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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May 23. 2020

'제과'는 영원하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세미나나 엑스포 같은 전시회들이 가을로 연기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중이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왠지 미안하여 혼자 놀거나 하는 데 예전에 마스크 안 쓰고 마음 놓고 다니던 자유가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중이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싶다가도 역사의 흐름에서 엿보듯 인류의 미래가 그토록 비관스럽지는 않을 거라 스스로 위안도 해본다.


그러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 올 2020년은 어떤 활기찬 실행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나이만 먹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지던 찰나, 나에게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건 바로바로바로,


제과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다. 나의 첫 판타지 소설인 브라잇 동맹 1권 '딥언더니아' 편을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책의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장인 요정까지 살짝 등장한다. 바로 그 요정이 만들어낸다고 내가 늘 상상하던 '아이스크림'을 몸소 배워보자며 올해 초 결심을 굳혔었다. 


먹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여긴 동기는 또 있었으니 전에 COMEUP2019 행사에서 스탠퍼드대학 푸드이노랩 김소형 박사님의 강의 때문이었다.

 

박사님은 우리가 먹는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0년 뒤나, 20년 뒤나,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존재하지 않겠냐고 당당히 청중에게 물어봤었다. 영화에서는 미래에 영향소가 함유된 캡슐이나 대체음식이 지금의 먹거리를 대체하기도 하지만 난 미래에도 맛있는 음식은 영원하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 가진 아주 강력한 생리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먹어야 목숨을 보존할 수 있고 이왕 먹을 봐에야 맛있는 걸 찾아 먹고 싶은 것이다. 이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생물학적이고 원초적인 욕구이다.  


난 마스크가 필요 없던 그 전시회 자리에서 강의를 들으며 한번 생각해봤었다.  IT나 모바일 기술은 3년 뒤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고 불확실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사람이 먹는 것에 대한 욕구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빵과 과자 같은 디저트도 결국 남아 있을 것이었다. 


 아무튼 그때 생각이 계속 남아있었는지 올해 1월 초에 서울의 제과학원을 수소문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과제빵기능사 관련 학원은 많은데 아이스크림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수제 젤라토를 가르친다고 광고해도 하루 몇 시간 정도에 그치는 일일클래스가 거의 대부분이고 클래스 가격은 또 어찌나 비싼지 하루에 20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아이, 왜 이리 비싸더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은 결과 '라크렘제과학원'을 찾게 되었다. 


아이스크림 수업도 거의 6번 정도 차지했고(아래 훈련표 참조) 제과의 기본기를 가르쳐주는 주말 왕초보반이었다. 내일배움카드의 도움으로 수업비의 절반도 국비로 충당해주었기에 난 46만원 정도만 내고 15회 클래스에 등록할 수 있었다. "왕초보반"으로 말이다. 난 제대로 오븐을 써본 적이 없고 빵과자를 구워본 적도 없어 학원 선생님은 나에게 딱 맞는 수준이라 추천하였다.



 학원에 메일을 보내 등록 가능한 날짜와 일정표를 받고 드디어 등록을 완료하여 첫 수업만 기다리던 그때, 코로나19가 서울에 강타하고 결국 대구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당연 학원 일정도 한 달 넘게 뒤로 넘어가 3월 말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엔 코로나 때문에 찜찜하여 등록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 그대로 유지시켰다.


그리고 지금 벌써 7회 수업을 마치고 이번 주말에 8회 수업을 앞두고 있다. 


수업에 들어가면 난 긴장을 하는 편이라 아주 부지런을 떤다.

남들 하는 속도 못 따라갈까 봐 겁이 나서 그러는지. 아님 제대로 못할까 봐 두려워서인지 옆사람 어디까지 했는지 눈치 보며 크림을 마구 휘젓는다. 그러다 크림이 주변으로 마구 자연 발사되기도 하지만.ㅠㅠ

이론 강의도 열심히 듣고 필기하려 한다.

그래도 나와 같이 앉은 4조 파트너들이 팔이 튼튼하고 나보다 경험이 많아 참으로 든든하다. 매번 레시피대로 저울로 정확한 양을 재서 준비하고 선생님이 시연하는 순서대로, 아님 온도계를 사용하여 휘젓고 굽고 오븐에 넣고 빼고 식히고 등등.

수업이 끝나는 5시가 되면 아주 피로가 몰려온다. 왜 이리 힘든 거니? 나이가 들어 그런 거니?


하지만 회차가 늘어날수록 학원 선택을 기가 막히게 잘했고 배우기는 더더욱 잘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일종의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버터쿠키와 브라우니>


<비건스콘과 일반스콘>



<휘낭시에>


<마들렌>


<비건 파운드케이크와 비건 땅콩쿠키>


우선 내가 베이커리에서 무심코 사 먹었던 과자, 케이크, 아이스크림, 파이 등에 들어가는 원료와 성분, 레시피에 필요한 물성이나 특성에 대해 얕게나마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과 이론들을 처음으로 접하며 '어머 진짜 그래?' 하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 물론 다음 주가 되면 이전 것은 다 까먹어버리지만.


