭 비싼 배우 쓸 것이 아니라 차라리 모션캡쳐에 능하고 몸 움직임이 좋은 배우를 등장시켜 아바타나 혹성탈출처럼 찍는 게 앞으로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미래의 영화계에서는 연기 잘하는 배우뿐 아니라 모션캡처 장비를 몸에 달고 그 어떤 움직임도 표현할 수 있는 특수연기 전문배우들의 세상이 되지 않을까?
현재 디즈니 마블 스튜디오에서 모션캡처 연기를 펼치고 가르치고 있는 앤디 서키스(골룸, 킹콩, 혹성탈출 주인공)나 한국의 김흥래 모션감독 같은 분들이 더욱 필요로 하는 시기가 곧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그리고 아직까지 영화의 관객은 영화관에서 앉아보는 수동적인 객체이지만 디즈니 같은 곳에서 VR 헤드셋을 쓴 관객을 데리고 직접 가상의 사바나 안으로 들어가 심바와 진짜로 대면시키는, 즉 관객이 적극적인 주체가 되는 것도 곧 가능하지 않을까?
할리우드의 미래는 상상하는 자의 몫인 것 같다.
내가 여기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판타지 소설 '브라잇 동맹'에서도 존 파브로 감독이 좋아할 만한 엄청난 스케일에 기괴한 크리처들이 꽤 많이 나오는데 (신화에 나오는 거인과 괴수들 무한 등장 반복), 꼭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는 바이다.
어떻게든 가상현실 VR에 발을 들인 할리우드로 내 작품이 가야 할 텐데 말이다.
꼭 가리라!(오늘도 의지를 불태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