설탕의 특성이라던가, 감미료는 어떤 걸 시중에서 쓰는지, 밀가루의 종류와 특이점, 계란과 우유, 생크림에 단백질 함량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초콜릿을 사용하는 게 좋은지. 




재료 준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배합하고 섞는 순서이다. 어떤 순서로 섞어야 제대로 과자가 나오는지, 탈지분유와 초콜릿을 우유에 녹이는데 온도는 어느 정도에 맞춰야 하며, 달걀노른자를 넣을 때는 비린내가 나지 않기 위해 온도는 어디까지만 올렸다 얼른 식혀야 한다는 등등. 

특히 '제빵'보다 '제과'과 이 순서에 더욱 민감한 듯싶었다. '제빵'은 다 섞어 오븐에 넣으면 웬만하면 제품이 나온다지만 '제과'는 디저트니까 너무 딱딱해도 안되고 예쁜 모양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주 배우면서 과자나 디저트 만들기가 이리 까다롭고 힘들었나를 깨닫고 있다. '비싼 이유가 있는 거였어.' 속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다시 새겨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제빵'도 그렇겠지만 '제과'라는 분야도 화학이나 과학의 산물이구나도 새삼 알아가는 중이다. 선생님은 중간에 제과기능사 자격증과 아이스크림 자격증을 자주 언급하시는데 나도 공부해서 도전해볼까 생각 중이다. 자격증은 따서 결코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내가 배우기를 목표로 들어간 아이스크림에 대해선 더 할 말이 많다.


예전에는 그저 대충 재료 섞어서 냉동실에 넣으면 어떻게든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줄로 알았다. 한마디로 일자무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칠판에 적힌 아이스크림 배합 공식을 적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용액과 고체 고형물의 비율이 딱 정해져 있고 그것에 맞춰 계산기로 모든 원재료의 각각의 비율을 계산해야 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진짜 팔이 떨어져라 용액을 휘저어야 한다. 많이 저어서 잘 섞일수록 부드러운 식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학원의 아주 칭찬할 만한 점은, 재료의 비율이 조금씩 바뀜에 따라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여러 조로 나뉘어 서로 다른 레시피로 만든 후 직접 시식하여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으라는 의미 같기도 하고 아님, 어떤 제품이 가장 대중적인 맛을 가지고 있는지, 원재료 비율의 변화에 따라 맛의 변화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직접 알아보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아래 사진의 아주 비싼 이탈리아산 젤라토 기계 사용법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청소까지 시켜서 이젠 다 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된 젤라토 기계>


<커피아이스크림과 녹차아이스크림>



 


<크림치즈아이스크림과 초코아이스크림>




이제 결론을 내릴까 한다. 내가 배우면서 가장 깊게 느끼고 알게 된 점은 바로 '제과'분야에도 마케팅 능력뿐 아니라 


'상상력'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맛을 내길 원하고 어떤 식감과 모양으로 나와야 하는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원재료의 비율을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지. 레시피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등등 제과인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과정이 상당히 많았다. 그냥 잘 만들 줄 안다고 다가 아닌 것이다. 


'브라잇 동맹'에 나오는 스위티니아 요정들의 제과 제품들을 한번 만들어 눈으로 감상한 후 먹어보고 싶은 요즘이다. 나의 머릿속 상상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지. 실제 모양과 색감은 얼마나 다를지. 먹는 느낌과 감상 등등 점점 궁금해진다. 아마 이래서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꼭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실제 현실에서 광고도 하고 팔아보고 싶다.  




또한 스탠퍼드 푸드디자인랩의 목표들에 따라,  

"아이스크림을 먹다"의 경험을 한번 새롭게 디자인하면 어떨까 상상한다.


아이스크림은 세상에 참으로 많지만 그것을 먹는 과정과 경험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대부분은 행복한 경험이겠지만 그래도 어딘가 상상력이 들어갈 요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것을 찾기 위해 '미각'에 대한 책들도 읽어보려 하다. 


내가 좋아하는 '가상현실'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소설을 따라가 보니 어쩌다 '제과'란 생소한 분야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참으로 소중하고 귀중한 경험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내 작품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동안 쉽게 생각하던 제과 제품들을 다른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완벽한 제과제빵제품들을 매일 선보이기 위해 새벽부터 오븐 앞에서 고생하는 수많은 제과제빵 장인과 기능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해 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지하 빵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분들도 마찬가지로 항상 맛있는 제품들을 만들어주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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